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약한 존재라도 최악의 상황에선 반발하기 마련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공룡이 참고 참아오다 움직이면 어떠한 일이 생길까?
프로야구계의 아기공룡, NC다이노스가 연고지 이전 문제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현 연고지에서는 더 이상 자리잡기 어렵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마침 다른 지자체에서는 새 연고지를 마련해주겠다고 유혹의 손길이 한창이다. NC가 연고지를 옮길 경우, OB(현 두산)와 옛 현대유니콘스에 이어 프로야구 역사상 3번째 이전이 된다.
과연 아기공룡의 서식지는 어디로 결론이 날까.
◇창원시가 진해구 여좌동의 옛 육군대학 부지에 지으려는 신축 야구장 조감도. (이미지제공=창원시)
◇NC의 선택을 '간절히' 원하는 울산
지난해 1월30일 창원시가 새 야구장의 입지로 진해구 여좌동의 육군대학 부지를 선정한 이후 이어져온 NC다이노스와 창원시 간의 갈등이 서서히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창원시는 온갖 반발에도 불구하고 육군대학 부지를 고수하고 있고, NC는 야구계와 공조하며 입지 변경을 위해 다각도로 대응하고 있다. 양 끝에서 브레이크 없이 달려오는 '폭주기관차'의 질주와 같은 양상이다.
실무진간 대화가 중단된 상황은 아니다. 관련 회의도 이뤄지고 있고 지속적인 교류도 있다. 하지만 대화 자리에서 확인되는 각자 입장은, 기존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울산시는 상반기 중에 개장할 야구장에 NC를 유치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울산은 오는 3월 1만2059석 규모의 야구장을 개장한다. 이 야구장은 관중석 확장이 가능하다.
김종무 울산시의회 의원은 지난 16일 울산야구협회 관계자와의 간담회에서 NC다이노스의 유치 등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강호진 울산야구연합회장은 "NC가 신축야구장 입지와 관련해 창원시와 첨예한 대립을 하는 것으로 안다. 이번 기회에 NC를 울산에 유치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정치권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김종무 의원은 "NC 연고지의 이전은 아직 구단 측의 의사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만약 이전을 추진한다면 의회 차원에서도 유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NC가 연고를 이전한다면 울산은 좋은 대안이다. 신축 야구장이 있고 야구장 확장과 관련된 각종 논의도 수월하게 이끌 수 있다.
기존 연고지인 창원의 팬들이 관람하기에도 비교적 가깝고, 창원시·경남도 입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창원과 달리 울산에서는 시와 곧바로 대화해 애로점을 빨리 해결할 수도 있다.
울산시는 재정상태도 양호하다.
다만 울산은 지역의 야구부 보유 고등학교가 많지 않고 야구장을 롯데 자이언츠가 제2구장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점 등이 약점으로 꼽힌다.
◇울산시가 건설 중인 울산야구장 조감도. (이미지제공=울산시)
◇NC다이노스 유치 원하는 도시, 울산 외에도 많다
현재 NC의 유치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지자체는 울산이 유일하다.
하지만 취재 결과 울산 이외에도 수도권을 포함한 여러 지자체에서 NC가 창원시를 떠날 경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수도권의 한 지자체 국회의원 보좌관은 "창원시와 NC의 갈등이 큰 만큼 NC가 연고지를 옮길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며 "수도권에 야구단이 이미 4팀이나 있고 우리 도시는 야구장이 없기에 유치 환경이 좋지는 않지만 NC의 연고지 이전에 대비한 시뮬레이션은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야구단의 사회 경제적 파급 효과는 크다. 관광 자원과 연계할 여지도 많다"고 강조했다.
한 비수도권 지자체의 시의원은 "우리 시가 인구는 비록 광역시처럼 많지 않지만, NC에서 창원을 포기한다면 유치를 위해서 뛰려 한다. 우리 당 출신 현직 시장과 대화도 했다"면서 "재정이 튼실하진 않기에 NC도 투자를 해줘야만 하지만 대신 NC에게 모두 맡길 것이다. 창원시와 NC의 갈등은 결국 입지에서 비롯됐다. 우리도 도농 통합시지만 NC가 온다면 입지 선택까지 NC에게 일임하려 한다"고 말했다.
또 수도권 한 지자체 고위 공무원은 취재차 연락한 기자에게 "NC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달라. NC를 유치하기 위한 복안도 듣고 싶다"면서 "흔히 '이혼의 책임은 쌍방과실'이라고 하는데 아닐 때도 있다. NC는 책임이 없다"고 단언했다.
이 공무원은 "우리는 비상식인 것만 아니면 법적 한도 내에서 모두 들어주려 한다"며 "우리는 NC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뉴스토마토는 NC가 연고를 이전할 경우 유치하겠다는 소문이 도는 지자체와 해당 지자체 연고의 의원실(국회의원, 시·도의원)관계자 30여명과 통화하면서 유치 의사의 진위 여부와 유치 의지를 살폈다.
이 과정에서 느낀 NC의 지위는 '말 안 듣는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백마타고 오는 귀인'이었다. 재정 규모와 인구수가 다소 부족한 지자체는 그에 대한 보완책을 만들어 NC의 환심을 사려 노력을 하고 있었다.
◇창원시가 새 야구장의 부지로 확정한 진해구 옛 육군대학 터 전경. (사진제공=창원시)
◇NC의 의중은?
NC는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서 최근 여러모로 의미를 둘만한 사건이 판교에서 있었다.
NC구단의 주요 관계자들은 지난 15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위치한 모기업 엔씨소프트 본사를 방문해 엔씨소프트의 임원진과 구단의 진로와 관련된 논의를 장시간 진행했다.
늦은 시각까지 진행된 회의에서는 창원시의 야구장 입지 문제를 포함해 다른 지자체가 NC를 유치하려는 의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논의됐지만, 최종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비록 명확하게 결론을 내린 회의는 아니었지만 모기업과 논의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어려운 결정을 내릴 상황이 됐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야구단 창단 당시부터 마케팅팀의 책임자로서 창원시와 협의를 진행해온 심선엽 NC 팀장은 "기업은 위기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일방적으로 당할 수는 없지 않느냐. 최악의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만일의 경우 창원을 떠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심 팀장은 이어 "연고 이전은 팀내 구성원 모두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다. 특히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익숙한 야구장을 떠나는 것은 물론, 거주지도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또 "외지인으로 창원에서 집을 구한 사람들은 재산손해도 생길 수 있는 엄청난 문제다. 최근 큰 꿈을 품고 이사온 손시헌과 이종욱을 생각해 보라.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금 상황에 많이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윤석준 육성팀 부장도 심 팀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국내의 굴지 건설사에서 16년간 일해온 엘리트 엔지니어 윤 부장은 야구가 좋아서 NC 창단초기에 구단으로 합류했다. 구단 합류 후에는 건설관리팀장으로 야구장 건설과 운영의 기술적 업무를 폭넓게 맡았다. 그렇지만 야구장 건설이 수렁에 빠지면서 팀은 지난해말 끝내 해체됐고, 지금은 육성팀의 D팀(3군) 담당으로 일하는 상황이다.
윤 팀장은 "구단은 지역 기반의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고, 고성군·남해군 등 경남도내 타 지자체는 훈련장 유치 기회가 무산됐다. 그동안 NC는 창원에 적지 않은 투자를 했다. 연고지를 옮기면 돌려받지 못할 '매몰비용'이 된다"며 연고지 이전을 둘러싼 고충을 토로했다.
◇창원시가 새 야구장의 부지로 확정한 진해구 옛 육군대학 터 최근 모습. (사진=이준혁 기자)
◇창원시 "NC가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해 달라"
창원시로서도 신축 야구장 문제는 매우 골치아픈 사안이다.
현 창원시는 2011년 7월 이전을 기준으로 옛 창원시(현 성산구·의창구 지역)와 마산시(현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 지역), 진해시(현 진해구 지역)의 통합으로 이뤄진 통합시다.
통합 이후 창원시는 주요 시설 중 하나인 신축 야구장을 진해 몫으로 챙겨주려 계획했다. 하지만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은 물론, 통합 시너지를 내기는 커녕 소지역 간의 갈등만 확대되고 있다.
더군다나 야구장 문제로 인해 진해의 단점이 지나치게 부각되며 부정적 인식도 늘어났다. '진해구와 (구)창원·마산 간 교통이 꽤 불편하다', '진해 구시가지는 매우 노후하다'는 등의 내용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각종 부동산 사이트를 중심으로 시를 성토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커져가는 모습이다.
지방재정 투융자 심사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해서도 창원시 측에 불리한 결정이 나오고 있다. 안전행정부는 투융자 심사에서 'NC와의 협의 노력'을, 국토교통부는 그린벨트 해제심사에서 'NC와의 합의'를 각각 요구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해결이 끝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야구장을 짓고 싶어도 짓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현재 창원시는 NC가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길 희망하고 있다. NC가 정말 야구장을 원하는 지를 알아야 야구장을 짓든 사업을 중단하든 할 것이라는 의미다.
이용암 창원시 새야구장사업단장은 "창원시는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 지방재정 투융자 심사 통과와 그린벨트 해제는 이제 NC에서 동의하면 원만하게 이뤄진다. NC가 지역 연고의 팀으로서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며고 말했다.
육군대학 부지에 대한 출구전략 수립 여부에 대해서는 "이미 이뤄진 행정행위를 엎기는 매우 어렵다. 객관적인 연구와 절차를 통해 입지를 택했고,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행정 절차를 마쳤다"면서 "만약 옮긴다면 주변 지역의 주민들을 어떤 방법으로 달래고 위로하겠나.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다. 현재의 부지가 크게 하자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곧 창원시장을 사임하고 경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할 예정인 박완수 시장의 입장에 대해서는 "NC가 이렇게 나오고 있는데 뭐라고 말을 하겠냐"면서 "사업단도 당분간 그린벨트의 해제와 해군관사 건립 업무 등에 한해 일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창원시 새야구장건립사업단이 위치한 진해구청. (사진=이준혁 기자)
◇결국 피해자는 팬과 시민
갈등이 길어질 수록 고통이 심해지는 쪽은 창원 시민들이다.
진해구민은 프로야구장이 온다면서 좋아했지만, 이후 아픔은 생각지도 못하게 컸다. NC는 물론 프로야구 모든 구단이 "옛 육군대학 부지에 야구장을 짓는다면 한 경기도 그 야구장에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지역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교통이 불편하다는 내용이 전국적으로 수차례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지역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진해구 NC팬'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진해구 거주자'와 'NC가 잘 되길 바라는 야구팬'으로서의 입장이 충돌했던 것이다. 결국 일부는 팬을 그만 두기도 했다.
최근 울산이 NC를 유치하려 한다는 보도가 연이어서 나오면서 팬들은 더욱 착잡하다.
NC의 최대 서포터즈인 '나인하트'의 신승만 매니저(대표)는 "일단 NC가 창원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누구나 같다. 하지만 사람이 많고 모두 같은 마음을 가지긴 어려운만큼 세부 각론은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NC가 창원을 떠나면 팬을 그만 둔다는 사람도 있다. 널리 알려졌듯 창원 마산에 과격한 팬들이 적지 않은만큼 구단 측에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과정이 너무나 명확했기에 눈물을 머금고 보내준다는 팬들이 많다. 창원을 떠난다면 창원과 가까운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신 대표는 감정이 북받친듯 중간중간 대화를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