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RSI서평)당신도 언젠가 노인이 된다

'퇴적공간' 오근재 저

입력 : 2014-02-25 오전 10:17:04
[뉴스토마토 서지명기자]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의 주인공처럼 '어느날 문득 내 자신이 노인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직 교수인 저자는 교수라는 직함을 반납하는 동시에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에 빠진다. 사회적인 잣대로 노인으로 분류된다는 것,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노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 길로 집을 나선 저자는 노인들이 머무르는 공간을 주목했다. 탑골공원, 종묘시민공원,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복지센터 등이다. 그는 이 공간에 참여자이자 관찰자로 들어가 이 시대 노인들의 처절한 자화상을 목도했다.
 
2000원만 내면 영화 입장권과 음료 교환권까지 주는 실버영화관, 하루 2000~3000명이 모여드는 서울 종로3가역. 노인들을 위한 이 공간들은 과연 파라다이스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이들 장소는 실버 세대들의 꿈이 현실로 탈바꿈되는 공간이 아니라 현실의 냉혹함에 밀려 '퇴적'된 노인들의 공간이다.
 
각종 복지제도는 어떤가. 기초노령연금제, 기초생활보장제, 일자리 개발지원, 전철 이용 요금의 무료화, 노약자성 지정, 고궁 입장료 면제 등 노년층을 위한 복지제도는 무지개 빛처럼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 제도는 노인들에 대한 배려가 아닌 배제를 인정할 뿐이다.
 
저자는 정상적인 노인들에게 제공하는 이같은 '무료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제도들이 겉보기에는 노년층을 우대하는 듯하지만, 오히려 노인들이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를 여러 측면에서 확인하게 해 삶의 현장에서 노인들을 몰아내는 역기능을 수행한다는 것. 또 현행의 복지제도가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노인들은 더욱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노인들을 이같은 공간으로 끌어내지 말고 가정과 작은 단위 공동체의 일원으로 복귀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적 전환을 주문한다.
 
우리 사회 복지정책의 문제의 본질이 당장의 결핍을 채워주는데 급급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복지는 무료로 제공되는 한 끼의 식사나 한 잔의 커피가 아닌 '작은 노동'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인문제를 사회학이나 생물학적인 측면에서의 상실과 인문학적 측면에서의 인간 가치 사이에 있다고 보고 이를 파고 들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종묘시민공원의 모습을 병치시켜 놓고 해답을 구하는 대목 등은 흥미롭다. 사람과, 공간, 예술이 지닌 가치에 천착해온 학자답게 그저 탐사에 그치지 않고 미술작품과 역사, 철학 등을 넘나들며 노인문제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점은 꽤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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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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