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지난해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철강업계가 새해 벽두부터 엔저 쇼크에 비상이 걸렸다.
조선, 건설 등 전방산업 침체로 내수 수요가 회복되지 않은 가운데 수출길마저 난항이 예상되면서 올 한 해도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동시에 연초 신년사를 통해 수익성 회복을 외쳤던 국내 주요 철강사들의 목표 달성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은행은 지난 9일 '엔화 약세가 우리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엔저가 지속될 경우 자동차와 기계, 철강 산업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혀 이 같은 우려를 더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엔화 약세로 지난해 전체 수출에서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했으며, 국내 철강업의 대일(對日) 가격경쟁력은 5% 하락했다.
앞서 8일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신흥국의 과잉설비로 인한 경쟁악화로 당분간 국내 주요 철강사들의 실적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전년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와 포스코, 현대제철 등의 신증설 설비 가동률 향상에 따라 생산량은 늘 것으로 관측했다.
◇올해 수익성 회복을 목표로 세운 국내 철강업계가 중국의 공급과잉에 이어 엔저 확산으로 비상이 걸렸다.(사진=뉴스토마토자료)
주요 기관 우려대로 엔저가 장기화되면 철강업은 내수와 수출 모두 타격을 받게 된다. 국내로 수입되는 철강재의 40%가량이 일본산인 관계로 내수에서 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에 더해 일본산마저 가격경쟁력으로 무장하면서 이중고에 놓이게 되는 것.
특히 불량률이 높고 위조품이 많은 중국산에 비해 일본산은 수요 업체들로부터 품질력이나 신뢰도를 인정받고 있어 국내 철강사로서는 더 까다로운 상대다. 전방 산업체들이 원가절감을 이유로 일본산으로 수요를 선회할 경우 국내 철강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수출시장에서도 일본은 걸림돌로 작용한다. 특히 건설 인프라 투자 증가로 철강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동남아 시장에서의 경쟁을 어렵게 할 것이란 전망이다. 동남아 철강시장은 매년 9% 이상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06년 300만톤이었던 국산 철강재 수출량도 800만톤을 넘어섰다. 이는 국내 철강 수출량의 23%에 해당한다.
정치적 외교관계와 지리적 이점 때문에 동남아 철강시장은 한국과 중국, 일본 철강사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격전지다. 중국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자국 물량 판매에 매진하고 있고, 일본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앞세워 대규모 물량 수주전에 돌입했다. 3국간 경쟁이 치열한 만큼 동남아 각국 정부와 통상마찰 빈도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나마 일본 철강사들은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한국에 비해 분쟁에 휘말리는 사례가 적은 편이다. 국내 철강사들의 최대 수출시장인 동남아 시장에 우리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실제 국내 철강사들은 가격과 정부 지원을 앞세운 중국과 일본 철강사에 비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 증설로 생산능력이 확대됐던 2010년을 기점으로 2년간 두 자릿수를 기록했던 한국의 철강재 수출 증가율은 2012년부터 정체를 보이고 있다. 주력 수출 지역의 수요가 감소한 탓도 있지만 엔저를 무기로 일본산 제품 판매가 늘었기 때문으로 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업계는 2012년 하반기 엔화 약세가 시작 직전인 2011년 말 엔화의 가파른 하락이 있었던 때를 일본산 철강재의 가격경쟁력이 회복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철강재 수출은 2910만톤으로, 전년 대비 4.4% 가량 하락한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여름 정부의 절전 정책에 동참해 설비 대보수를 실시하고, 각종 사고가 발생하면서 생산량이 감소한 이유도 있지만 엔저 등 수출환경 악화도 수출량 감소에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엔화 약세 현상은 올 2분기부터 나아질 것이란 다소 희망적인 전망도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2분기 글로벌 경기 개선에 의한 달러 강세 압력 약화가 엔화의 추가 하락을 저지할 수 있다며, 추세적 엔화 약세가 2분기부터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엔저가 둔화될 경우 일본 철강사들의 추가 가격경쟁력 확보가 어려워지고, 수출 시장에서 한국산 철강재의 회복이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방민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 약세는 일본 철강사들의 단가 상승 압력을 높인다"며 "대부분의 철강 원재료를 수입하는 일본 철강사들이 수익성 유지를 위해 단가 인상에 나설 유인이 발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