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공공기관 정상화를 주문하면서 정부가 공기업 기강잡기가 한창인 가운데 이번에는 공공요금 원가를 검증하겠다고 나서면서 공공요금 인상을 위한 작업이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정부는 추경호 기재부 제1차관 주재로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전기요금과 가스비 등 공공요금의 원가수준 적정성을 철저히 검증해 요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며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원가검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를 표면적으로 보면 서민의 물가부담을 고려해 공공요금을 낮출 수 있다는 의미지만 그동안 공공기관의 경영합리화를 명분으로 여러 차례 요금을 올린 점을 보면 오히려 원가검증은 요금인상을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1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015760) 자료를 보면 2012년 기준 국내 용도별 평균 전기요금은 원화기준 ㎾h당 99.10원으로 미국(111.22원)과 일본(242.21원), 영국(187.29원) 등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 전기요금 비교(2012년 기준, 자료=한국전력)
수도요금 역시 국내 요금은 원화기준 ㎥당 856.6원으로 미국(3393.9원), 일본(2915.6원), 영국(4863.1원)에 훨씬 못 미쳤고,
한국가스공사(036460)는 가스수요 증가와 전력난에 대비하기 위한 가스물량 확대, 가스배관 증설 등으로 가스비 인상을 주장하는 상태다.
또 공공요금은 정부가 물가를 조정할 때 가장 먼저 손을 대는 분야고, 요금을 올리면 올렸지 내리지는 않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전기요금만 해도 정부는 지난 2011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총 5번(평균인상률 4.74%) 올렸고 그때마다 물가도 동반 상승했다.
따라서 그동안 정부가 공공기관에 재무구조 개선과 부채감축을 강하게 압박했고 명확한 지침없이 기습적으로 요금을 조정해 물가를 올렸으면서도 새해 느닷없이 서민물가를 운운하며 요금 원가검증 카드를 꺼낸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민주당 박수현 의원은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공공요금 인상이 도미노를 이루고 서민 생계를 쥐어짜고 있다"며 "공기업의 적자와 부채는 방만경영과 정부의 정책실패 때문에 발생한 것인데 책임을 애꿎은 서민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금이 오르면 당장 비용 증가에 따라 조업에 차질을 빚을 산업계 역시 반발이다.
전국경제연합회 관계자는 "물가가 오르고 비용에 부담이 생기니까 공공요금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공공요금이 물가를 올리는지, 물가 때문에 공공요금을 올려야 하는지 정확하게 따져야 한다"며 "합리적인 명분으로 공공요금을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요금 인상에 대한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요금 원가검증을 추진하는 것은 장래 요금 인상에 대비한 명분 쌓기라는 의견도 있다.
한국행정연구원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수익을 결정하는 원가검증을 통해 원가구조라는 자물쇠를 풀겠다는 것"이라며 "한전은 전기요금을 지금보다 15%는 올려야 수지에 맞는다고 주장하는 마당인데 원가검증은 곧 요금인상을 위한 준비작업"이라고 주장했다.
◇1월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있다.(사진=기획재정부)
이에 대해 정부는 요금인상의 가능성을 부인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원가검증은 주요 공공요금의 인건비와 재료비, 사업비 등이 제대로 산정됐는지, 원가를 지금보다 줄일 수 있는지 검토하는 것"이라며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현재 물가수준와 연동되지 않는 요금은 단계적으로 조정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부 관계자도 "정부가 지난해 말 전기요금을 올렸고 연초에 도시가스비가 인상됐기 때문에 당장 요금을 또 올릴 계획은 없다"면서도 공공기관 경영합리화와 요금 원가검증을 통해 요금을 줄인다는 말은 서로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답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