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국가 에너지정책의 가장 큰 틀인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이 최종 확정됐다. 정부는 공급확대 전력정책에서 벗어나 수요관리형 정책으로 전환할 방침이며, 원자력발전소 비중과 신재생에너지 보급비중을 각각 29%, 11%로 정했다.
그러나 탈핵 운동단체 등 일부 시민단체와 에너지 전문가들은 원전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에기본 수립과정에서 국민의 목소리가 제외됐다는 점을 지적해 논란이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4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를 통해 오는 2035년까지의 국가 에너지정책 비전을 담은 2차 에기본을 심의·확정했다고 밝혔다.
2차 에기본은 발전소를 지어 전력수요를 충당하는 공급확대 정책을 가격체계 개편과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전력망 구축 등 수요관리 정책으로 전환했으며, 지역자급형 발전인 분산형 전원을 활성화하고 발전시장에 민간 참여를 늘리는 게 핵심이다.
특히 가장 논란이 됐던 원전비중은 산업부가 국회에 보고했던 정부안 그대로인 29%로 결정됐다. 이는 2008년 수립된 1차 에기본 때의 원전비중 41%보다는 낮지만 2012년 말 기준의 원전비중인 26%보다는 높은 수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1·2호기 전경(사진=뉴스토마토)
이에 따라 현재 정부가 건설 중인 신고리 원전 3·4호기 등 원전 5기와 건설계획만 세운 신한울 원전 1·2호기 등 원전 6기 등의 준공은 예정대로 추진될 예정이다.
주영준 산업부 에너지정책과장은 "수요전망으로는 2035년까지 총 43GW의 원전설비가 필요하며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확정한 36GW를 고려하면 추가로 7GW의 신규원전 건설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차 에기본과 동일한 11%. 정부는 아직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보급비중만 늘리는 게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대신 1차 에기본 때 중점을 둔 폐기물과 바이오자원 대신 태양광과 풍력, 지열 등 자연자원에 집중하기로 했다.
에너지믹스 차원에서도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뿐만 아니라 글로벌 이슈인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석유·석탄 의존도는 낮춘 반면 청정연료인 도시가스와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늘어났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의 에너지믹스 구성(자료=산업통상자원부)
정부는 또 전기요금에 원전 안전성 강화, 송전망 투자, 온실가스 감축 등 사회적 비용을 반영하기로 했으며 자발적 절전을 유도할 수 있게 수요관리형 요금제 도입하고 현행 6단계인 주택용 누진제는 시민단체와 국회 등과 논의해 단계적으로 개선할 방침이다.
아울러 전기와 다른 에너지 간 상대가격 차이 때문에 전력수요가 전기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을 줄이기 위해 발전용 유연탄을 개별소비세 대상에 추가했다. 유연탄 세율은 ㎏당 24원으로 조정되며 초기에는 탄력세율을 적용해 ㎏당 18원만 과세할 계획이다.
전기 대체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와 등유, 프로판에 대해서는 과세를 완화하고 전기소비를 다른 에너지로 분산시켜 소비자의 에너지 부담을 줄인다. LNG는 ㎏당 60원에서 42원으로, 등유는 ㎏당 104원에서 72원으로, 프로판은 ㎏당 20원에서 14원으로 낮춘다.
그 밖에 발전량의 15% 이상을 집단에너지와 자가용 발전기 등 분산형 전원으로 공급하고 발전시장에 중소·중견기업 참여를 늘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며 안전을 우선한 원전 운영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원전사업자 관리·감독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계획이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2차 에기본을 통해 기존 공급 일변도의 전력정책에서 벗어나 수요 관리형으로 에너지 정책의 물꼬를 틀 계기가 마련됐다"며 "국민의 실생활과 산업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에너지 효율개선 노력이 가속화되고 새로운 산업과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돼 에너지 고효율 경제구조로의 전환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1월9일 서울 광화문에서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 정부의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News1
그러나 2차 에기본 수립 과정에서 국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2차 에기본 수립을 위해 지난해 민·관 합동 워킹그룹을 운영했지만 지난해 12월 열린 공청회 등에서는 탈핵운동 시민단체 등의 출입과 발언을 제한해 논란을 빚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정부가 절차뿐인 공청회를 통해 2차 에기본을 확정하려 한다"며 "정부안은 공급형 전력정책을 고수하는 사실상의 원전확대 정책이고 원전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국민 여론을 듣지 않은 채 원전 산업계의 이해만 반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