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나흘간의 설 연휴가 30일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고향에 가지 못하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여느때와 다름 없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야를 운행하는 버스 운전사가 그렇고, 호두과자를 굽는 휴게소 직원이 그렇다. 텅빈 건물을 홀로 지키는 노령의 경비원도 마찬가지.
설 연휴 등 명절에 급증한 업무량은 과로를 부르고, 이는 종종 사고로까지 이어진다.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모두가 잠든 사이 버스는 달리고..기사 사망, 업무상 재해
버스기사 여모씨는 설을 바로 앞둔 2009년 1월23일 새벽운행을 마치고 귀가했으나 가슴통증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곧장 병원을 찾았으나 진료를 받지 못하고 숨졌다.
유족은 여씨가 근무시간이 증가한 탓에 과로로 사망한 것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금을 신청했다.
여씨는 숨지기 며칠 전부터 정해진 설날 특별수송기간 동안 쉬지 않고 업무에 투입됐고, 하루에 12시간 넘게 운전한 날도 있었다.
사망한 당일도 새벽 1시 출발하는 심야 고속버스를 몰고 3시간30분 거리를 운전했다. 그러나 근로복지 공단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유족은 소송을 냈고, 법원은 여씨의 사망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고인이 설날 특별수송기간이라는 이유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새벽 1시 눈내린 고속도로를 상당한 긴장 속에서 주행한 점 등을 종합하면 과중한 업무로 사망한 것"이라고 밝혔다.
◇설 연휴 100시간 연속 근무 중 사망..격무로 사망
초등학교 경비원 최모씨(73)는 설 연휴가 끝난 다음 날인 2012년 1월25일 숙직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설연휴로 인해 100시간을 연속으로 혼자서 근무를 선 뒤였다.
게다가 사고 전날에는 초등학교에 눈이 내렸고, 그는 혼자서 40여분 동안 제설작업을 했다. 기온은 영하 10도를 밑돌았다.
최씨의 아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으나, 근로복지 공단은 "급격한 업무량 증가는 없었다"며 지급을 거절했다.
법원은 최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고인은 사망 직전 6일 연속으로 근무를 한 상태에서 야간에 추운 날씨 속에서 제설작업을 했다"며 "장시간 근무와 야간근무, 추운날씨에 한 격무 등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밤샘 근무 후 숨진 휴게소 직원..과로사 인정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근무하는 한모씨는 2010년 9월24일 아침 6시쯤 휴게소 화장실 입구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숨졌다. 한씨는 전날 호두과자를 굽는 등 밤샘 근무를 했다.
사망 당일은 목요일이었으나 징검다리 추석연휴 사이에 껴 있어 사실상 휴일과 마찬가지었다. 실제로 전날 휴게소 매출액은 평소보다 2배 가량, 이용객도 3배 정도 많았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한씨의 업무와 사망은 관련이 없다고 봤다. 이에 유족들은 "추석 연휴로 업무량이 폭주해 과로사 한 것"이라며 법원에 소송을 내 승소했다.
법원은 "고인이 쓰러지기 전날은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로서 야간 업무가 급증한 시기였다"며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명절 연휴 사고, 무조건 업무상 재해는 아냐
연휴 기간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거나 과로로 사망했더라도 모두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사고가 업무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이모씨(56)는 2009년 1월 설을 앞두고 물량이 쏠린 택배회사에 일용직으로 취직했다. 하루 근무시간은 1시간 30분 남짓.
그는 설 연휴 동안 쉰 다음에 다시 출근했고, 하역작업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유족들은 "설명절 특수로 늘어난 물량에 맞춰 작업을 하다가 과로로 사망한 것"이라고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법원은 이씨가 출근 전 6일을 쉰 점과 작업을 시작하고 30여분만에 쓰러져 업무량이 많지 않아 보인 점, 일용직으로 근무한 지 20일도 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이같이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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