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중인 마윈 알리바바 회장의 모습(사진=로이터통신)
[뉴스토마토 조윤경기자] "열려라 참깨!"
동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가난하지만 성실한 청년 알리바바가 금은 보화가 쌓여 있는 동굴의 문을 열기 위해 외쳤던 주문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알리바바는 바그다드 최고 부자로 인생역전하게 됩니다.
중국에도 알리바바와 같이 새로운 시장의 문을 열고 마술 같은 도약에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동화 속 주인공 이름을 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닷컴'의 창립자 마윈(馬雲, 영문명 Jack Ma) 회장입니다.
마윈은 알리바바를 중국 택배 물량의 약 70%를 주무르고 미국 이베이·아마존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키웠는데요. 그는 지난 2009년 타임즈가 선정한 세계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꼽혔으며 지난해에는 433억위안(약 7조7000억원)의 자산으로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최대 부호 8위에 등극했습니다.
1964년 항저우의 넉넉치 않은 집안에서 태어난 마윈이 오늘날 중국 재계 거물 중 한 명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설령 무일푼이라도 당당함 속에 패기·열정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마윈은 자신의 성공 비결을 "돈, 기술,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돈이 없어 한 푼도 귀하게 썼고, 기술을 몰라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었으며, 계획을 세우지 않아 급변하는 세상에 능동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봐도 그는 계획적으로 공부하고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마윈의 고등학교 성적은 반에서 매번 5등 안에 들던 영어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과목에서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했는데요. 그래도 자신감 하나만을 갖고 중국 명문 베이징대학교에 지원을 했다 수학 점수 1점이라는 성적표를 받으며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 적도 있습니다.
다시 한번 도전한 대입 시험에서도 낙방한 그는 결국 삼수를 해 우여곡절 끝에 전문대 격인 항저우사범학원 외국어과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그것도 정원 미달로 참 운 좋게 대학 문을 밟게 된 것이죠.
마윈의 대학교 졸업 이후 삶도 틀에 짜인 계획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무쌍했습니다. 그는 졸업 후 6년간 교편을 잡다 1991년에 친구와 함께 '하이보통역사'를 설립하며 처음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게 됩니다.
물론 첫 사업은 입에 풀칠만 하고 살아야 할 정도로 지지부진했습니다. 당시 매달 수입이 700위안으로 2000위안에 달하는 집세를 감당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수준이었는데요.
하지만 바로 그때 인터넷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마윈을 훗날 IT업계 대부로 만들어준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뛰어난 영어 실력을 높이 평가한 저장성 교통청이 1995년 한 미국 기업과의 분쟁 협상에서 통역을 요청했고, 이로 인해 미국 시애틀 출장길에 오른 그가 처음으로 인터넷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은 분명 세상을 바꿀 것이야!!', 자신이 운영하는 통역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어본 지 3시간도 채 안돼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서 4통의 문의 이메일을 받아본 후 마윈이 외쳤던 말입니다.
인터넷 사업에 대한 굳은 신념은 오늘날의 마 회장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기업들 홈페이지를 구축해 주는 중국 최초 인터넷 기업 '차이나페이지'를 세웠습니다. 사업에 대해 조언을 구했던 친구 24명 중 무려 23명의 반대를 꺾고 말입니다.
차이나페이지는 중·영문판 홈페이지에 2000자 글씨와 한 장의 사진을 실어주는 조건으로 기업들에게 2만위안을 받았는데요. 겨우 3년 만에 500만위안의 이윤을 남기는 놀라운 성과를 거둡니다.
마윈의 인터넷 사랑은 B2B(기업과 기업간)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창립으로 더 빛을 발합니다. 단돈 50만위안(약 8500만원) 자본금으로 설립한 알리바바가 겨우 14년 만에 무려 170조원의 매출을 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특히 알리바바 출범 6개월 만에 골드만삭스로부터 500만달러를 투자 받기도 했으며, 현재 사업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손정희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을 6분만에 설득시켜 2000만달러를 유치한 이력도 있습니다.
마윈은 마케터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미국 전자 상거래 공룡 이베이를 압박했습니다. 이베이가 지난 2003년 중국 포털사이트들과 독점광고 계약을 맺고 내륙 진출을 시도할 때 알리바바의 오픈마켓 사이트 '타오바오몰' 수수료를 없애고 판매자들에게 무료 광고를 허용한 것입니다.
게다가 매년 11월11일 중국 '독신자의 날'에는 짝이 없는 남녀를 위해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펼쳐 오프라인 유통업체들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했습니다.
항상 뻔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던 마윈의 성공 스토리에는 '역발상'이라는 단어를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90%가 찬성하는 방안은 반드시 쓰레기통에 갖다 버린다'는 그의 인생 철학에서도 전례 없는 방식을 좋아한 마윈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거침없는 성격을 더 명백히 보여주는 재밌는 일화도 있습니다. 중국 부동산 재벌 왕젠린 완다그룹 회장과 온라인 쇼핑이 중국 전체 소매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놓고 내기를 한 것인데요.
마윈은 오는 2020년까지 온라인 쇼핑 비중이 전체의 50%를 넘게 되면 왕젠린에게 1억위안을 받고, 50%를 넘지 못할 경우 오히려 1억위안을 주기로 약속합니다. 이는 2013년 기준으로 온라인 쇼핑 비중이 10%대에 지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마윈의 대범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마윈은 최근에도 범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돌연 알리바바 최고경영자(CEO)직을 내려 놓은지 18일 만에 다시 물류 사업으로 경영 일선에 컴백한 것입니다.
그는 인타이, 푸싱, 푸춘 등 주요 유통 물류 기업들과 합작해 '차이냐오네트워크'라는 회사를 설립했는데요. 마윈이 이번에는 유통 물류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며 또 어떤식으로 동굴 문을 열고 금은 보화를 차지하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빈자리를 채울만한 세계 강자로도 평가받는 마윈, 그는 지금도 24시간 이내에 배달 가능한 체제를 정비하는 장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소매업계 혁명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