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기자] 국민은행 도쿄지점 부당대출, 사상 초유의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이어 국내 기업 직원의 부당대출 사고가 또 터졌다. 그동안 사태수습에만 급급하고, 봐주기 식으로 일관했던 금융당국의 '민낯'이 드러났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27일 금융비전을 발표하며 은행권 내부통제 강화 방안 마련을 위한 TF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후 12월3일 1차 회의에 이어 2차 회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6일 금융업계와 당국에 따르면 KT자회사인 KT ENS의 직원이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을 통해 2000억원대의 부당 대출을 받고 해외로 잠적했다. 이에따라 시중은행에서 최소 수십억에서 최대 수백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도 연이어 터진 기존 금융사고와 마찬가지로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사고가 발생했다.
◇ '내부통제 시스템' 개혁없이 사태수습 급급..형식적 절차 결국 화 불러
KT ENS 부장급 간부 김모씨는 회사로 납입될 상품 판매대금이 있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은행과 제2금융권으로부터 2000억원대의 대금을 미리 지급받았다.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은행뿐 아니라 KT 자회사 직원 한사람에게 특정 권한을 지나치게 부과해 악용한 것.
이처럼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매번 '내부통제' 시스템 개혁과 재점검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작 당국은 실효성 없는 무딘 칼만 휘둘러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당국은 은행별로 내부통제를 강화토록 지도했지만 형식적인 예방책만 내놓고 있고, 처벌 수준도 미미하다.
금융당국은 국민은행 사태 이후 은행 내부통제 강화에 적극 나선다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은행연합회, 금융연구원 및 업계 전문가와 함께 '은행권 내부통제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지난해 12월3일 1차 회의를 개최했다.
하지만 두달이 지난 지금까지 2차회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연속성' 없는 대책 마련으로 '보여주기'식 절차만 거친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보유출 사태로 인해 2차 회의가 미뤄졌다"며 "아무래도 큰 사고가 발생해 물리적인 여건 때문에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금융사고 처벌 '관대'..'징벌적 손해배상' 그 이상이 필요
금융전문가들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금융권 악재인 '내부통제' 문제가 '시늉'만 하는 금융사와 금융당국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금융사고'를 일으킨 금융사와 책임자 등에 처벌이 관대하다는 점이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내부통제 사고가 일어나면 주로 개인직원한테 책임을 물고 회피한다"며 "사고 당사자 뿐만 아니라 관리 감독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KT 자회사 직원 사건의 경우에도 해외로 도피한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고 이후 정부는 '관련 매출의 1%'를 기업에 게 부담케 하는 '징벌적 과징금'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는 기업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에 금융사고를 줄이기 위해 '징벌적 집단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되면 내부통제 사고를 확연히 감소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 소장은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집단소송제가 매우 활성화 돼 있다"며 "이럴 경우 기업이 큰 피해를 입기 때문에 내부통제 등의 시스템이 매우 잘돼 있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외국은 기업에서 큰 사고를 내면 퇴출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하지만 한국은 기업 공무원 국회의원, 심지어 국민까지 경제활성화를 1순위로 생각해 기업이 망하면 큰일난다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고 덧붙였다.
즉 금융감독 당국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혁신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것.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금융당국이나 금융사나 사고가 터지면 형식적인 관행으로 내부통제 강화 움직임을 보인다"며 "이들은 내부통제보다 경제 활성화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 아래 사고 후유증이 조금 잠잠해지면 다시 마케팅 활성화에 집중에 내부통제 수준을 높이려는 의지가 없어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