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윤경기자] 지난 1일(현지시간) 취임한 재닛 옐런 신임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의장에게 부여된 임무가 막중하다. 연준이 작년 12월에 칼을 빼든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완급 조절에 실패한다면 전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이 출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온건적 성향이 강한 옐런 의장은 인준 청문회 등을 통해 경기 부양 의지를 시사하며 테이퍼링 연착륙 가능성을 거듭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옐런을 포함한 이사 전원이 또 한번의 자산매입 프로그램 축소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져 테이퍼링 연착륙 가능성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연준이 돈줄을 바짝 죄게 되면 테이퍼링 후폭풍이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에 연쇄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테이퍼링 연착륙 '글쎄'.."금리 급등, 美경제 부메랑"
테이퍼링은 기본적으로 경기 회복이라는 전제 하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 경제에 단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급격한 테이퍼링이 저금리 기조에서의 빠른 국면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특히, 그간 경기 침체 속에서 잠들어 있던 장기 금리가 고개를 들면서 또 다시 미국 경제에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달 10년물이 3%를 돌파하기도 했던 미국 국채 금리 급등세가 시장 금리 상승과 부채 비용 증가로 이어져 경제 성장에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 추이(자료=미국 재무부)
금리 상승이 미국 정부의 재정부실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임동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미국 공공부문 이자 지출은 2007년 2760억달러에서 지난해 3623억달러로 늘어나는 등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국채 금리 상승 시 미국 재정부실 우려가 재개될 위험이 상존한다"고 말했다.
금리 급등은 기업과 가계의 투자심리에도 찬물을 끼얹게 된다. 경기 자신감의 상징인 테이퍼링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또 다시 미국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간 양적완화 정책 확대에도 불구하고 실물 경제의 활력도를 나타내는 통화 회전율이 상승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테이퍼링이 실물 경기 위축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전망에 더 큰 힘이 실린다.
임동민 연구원은 "강한 경기 회복 기대로 조기 출구전략(7월 양적완화 축소 종료·내년 상반기 금리 인상)이 진행되면 결국 미국 경기 회복도 둔화될 위험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장기 금리 상승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업투자와 주택시장 회복세가 둔화될 위험은 언제든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금리 상승 압박을 견뎌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미국 전국부동산협회(NAR)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테이퍼링 가속화 전망과 맞물려 미국의 모기지 금리는 상승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3.5% 수준이었던 미국 30년물 모기지금리가 지난해 말에 4.5%까지 급등한 것이다.
30년물 모기지 금리 상승세는 올해 들어 다시 다소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향후 오름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심지어 로렌스 윤 NAR 이코노미스트는 "30년물 모기지 금리는 올해 말 5.5%까지 상승할 수 있다"며 "금리 급등은 주택 구매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고용 창출을 중시하는 옐런의 등장에 따라 고용시장 개선 및 소비확대가 미국 경제에 긍정적 측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옐런 의장은 심지어 물가 상승세를 감수하더라도 고용시장 여건이 먼저 나아져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그는 지난해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도 "높은 실업률로 인해 미국 가계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물가를 안정적으로 통제하면서도 완전 고용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美금융시장, 변동성 커지나?..외환부터 주식시장까지 '출렁'
미국 금융 시장은 테이퍼링 가속화로 변동성이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확연히 줄어드는 가운데, 미국 금리가 상승하면서 달러화의 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조 마님보 웨스트유니온 애널리스트는 "연준 정책 변화로 금리가 상승할수록 달러화가 얻는 이득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그간 신흥국으로 쏠렸던 자금이 테이퍼링으로 인해 미국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달러화 강세 전망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신흥국 통화 가치가 급속도로 고꾸라지면서 금리 상승으로 상대적으로 매력도가 높아진 달러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미국 경제방송 CNBC가 21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무려 14명이나 달러 강세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답했다.
제레미 스트레치 CIBC 스트래지스트는 "미국 경제 호전은 미국 국채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투자자들로 하여금 펀더멘털이 견조하고 안전한 미국에 투자하게 만들 것"이라며 "이는 달러화 가치를 빠르게 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주식시장도 당분간 불안한 흐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심리적 요인에 크게 움직이는 미 증시가 최근 테이퍼링을 이끈 배경보다는 영향에 반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호전보다는 최근 연준의 돈줄 죄기에 따른 신흥국 불안이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실제로 2차 테이퍼링이 결정된 날 뉴욕 증시는 일제히 1% 넘는 낙폭을 기록했다. 이는 1차 테이퍼링이 발표된 이후 3대 지수가 나란히 양호한 수준을 보였던 지난해 12월19일 당시와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조나단 루이스 삼손캐피탈어드바이저 스트래지스트는 "연준의 테이퍼링 지속 결정은 향후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라며 "연준은 최근 신흥국 불안보다도 더 큰 규모의 위험이 있더라도 현행 자산매입 축소 기조를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시장에 보냈다"고 평가했다.
반면 뉴욕 증시가 반등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경기 회복세와 함께 채권에서 주식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그레이트로테이션'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임은혜 삼성증권 연구원은 "1985년 이후 달러화 방향과 글로벌 자금 변화를 살펴보면, 달러화 강세 국면에서는 글로벌 민간 투자자와 중앙은행이 달러화 표시 자산 중 미국 주식을 순매수해 비중을 늘렸다"며 "자산 배분 관점에서 보면 위험자산 선호도가 높아져 그레이트로테이션이 명확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옐런이 끊임없이 시장과의 소통을 시도해 증시 안정화를 유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부각되고 있다. 밥 자뉴아 노무라증권 스트래지스트는 "향후 2~3주 내 S&P500지수가 100~150포인트 가량 떨어진다면 옐런이 비둘기파적인 발언들을 잇따라 내놓아 시장을 안정시킬 것"이라며 "옐런의 발언들이 향후 주식 시장 강세로의 전환에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흥국 금융시장, 테이퍼링 망령 살아난다
옐런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미국 금융 시장만이 아니다. 테이퍼링 역풍을 미국보다 먼저 맞는 신흥국도 옐런의 행동을 주목하고 있다. 테이퍼링으로 미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내는 대신 신흥국 통화가 평가절하되면서 그간 미국의 돈 잔치를 통해 신흥국 시장에 풀린 뭉칫돈이 외부로 다시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지난주 FOMC 결과를 보면 향후 매파적인 성향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연준은 신흥국 불안을 외면하는 분위기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연준은 FOMC 이후 성명에서 한 차례도 신흥국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연준의 이번 결정이 향후 신흥국들의 핫머니 유출을 더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어마어마한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라는 전망에 신흥국 시장에는 이미 연이은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달러·아르헨티나 페소화 환율 추이(자료=exchange-rates.org)
주요 신흥국 증시를 반영하는 MSCI신흥시장지수는 지난달에만 7% 폭락해 지난 2012년 5월 이후 최대 월간 낙폭을 기록했다. 또한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올해 들어서 19% 가까이 추락했고, 연준의 2차 테이퍼링이 발표된 날에는 터키 리라화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가치가 모두 1.5% 가량 급락했다.
특히, 터키와 남아공 통화 가치 하락은 미국의 이기적인 테이퍼링 결정이 환율 방어를 위한 두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앞선 기준 금리 인상 결정을 무색하게 했다는 평가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스티븐 잉글랜더 씨티그룹 외환 스트래지스트는 "연준의 이번 테이퍼링 조치는 신흥국 시장에 잘 가라는 인사와도 같다"며 "투자자들은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이라는 마지막 화살을 쏜 이상 더 이상 나설 행동이 없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주 상대적으로 중 위험국에 속하는 러시아 루블화 가치 역시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자 신흥국 금융 시장 위기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전염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도미닉 로시 피델리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신흥국들은 연이어 조수가 빠져 나간 해안에 발이 묶이게 될 것"이라며 "가장 취약한 아르헨티나와 터키에 이어 브라질,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도 뒤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환율 방어를 위해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보유 외환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 국채를 대거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을 이끌어 신흥국 자금 이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다리우스 코왈츠크 크레디트아그리콜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국채 금리 추이가 테이퍼링에 의해 신흥국 금융시장이 받는 피해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흥국 금융불안, 국가 경제위기로 번질까?
신흥국의 금융시장 혼란은 지난 1997년 외환 위기 때와 같은 국가적인 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신흥국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경상수지 적자폭 확대와 정치 불안 등으로 연준의 테이퍼링을 감당할 만큼 튼튼하지 않다는 것이 그 근거다.
신흥국은 선진국과 달리 경제 기반이 취약해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는 즉시 심각한 금리 상승·통화 가치 하락·물가 급등 등의 악순환 고리에 빠져든다. 임동민 연구원도 "미국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한다면 신흥국은 자본이탈→금리상승→통화약세→물가상승→경상적자 확대→경기침체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터키, 러시아, 남아공, 브라질 등의 물가상승률은 모두 5%를 넘어섰고, 인도는 10%대로 주요 20개국(G20) 중 가장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외환보유고가 외환위기를 감당할 만큼 충분치 않은 점은 더 큰 문제다. 지난 2011년 520억달러에 달했던 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고는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274억달러까지 떨어졌다.
유신익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태국, 터키, 아르헨티나, 인도 등은 단기외채의 비중이 높아 단기자금 유출 및 채무 만기환 연장 거부 가능성이 높다"며 "이 중 아르헨티나와 터키의 단기 외채 금액은 지난해 2~3분기에 이미 외환보유액을 초과해 정책적 차원에서의 환율 방어의 여력이 상당히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신흥국이 국제기구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실제 주민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는 다보스 세계 경제포럼에 참석해 "아르헨티나를 지원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히며 구제금융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신흥국의 실물 경기 역시 회복세가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환율 방어를 위해 일부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기습적인 금리 인상에 나선 가운데,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소비자 수요가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향후 신흥국들의 경제 성장률은 줄줄이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월가 전문가들은 터키의 올해 성장 전망치를 당초 예상치의 절반 수준인 1.7~1.9%로 하향 조정했다. 또한 세계은행(WB)은 연준의 출구전략 영향으로 신흥국 경제성장률이 0.6%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다만 신흥국이 금융시장에서의 급한 불만 끈다면 통화 가치 하락은 수출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매튜 린 영국 금융전문 저널리스트는 "신흥국들은 대부분 수출국이지 수입국인 나라는 드물다"며 "생각만큼 신흥국 위기가 큰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통화절하는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무역적자폭이 확대된 신흥국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라며 "이에 따라 수출 증대는 중기적으로 신흥국 경제를 탄탄하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