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소극적 자살이란 말이 가능할까.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고독사가 소극적 자살에 해당할 수 있다. 홀로 사는 노인이 식사를 거부하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 소극적 의미의 자살에 가깝다는 것이다.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처리 건수는 지난 2010년 715건에서 2012년 810건으로 급증했다. 통계에 잡히는 것만 이 정도다.
합계출산율이 극도로 낮은 것을 우리 사회의 소극적 자살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현세대가 다음 세대를 남기지 않는 현상이라는 점에서다.
합계출산율은 2001년부터 1.2명 수준에서 등락이 반복됐다. 초저출산율 기준 1.3명 이하인 상태가 10년을 훌쩍 넘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총인구 중 생산가능인구의 비율이 2012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올해는 73.1%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했다. 학생 수는 2010년 1001만명에서 2050년 562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적극적 자살이 많은 정도는 익히 알려졌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먼지가 자욱한 도심(사진=김동훈기자)
◇정부 대책 미흡
정부가 자살률을 감소시키기 위해 2004년부터 5개년 단위의 1·2차 자살 예방 종합대책을 추진한 지 10년이 넘었으나 자살률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런 배경에는 적은 예산도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자살 예방 관련 예산으로 75억원가량을 편성했다. 지난해 집행된 51억원보다 늘어난 것이라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자살률 1위 자리를 차지했던 일본이 많은 예산을 투입해 불명예 국가에서 탈출한 사례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이상영 보사연 보건정책연구본부장은 "일본은 자살 관련 예산을 연간 3000억원 이상 투입했다"며 "우리나라는 자살 예방 관련 인력이나 예산 측면이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자살 예방 관련 예산이 많다고 보긴 어렵지만, 2005년 2억원을 투입한 것과 비교하면 증가율이 높은 것"이라며 "일본의 경제 규모나 예산의 성격 등을 고려하면 예산 규모를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맹독성 농약 유통 막아야
자살자 수의 증가를 막는 즉각적 대책은 자살 수단을 통제 또는 관리하는 것이다. 맹독성 농약의 유통을 막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그라목손이란 맹독성 농약의 생산을 2011년 중단토록 하고 2012년에는 유통까지 중단시킨 결과 자살 시도자가 줄었던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농약 자살자는 2008년 3296명에서 2012년 2103명으로 크게 줄었다.
하지만 이는 일부 사례다. '자살 다리'라는 오명이 붙은 서울 마포대교에 CCTV를 설치하고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각종 문구를 새기는 등의 노력은 효과가 미미했다는 평가가 많다. 자살 도구로 사용되는 번개탄이나 압박 붕대의 판매를 막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고층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수단을 통제한다고 해서 근본 원인이 사라지지 않는다.
종합적이면서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선진국의 경우 국가가 나서 종합 대책을 마련해 자살 문제에 대응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사연의 보고서와 유럽의 논문을 보면 실제로 2000~2010년 OECD 회원국 33개국 가운데 25개국의 자살률은 3.8~40.2%가량 줄었다. 이 기간 33개국 자살률 전체 평균은 7.0% 줄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95.3%나 증가했다.
◇한국, 핀란드, 덴마크 연도별 인구 10만 명당 기준 자살비율(자료=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진국은 어떻게 극복했나?
자살 문제를 극복한 선진국 사례를 보면 핀란드의 경우 '보건복지 국가연구개발센터인 'STAKES'가 자살 예방 사업의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시행해 성과를 거뒀다.
우울증 프로그램인 '기운 내!'(Keep Your Chin Up!)은 1994년에서 1998년까지 진행됐고, 자살 예방 프로그램은 1986년부터 1996년까지 집중적으로 추진됐다. 국민의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의미 있는 삶'이란 프로그램은 1998년에 추진돼 정부와 관계부처, 비정부기구(NGO)가 모두 참여했다. 그 결과 핀란드는 1990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가 30.3명을 기록했으나 2005년에는 19.3명으로 감소했다.
덴마크는 자살 예방이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한 사회현상으로 인식하고 중앙 정부에 의한 공공보건프로그램을 지속 가동하고 있다. 덴마크의 1980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35명꼴로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였으나, 2010년 기준 자살자 수는 10만 명당 11.3명으로 줄었다. 특히 자살이나 출산 문제를 따로 보지 않고 인구 정책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차별점이라는 평가다.
보사연의 '한국사회의 갈등 및 병리 현상의 발생현황과 원인분석 연구'라는 보고서를 집필한 연구자들은 "핀란드와 덴마크 사례를 보면 정부의 자살예방노력으로 어느 지점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며 "한국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시스템의 부재가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노법래 자살과 학생 정신건강연구소 연구원은 "핀란드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풀 패키지 정책을 내놓고 사회 운동을 벌여 성과를 거뒀다"며 "우리나라도 정부는 물론 학교와 직장, 언론 등이 동참해 사회적 노력을 해야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