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우리나라와 호주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이 유엔이 규정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의 투명성 규칙을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ISD가 진행되더라 국민은 이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8일 정의담 김제남 의원(사진)이 한-호주 FTA 관련 자료를 검토한 결과에 따르면, 이번 FTA에는 유엔국제무역법위원회(UNCITRAL)가 정한 ISD 투명성 규칙을 배제하는 부속서한이 포함됐으며, 협정 발효 후 1년 뒤에야 이 규칙의 적용 여부를 재협의하는 것으로 됐다.
투명성 규칙은 ISD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채 소송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엔 총회가 올해 4월1일부터 발효한 제도로, ISD가 시작될 경우 소송 당사국은 중재 개시 통지문과 소송 관련 서류를 모두 공개하고 제3자의 의견제출권, 공개 청문 등을 보장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라나는 미국이 펀드사인 론스타와 ISD를 진행 중이지만 일반 국민들은 국제중재신청서는 물론 소송 진행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 정보 미공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한-호주 FTA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게 된 것.
이에 대해 김 의원은 "투명성 규칙은 4월 발효 후 이때부터 도입되는 모든 FTA 자동 적용되는데 정부는 어떠한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 규칙의 적용을 배제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어 "한-호주 FTA의 ISD는 한-미 FTA의 ISD와 일란성 쌍둥이 수준의 동일한 내용"이라며 "그동안 국회가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ISD 개선을 요구했는데 호주와의 FTA에서 한-미 ISD를 그대로 도입함으로써 한-미 FTA ISD 재협상의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번 FTA에서는 호주 정부의 외국인투자심사제도에 따른 투자 인허가 결정을 ISD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호주는 외국인투자심사제도를 통해 미디어와 통신, 국방, 농업 등 민감한 영역에서의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포괄적 유보가 존재하지 않고 있다.
김제남 의원은 "정부가 한-호주 FTA에서 ISD 투명성 규칙을 배제한 것은 국회의 요구를 무시한 '쇠기에 경 읽기'"라며 "박근혜정부의 통상독주는 이전 정부보다 도가 지나치며 통상독재라고 말해도 무리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한편, 우리나라와 호주는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토니 애벗(Tony Abbott) 호주 총리 간 정상회담을 열고 한-호주 FTA 협상에 공식 서명했으며 이르면 올해 하반기 중으로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거쳐 FTA를 정식 발효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