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지난달 17일 조류인플루엔자(AI)가 최초로 발생한 지 45일이 흘렀다. 살처분돼 매몰된 가금류가 300만여만 마리로 추정되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법정다툼도 잇따를 전망이다. 20일 법원의 협조를 얻어 향후 AI관련 송사의 전망을 짚어봤다.
◇살처분 스트레스, 산업재해 인정
환경미화원 김모씨는 2011년 2월12일 등산 중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전날까지 75일 동안 살처분 작업에 투입됐다. 이 기간 동안 162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했다. 밤 11시부터 다음날 오후 6시까지 19시간을 연속으로 돼지 1만여마리를 살처분하는 날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고인은 악몽에 시달렸고, 돼지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린다고 호소했다.
유족은 김씨가 구제역 살처분 작업에 투입돼 받은 정신적 부담이 악화해 사망한 것이라며 소송을 내 승소했다.
법원은 고인이 살처분 작업 후 악몽과 환청에 시달린 점, 살처분 작업은 환경미화원의 통상 작업이 아닌 점, 새벽까지 추가근무를 하고 다음날 정시에 출근한 점을 이유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구제역 가축 살처분 작업을 한 뒤 자살한 경우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다. 정모씨는 지방의 축산협동조합에서 일하며 2010년 12월 구제역에 걸린 돼지를 살처분해 매몰하는 작업을 했다.
갓난 소와 돼지가 산채로 구덩이에 묻히는 모습은 정씨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러다 벌 받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며 동료에게 괴로움을 호소했고,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매몰작업이 끝난 2011년 4월부터 같은해 9월까지는 침출수 제거작업도 했다. 우울증이 심해졌고, 아들에게 "아빠처럼 살고 싶냐"며 집기를 집어던지는 폭력적인 모습도 보였다. 그는 같은해 11월 숙직실에서 독극물을 주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원은 "구제역 매몰작업으로 극심한 정신적 충격이 더해져 감내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며 고인의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판단했다.
이어 "평소 몹시도 사랑한 어린 아들 등 가족의 미래를 고려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억제력이 떨어진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살처분은 예방적 조치일 뿐"
가축이 폐사한 경우 국가가 제때 살처분을 명령하지 않은 탓이라는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B농장은 2008년 1월 운영하는 농장 두 곳에서 돼지콜레라가 발생하자 위생방역 당국에 의심신고를 했다. 한 곳에서만 돼지콜레라 양성결과가 나왔고 다음달 농장의 돼지 1300여마리가 살처분돼 매몰됐다. 그러나 얼마 후 음성반응이 나왔던 다른 한 곳의 농장에서도 돼지콜레라 양성판정이 나와 2000여 마리가 추가로 살처분됐다.
B농장은 해당 지자체인 충주시를 상대로 "살처분 명령을 내리지 않은 돼지들이 콜레라에 걸려 폐사했다"며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B농장이 소송을 낸 이유는 살처분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가축에는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법원은 돼지를 사육하고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관리할 책임은 B농장에 있는 점, 돼지가 폐사하지 않았다면 살처분 지연은 오히려 B농장에 이익인 점을 들어 이같이 판결했다.
또 당시 돼지콜레라 양성판결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살아있는 가축을 죽이는 것은 재산권을 침해하게 돼 최소한에 그쳐야 했던 점도 근거로 들었다.
◇살처분 매몰지 다툼..지자체 책임 없어
2010년 11월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인근 1300여 농가에서 키운 가축 14만6000여마리가 살처분돼 매몰됐다.
김씨는 이듬해 1월 자신의 땅에 살처분된 가축이 묻힌 것을 알게 됐다. 가축주들이 김씨의 땅을 시유지로 착각한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씨는 안동시에 관리를 소홀히한 책임을 물어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법원은 살처분한 가축을 매몰할 장소를 지정할 주체는 가축주이므로 안동시는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 당시 구제역 살처분과 매몰이 짧은 시간동안 광범위한 지역에 이뤄져 안동시가 매몰작업을 일일히 감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3일 한국토종닭협회 관계자들이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닭장을 소독하고 있다. ⓒNew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