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종화기자] 30조원 규모의 수퍼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놓고 논란이 달아올랐다.
지난 외환위기 당시 추경 규모가 13조40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해봐도 30조원은 상상을 초과하는 그야말로 수퍼급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의견이 나오고는 있지만 실제 30조원 규모로 편성될지는 미지수다. 정치권에서 열심히 군불을 지피고 있지만 정작 예산을 편성하는 정부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지난해에도 이미 많이 쏟아부었는데 효과는 별로 아니냐, 밑빠진 독에 자꾸 돈만 부으면 안된다"는 반대의견도 만만찮다.
추경의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해 세계잉여금 4조6000억원 가운데 추경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2조1000억원 정도다. 30조원에 턱없이 모자란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추경규모 확정을 위해 다음 주 당정협의를 가질 예정이다. 독이냐, 약이냐는 논란을 벗어나 다음 주면 사상 최대규모인 추경의 윤곽이 드러난다.
◇ 50조 주장도 제기
30조원이란 구체적인 수치를 먼저 꺼낸 것은 정치권이다.
지난 24일 안경률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추경이 20조~30조원 규모로 알려져 있는데 그 정도로는 경기부양을 위한 추경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해 추경규모가 30조원이 넘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다음 날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추경규모가 20조~30조원을 넘어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면서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만 있으면 규모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입장"이라고 군불을 지폈다.
덩달아 학계 일부에서는 추경 규모를 아예 50조원까지 확대해야만 위기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사태가 이쯤되자 정부가 더 바빠졌다. 정부는 당초 20조원 규모로 추경을 편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 가서 추경 해달라고 매달릴 판에 국회가 먼저 추경을 하라고 다그치니 재정건전성 악화문제는 뒷전으로 미뤄도 된다는 '공인'을 받은 셈이다.
여당에서 추경 규모 30조원 이상을 치고 나오는 것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경제성장률 전망을 -2%로 낮추는 등 성장률 하락에 따른 세수부족과 일자리 창출, 신빈곤층 지원이 그만큼 시급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률 1%포인트를 올리기 위해서는 20조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전망인 -2%의 성장률을 '0(제로)'로 끌어 올리는데만 40조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이에 따라 여권은 기업과 가계가 쓰러져가는 현실 앞에 빚 걱정해서 망설일 때가 아니라는데 공감하고 내부에서는 이미 충분한 논의를 마친 것으로 점쳐진다.
◇ 재원조달은 어떻게
문제는 재원조달을 어떻개 할 것이냐다. 지난해 세계잉여금 4조6000억원 가운데 추경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2조1000억원에 불과하다.
결국 적자국채를 대규모 발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재정건전성 악화는 물론 시중금리 상승을 부추길 수도 있다.
실제 30조원 규모로 추경이 편성되면 지난 2007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 국가채무 비중은 현재의 33.2%에서 40%를 훌쩍 넘긴다. 재정수지 적자는 당초 21조8000억원 수준이었지만 추경으로 인해 대폭 늘어나게 된다.
국채발행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국채발행 예정물량만 19조7000억원 규모다. 여기에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이 60억 달러에 이르는 등 이미 7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와 관련해 한 채권 딜러는 "금융권에서 소화해야할 국채규모가 10조원을 넘어간다면 금리 상승의 우려가 있다"며 "1년 이상의 장기물인 국채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금융회사들은 드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시중 유동자금이 500조원을 넘는 만큼 시장에서 국고채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한국은행이 국채를 직매입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러나 한은이 모든 국채를 직매입할 수는 없다. 부분적으로 한은이 떠앉을 수는 있지만 전체를 매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성태 한은총재는 지난 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중앙은행의 국채인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한다"고 밝혀 처음부터 국채를 직매입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증현 장관도 "세계잉여금과 기타 기금에서 전용하되 부족한 부분은 국채발행이 불가피하다"면서도 "국채 발행은 시장에서 소화되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앞뒤 따질 때 아니다" vs. "밑빠진 독에 물 붇기"
추경의 효과에 대한 반론이 적지 않다. 특히 "앞뒤 따질 때 아니라"는 무책임한 주장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대규모 경기부양 예산이 투입됐지만 별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돈만 들이 부을 것이 아니라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현장 집행 공무원이 26억원을 빼돌리는 엄연한 현실에서 불과 한두달 만에 30조원 규모의 예산을 또 풀겠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라며 "밑빠진 독에 물 붇는 격"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의 부담은 이해하지만 정치권에서 기름을 붇는다고 해서 성급하게 추경을 편성해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정치권의 재촉에도 실제 예산을 편성하는 재정부는 묵묵부답인 이유다.
윤증현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내수부진을 보완하고 경제위기 극복을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추경 규모를 짜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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