[뉴스토마토 조윤경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가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결정했지만 일본은행(BOJ)은 오히려 출구전략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오는 4월 현행 5%인 소비세를 8%로 올리기로 결정한 가운데,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경기 회복세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수의 전문가들은 BOJ가 소비세 인상 전후로 추가로 돈을 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상반기 중에 추가 양적완화가 추진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日경제, 소비세 충격 불가피..구로다 어깨가 무겁다
올해 구로다 총재의 어깨가 한층 더 무거워질 전망이다. 올해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의 통화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소비세 인상으로 지난해 기대 인플레이션이 다소 회복됐던 일본 경제가 또 다시 침체될 수 있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1997년에도 소비세를 종전의 3%에서 5%로 올린 뒤 급격한 경기 위축을 겪은 경험이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경기 둔화를 우려해 5조5000억엔 규모의 경제대책을 마련하기는 했다. 하지만 소비세 인상에 따른 일본 국민들의 세부담이 무려 연간 8조엔 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측되는 가운데, 정부의 경제대책은 큰 실효를 거두기 미흡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캐피탈이코노믹스도 "정부의 이번 경제대책은 실망스럽다"며 "공공사업에 집중하는 경제대책은 경쟁력이 없다"고 평가했다.
경제대책만으로 소비세 인상 여파를 충분히 상쇄할 수 없다면 정부 관계자들은 어떤 정책으로 눈을 돌릴까. 바로 통화정책이다.
김주형 동양증권 연구원은 "재정정책은 긴축해야 하는 문제점들이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BOJ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여력은 존재하기 때문에 통화정책을 통해 실물경제에 대한 충격을 막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엔저에 대한 부작용은 양적완화 지속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본원통화를 2년 안에 2배로 늘리는 양적·질적 통화완화가 시행된 이후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약 한 달만에 100엔대(엔화가치 하락)를 돌파했고, 현재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엔저가 오래 지속되면 일본 수입 물가도 상승하고 가계 부채도 함께 증가할 수 있다.
김일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현재 상태에서 BOJ가 엔화를 추가 절하시키기에는 여건이 녹록치 않다"며 "무역수지 측면에서는 원전 사태에 따른 에너지 수입액 급증으로 엔화 약세가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고 내수 측면에서도 생필품 수입 물가 상승을 야기해 소비 경기 회복이 더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통화정책 향방은?..상반기 추가 양적완화설도 '솔솔'
◇기자회견에 참석 중인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사진=로이터통신)
올해 BOJ의 통화정책 향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고가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올해 BOJ가 매월 7조엔 규모의 채권을 매입하는 현행 통화정책의 기간을 연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구로다 총재도 새해 첫날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행 양적완화를 당초 언급한 2년이 지난 후 반드시 끝내거나 축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물가 목표치 달성 이후에도 통화완화를 지속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
이는 BOJ가 2014년 말까지 물가상승률 2% 달성에 성공해 출구전략에 나서겠다 밝힌 지난해 1월의 상황과는 대조되는 것이다.
BOJ의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현행 BOJ의 자산매입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화정책 위원 중 상당수도 이미 국채 매입 규모를 늘릴 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 BOJ가 위험자산 매입을 강화할 것이라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는다.
정보제공업체 퀵 코프가 금융기관 종사자 2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2%는 BOJ가 향후 지수연동 ETF 등과 같은 위험자산 매입을 강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해외채권 매입을 위한 관·민 협조 기금 설립 필요성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BOJ가 더 강력한 통화정책에 나서지 않아도 될만큼 지난해 일본 경기가 양호한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철희 동양증권 연구원은 "기금을 조성해서 해외 국채를 사는 방법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필요할 것"이라며 "일본 경기가 좋아져서 BOJ가 소극적인 정책을 펴도 된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BOJ가 추가 양적완화에 나서는 시기는 언제가 될까.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를 점치고 있다. 소비세 인상 시점 전후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퀵코프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2%는 올해 2분기에 양적완화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달 로이터통신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조사 대상 기업 중 64%가 오는 4~6월 전에 추가 금융 완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일균 연구원은 "일본 민·관 경제연구소들은 소비세 인상이 내수경기 둔화로 이어져 연간 GDP 성장률이 1~2%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소비세 인상이 시행되는 4월 전후로 BOJ의 추가 조치 가능성을 염두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오히코 바바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도 "BOJ는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피하기 위해 추가 완화 조치에 나설 것"이라며 "내년 6월 중 추가 양적완화책이 발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