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경화기자] 대한의사협회가 2차 총파업을 철회키로 하면서 우려됐던 의료대란은 피했지만 의정 2차 협의문 발표 이후 논란이 불거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조 개편의 경우, 실제 실현까지는 상당한 난항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17일 마지막 의-정 재협상을 진행할 당시.(사진=이경화 기자)
앞서 지난 17일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는 최종 담판 끝에 그간 핵심쟁점이었던 원격진료 도입 이전 시범사업 시행, 투자활성화 방안 논의 과정에 보건의료계 참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성 변경,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에 대해 협의안을 도출했다.
특히 의료수가와 건강보험료 인상 등을 결정하는 건정심 구성안을 의협 주장대로 개편하도록 함에 따라 의료계의 숙원인 수가문제 해결에 한발 다가서게 됐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는 곧 원격원료제 및 영리 자회사 설립 등 그간의 투쟁요인 이면에 실질적으로 수가 인상이라는 근원적 문제가 자리했다는 해석과 직결됐다.
다만 의정 2차 합의문 발표 이후 논란이 불거진 건정심 구조 개선의 경우, 복지부와 의협이 건정심 구조 개선에는 합의했지만 이는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건강보험법 개정사항이기 때문에 실제 실행 여부에 대해서는 난항이 예상된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양측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보수가 협상 결렬시 가입자와 공급자가 독자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조정소위원회를 구성키로 합의함으로써 수가협상에서 보험자는 배제되는 극단적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때 가입자와 공급자의 협상으로 결정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법 제14조에 명시된 보험자인 건보공단 업무(보험급여 관리, 보험급여 비용의 지급 등)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또 보험자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는 비난의 소지가 있다.
현재 건정심은 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공익대표(복지부, 기획재정부, 건보공단 등) 8명, 가입자 대표(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 8명, 공급자 대표(의협, 병원협회, 약사회 등) 8명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복지부와 의협은 이번 의정 2차 협상을 통해 공익대표(현재 8명) 중 정부가 추천해오던 몫(현재 4명)을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협 등 공급자가 같은 수로 추천하도록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키로 합의했다. 그간 의료계는 건정심 공익대표에 대해 정부 편에 선다며 지적해온 터라 복지부의 실행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법 개정 이외에도 난항은 존재한다.
정부와 의협이 ‘공익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해 구성한다’는 협의 내용의 해석을 놓고 동상이몽하는 모습을 보여, 건정심 개편 방향을 놓고 의정 간 대립이 여전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복지부는 협의안에 대해 “현재 정부만 추천하는 공익대표(현재 전체 공익대표 8명 가운데 4명)를 앞으로는 가입자 측과 의협 등 공급자 측이 같은 수로 추천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며 “필요에 따라 추천을 통해 선임되는 건정심 위원 수 자체를 조정하거나 전체 건정심 구조 개편도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제도와 관련해 정부가 빠질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의협은 “정부 관계자를 빼고 공익대표 모두(현재 8명)를 가입자·공급자가 절반씩 추천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의 이견이 극심해 건정심 개편안 합의 규정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만약 의협 계획대로 건정심 구조가 개편될 경우 수가 인상은 불가피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건보공단이 약 8조원의 적립금을 쌓아두고는 있지만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보장 강화, 비급여 항목 건강보험 제도 편입 등이 예정돼 있는 등 추가적 지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재 연 건보료 인상폭은 1~2% 수준이지만 앞으로 인상폭이 대폭 확대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시민·노동단체 등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 후폭풍이 휩싸일 공산이 크다.
◇참여연대와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느티나무홀에서 앞서 2차 의-정 협의결과에 대한 분석 비판 기자설명회를 가졌다.(사진=이경화 기자)
시민사회는 이번 의정 협의안을 '야합'으로 규정하고 “정부는 국민 보험료 부담은 고려하지 않고 의료계 달래기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맹비난했다.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은 “의협은 국민 합의의 명분으로 의료영리화 저지라는 대의를 들고 집단휴진에 나섰지만, 실질적으로 취한 것은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수가인상 구조 법 제도화”라며 “정부와 야합으로 쟁취해 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눈에 가시 같은 건정심의 구조를 공급자(의사)에게 유리한 구조로 취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협의내용처럼 공급자 중심으로 과반수가 채워질 경우 국민을 대변하는 쪽이 취약해져, 결국 국민들은 건강보험 결정구조에서 쫓겨난다”고 지적했다.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 역시 “의협이 이번 협의에서 수가인상 문제는 제외됐다고 했지만 정부가 내준 건정심 개편이나 조정소위원회의 구성은 결국 의료계 쪽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면서 “가입자의 권한이 무시된 건강보험 구조개선 방안에 대한 단독 협상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편 의협은 지난 20일 의정 협상안 찬반투표 결과를 발표할 당시 정부가 이를 불성실하게 이행할 경우 다시 총파업을 강행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향후 건정심 구조 개편 실현 여부에 의료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