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고은기자] 새누리당이 '국가 망신'까지 주장하며 처리를 촉구했던 '원자력방호방재법'이 결국 지난 21일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 했다.
시차, 행사 시작 시간까지 따지고 따지면 다음 주 월요일 오후까지 협상 기한은 남아있지만 민주당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이런 상황은 낯설지 않다. 가까이 2월로만 돌아가도 여야는 2월 임시국회에서 '기초연금법'으로 공방을 펼쳤다.
2월에 미처 처리하지 못한 '복지3법'을 위한 '원포인트' 국회도 제안됐지만 본회의장 문턱은 밟지도 못하고 끝났다.
여당은 지루한 국회 공전의 원인으로 '국회 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을 지목한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대대표는 지난 19일 "선진화법이 국정운영 발목 잡는 협박 도구가 되고 있다. 우리 중점법안이라는 말만 하면 야당의 중점제동법안이 돼 정략적 볼모가 된 것이 현실이고 선진화법이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 일으키는 괴물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선진화법 입법을 주도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같은 날 "날치기와 몸싸움을 내려놓고 밤을 새워서라도 결론 이끄는 새정치를 해보자는 국회선진화법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입법 당사자로서 개정 논의에는 소극적이지만 도입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여당이 국회 공전으로 인한 답답함으로 선진화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법의 도입을 주도한 정당의 자가당착이라는 평이다.
오히려 국회 공전의 더 근본적인 책임은 정부여당의 정치 협상력 부족에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법안 단독처리가 어려운 다수당이 법안 통과를 위해 소수당에 합리적인 중재안을 제시하거나, 소수당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강력한 여론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소수당의 비토파워(거부권)가 커지면서, 여당의 '선진화법으로 비효율성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면서도 "정부여당이 설득할 만한 정치력의 부재를 선진화법에 책임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미국처럼 정말 중요한 법안이라면 대통령이나 당이 직접 나서서 야당을 협상의 대상으로 여기고 대화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했느냐가 중요한데 충분히 노력했다는 느낌은 없다"고 덧붙였다.
정치 한복판에서 정치가 실종됐다는 분석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 '오바마케어', '시퀘스터' 등 중요한 정치 국면마다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을 백안관으로 초청해 대화와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원자력법'의 해당 상임위 간사인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다수당의 협상력'에 대한 질문에 "협상은 상대방이 어느 정도 상호적인 바탕에서 이뤄지는데..."라며 원자력법과 방송법의 일괄 타결을 요구하는 야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러나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의원총회에서 "편파방송을 고집하고 민생을 팽개치면서 국가 위신과 대통령 체면을 손상시켜서는 안된다는 정부여당의 태도는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대응했다.
오는 5월이면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지도 2년이다. 볼썽사나운 여야 의원들의 몸싸움이 사라지는 성과도 있었지만, 대화와 협상의 정치의 안착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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