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한국사회에서 정착 가능할까

정부, '일과 이분의 일' 캠페인 추진계획 발표
실효성 미지수..장시간 근로문화 바꾸기 쉽지 않아

입력 : 2014-01-08 오후 3:57:36
[뉴스토마토 박진아기자] '▲원하는 시간·장소에서 일하는 유연근무제와 스마트워크를 도입한 회사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을 '레저 휴가'로 지정해 휴가비 10만원까지 주며 쉬게 하는 회사 ▲출산전후 휴가와 육아휴직을 충분히 쓰게 하고 육아휴직 기간을 근속으로 인정해주는 회사..'
 
정부가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장시간 근로 문화를 뜯어고치기 위해 대국민 캠페인에 나섰다. '장시간 근로는 필수, 야근은 당연, 휴가는 눈치 보여 제대로 쓸 수 없는' 근로 문화를 바꿔 일과 가정, 삶의 균형을 이루자는 취지다.
 
이를 통해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과 업무 생산성, 성취감 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미국, 영국 등 외국의 경우, 일과 삶의 균형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도 많다.
 
하지만 소수 남성위주의 장시간 근로 문화가 뿌리 박힌 우리나라에서 일과 삶의 균형 잡힌 근로 문화를 추구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현재 노동계가 노사정위원회 및 각종 정부위원회에서 빠진 상태에서 대국민 캠페인이 실질적으로 이뤄질 지도 미지수다.
 
◇정부 '일과 이분의 일' 캠페인 추진..일·가정·여가 균형
 
8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개선하는 내용이 담긴 범국민 캠페인, '일과 이분의 일(가칭)'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일과 이분의 일'은 일과 나머지 절반, 가정·여가·삶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업무의 생산성을 높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범국민적인 캠페인으로 우리 사회의 인식과 행동이 바뀌고, 균형잡힌 일·가정·여가 문화가 창조경제를 낳는 선순환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면서 "관계부처와 함께 모든 역량을 쏟아 올해를 일하는 방식 및 문화 혁신의 원년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를 위해 고용부 등 정부는 주요 언론과 인터넷 포털에서 연중 캠페인을 진행하고 대기업과 가족친화인증기업, 여성단체, 노사단체 등 100여개 기관과 1차 민관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다.
 
또 다음달 초에는 대국민 선포식을 열고, 정부와 민간 대표가 모여 캠페인 추진 의지를 직접 표명하는 자리를 만들 예정이다.
 
◇선진국, 1970~80년대부터 '일과 삶의 균형' 추구
 
해외에서는 이러한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근로문화 정착 노력이 지난 1970~80년대부터 시작됐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의 경우 1970년대 중반부터 국가 주도의 복지정책 일환으로 추진됐다. 실업률 억제를 위한 '유연근무의 법제화 및 세제 우선 조치' 등이 추진됐으며 기업의 유연근로시간 운영도 빠르게 진행됐다.
 
미국은 1997년 5월 클린턴 정부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가정친화적 기업에 대한 제안'을 공식 발표하고, 1999년 3월 '가족친화적 직장후원실'을 설치해 프로그램 운영 범위를 확대했다.
 
영국도 2000년 실업과 국가복지 대책을 위해 본격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 대국민 캠페인을 벌였고, 이후 켐페인을 3단계에 걸쳐 추진하면서 다양한 일과 삶의 균형 관련 법률 및 제도 정비를 이뤄냈다.
 
일본 역시 2007년 12월 내각부가 '일과 생활의 조화헌장'과 '행동지침'을 발표하고, 총리 직속으로 '일과 생활의 조화 추진실'을 설지해 '카에루! 재팬(Change! Japan)' 캠페인을 추진했다.
 
특히 일본은 2009년 정부·전문가·경제단체·노조가 주요 6대 분야를 설정하고 '일과 생활의 조화를 위한 대처방안'을 합의·추진하는 데 뜻을 모았다. 이후 행동지침별 수치목표를 제시하면서 점검해 오고 있다.
 
(제공=고용노동부)
 
◇"韓, 뿌리 박힌 장시간 근로 문화 바꾸기 쉽지 않아"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일부 기업들의 근로문화 변화 노력은 찾아볼 수 있다. 근로시간 중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 NAVER(035420)(네이버)는 회의 원칙을 규정하고 스마트 타이머를 회의실에 비치하는 '스마트 미팅 캠페인'을 진행했으며 SK(003600)는 야근금지 등 불필요한 야근과 회식을 줄이기 위해 '초과근무 제로(zero)'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 밖에도 삼성SDS는 2010년 유연근무제인 '싱글 오피스(single office)' 제도를 도입했고, 한화케미칼(009830)은 '리프레시 휴가제도'를 도입해 휴가 사용을 활성화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장시간 근로 문화가 뿌리 박힌 한국사회에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불식시키고, 새로운 비전을 담은 근로 문화를 정착시키기란 쉽지않다는 반응이다.
 
실제 우리나라 근로자 5명 중 1명은 주 50시간 이상을 근무할 만큼 '근로시간이 과하다'라고 느끼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근로시간 불일치 실태(희망 근로시간과 실제 근로시간간 차이)를 파악하기 위해 최근 만 20세 이상 임금 근로자 3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근로자 21.9%가 현재 근로시간이 자신이 원하는 근로시간보다 긴 '과잉 근로'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근로시간이 희망 근로시간보다 짧은 '과소 근로' 상태라고 응답한 근로자는 1.3%에 그쳤다.
 
(자료=한국고용정보원)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주 48시간 이상을 일하는 장시간 근로자의 비율이 2009년 기준 30%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다"면서 "여성의 경우에도 전일제가 표준이 돼 결혼, 자녀양육, 고령화 등 생애주기적 노동시간 변경 요구와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배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정규직 시간제 혹은 차별없는 시간제 노동을 할 수 있는 제도나 관행도 부재한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정부와 새누리당이 지난해 국회통과를 목표로 추진했던 근로시간 단축안은 기업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무산된 상태다. 근로시간 단축안은 현행 주당 68시간인 근로시간을 오는 2016년부터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구나 일각에서는 현재 노동계가 노사정위원회와 각종 정부위원회에서 빠진 상태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대국민 캠페인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노동분야는 통상임금, 장시간 근로관행 개선, 60세 정년 조기 정착 등 산적해 있는 현안을 풀기 위해 노·사·정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이지만, 철도 파업 등으로 관계가 틀어진 상황이다.
 
현재 대표적인 노사 협력 대화기구인 노사정위원회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불참을 선언하면서 개점 휴업 상태다.
 
노총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정부가 노동계와 대화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바꾸는 대국민 캠페인이 제대로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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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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