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와 맞바꾼 투자..낙수효과 실종 전철 밟는다

입력 : 2014-03-06 오전 11:00:00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모든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에 경제계가 들썩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놓으며 규제 완화를 천명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경제민주화는 전면 후퇴했다. 
 
재계는 화답하듯 올해 투자규모를 늘려 잡았다. 곳간을 풀어 오매불망 고대하던 정부의 갈증을 달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대규모 투자가 집행됨에 따라 해당산업은 물론 후방산업의 연쇄 훈풍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일자리 또한 크게 늘면서 내수 활성화에 대한 희망을 안게 됐다. 이른바 낙수효과다. 
 
600대 기업들은 올해 국내 투자에 지난해보다 6.1% 증가한 약 133조원을 투입할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30대 그룹의 투자 비중치는 80%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30대 그룹은 올 한 해 국내외에 150조원을 투입한다. 
 
물론 이는 목표치로 대내외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지난해의 경우 600대 기업이 목표치로 내세웠던 129조원 규모보다 3조7000억원(4%) 줄어든 125조3000억원만 집행됐다. 30대그룹의 경우 투자 집행율은 이보다 현격히 모자란 80%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 투자가 대부분 해외로 몰리면서 기대 효과는 크게 반감됐다는 지적이다.
 
◇올해 133조원 투자…전년比 6.1% ↑
 
전국경제인연합회는 6일 매출 상위 600대 기업(금융업종 제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올해 총 투자 규모는 133조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실제 투자액인 125조3000억원보다 6.1%(7조7000억원) 늘었다. 증가율만 놓고 보면 2011년 6.9%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600대 기업 투자계획 및 실적(자료=전경련)
 
부문별로는 시설투자가 전년 대비 5.9% 증가한 103조1000억원, 연구개발(R&D) 투자는 전년 대비 6.9% 증가한 29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6.5% 증가한 86조원으로, 전체의 64.7%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전자부품·컴퓨터·통신장비의 투자금액 비중이 37.2%로 가장 높았고, 자동차·부품(8.3%), 화학(6.3%) 등의 순이었다.
 
석유정제 업종이 무려 72.5%로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정유사의 설비고도화 및 PX 등 신제품 생산을 위한 설비투자가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조선·기타 운송장비 업종도 54.2%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고, 시멘트(43.6%)와 의약품(33.6%) 등이 뒤를 이었다.
 
비제조업의 올해 투자금액은 5.4% 늘어난 47조원으로 조사됐다. 전력·가스·수도 업종이 12.7%, 통신·IT서비스업종이 8.2%를 차지해 투자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가율은 방송·영화·지식서비스업종이 전년 대비 43.3%로 가장 높았다. 도소매업(29.4%)과 숙박·음식·레저업(22.7%)이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와 비교해 제조업과 비제조업은 각각 6.5%, 5.4% 투자규모를 늘렸다.
 
◇ "규제개혁 목표 할당제 도입해야"
 
대신 투자의 발목을 잡는 규제 완화와 함께 정부의 금융·세제 지원 등의 혜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책 과제를 묻는 질문에 600대 기업은 '감세 등 세제지원 확대(24.6%)', '자금조달 등 금융지원 확대(22.2%)', '투자관련 규제 완화(16.4%)' 등을 차례로 꼽았다.
 
또 올해 투자를 늘리겠다고 답한 기업은 255곳으로, 투자를 줄이겠다는 기업(145곳)보다 1.8배가량 많았다. 이는 대내외 경영환경이 불투명하지만, 기업들이 경쟁력 제고와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선행투자에 나서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전경련은 설명했다.
 
◇투자계획 확대 이유(자료=전경련)
 
올해 투자를 확대하려는 이유로는 '경쟁력 제고를 위한 선행투자(24.4%)', '신제품 생산 및 기술개발 강화(23.5%)', '성장산업 등 신규사업 진출(22.5%)' 등으로 조사됐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기업 투자를 가로 막는 요인으로 '규제'를 지목하면서 "산업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규제 완화를 위해서는 정부 부처별로 규제개혁 목표를 할당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오석 장관은 이날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서 규제개혁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하며 재계 요청에 부응했다.
 
◇해외로 몰리는 투자..낙수효과 반감 우려
 
집권 2년차로 접어든 박근혜 정부의 올 한 해 최대 숙원은 경제 활성화다. 특히 극도로 침체된 내수 활성화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 이를 위해 올해를 창조경제 구현의 원년으로 삼고 재계의 투자와 고용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나서서 기업경영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투자·고용 늘리기에 총력전을 펼치겠다며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내놨다. 결국 규제 완화라는 당근책을 통해 기업의 곳간을 풀고 이에 기대겠다는 뜻이다. 
 
다만 대기업의 경우 대부분의 매출을 수출을 통해 올리다 보니 투자 또한 해외에 집중된다. 실종된 낙수효과를 다시 기대하면서 MB 정부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기업들이 대내외 경제 변수를 감안해 공격적 사업 확장이나 차세대 성장모델 발굴에 나서기보다는 안정적 경영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도 정부의 고민이다.
 
재벌들의 대규모 투자 집행을 통한 설비 등 관련 산업의 발전과 이로 인한 고용 창출, 가계소득 증대, 소비 진작이라는 선순환의 고리는 결국 기대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도 정권 출범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며 규제 개혁을 바라는 재계 요구에 적극 화답했지만 끝내 낙수효과를 보지 못했다.
 
일단 출발은 순조롭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월1 30대그룹 사장단과 간담회를 갖고 올 한 해 국내외 150조원의 투자계획을 다짐 받았다. 600대 기업은 133조원 국내투자 목표를 잡았다. 정부의 규제 완화 방침에 대한 재계의 화답이다. 정권 초마다 되풀이되는 공허한 환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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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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