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혁의 스포츠에세이)강압적 지도방식, 언제까지

입력 : 2014-04-21 오후 3:33:13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대형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선수들과 감독들은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관중들은 응원 함성을 줄였다. 그라운드는 뜨겁지만 골 세리머니는 냉정하고 차갑다.
 
하지만 운동장 뒤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성남FC의 박종환(76) 감독이 선수를 폭행했다. 프로스포츠 통틀어 '최고령' 감독인 그가 50년 가까이 차이 나는 선수들을 때렸다.
 
◇지난해 12월 성남FC의 초대 감독에 선임된 (오른쪽)박종환 감독. ⓒNews1
최근 성남FC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박 감독이 지난 16일 오후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성균관대와 연습 경기 도중 김성준과 김남건의 안면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렸다는 폭로 글이 올라왔다.
 
당시 박 감독은 "전반전을 마치고 두 선수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잘하라는 의미로 이마에 꿀밤을 1∼2대씩 때렸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는데 하루면 족했다.
 
성남FC는 17일 오후 "구단이 진상 조사를 한 결과 박 감독이 김성준과 김남건 선수 폭행을 인정했다"고 알려왔다. 다만 성남은 "박종환 감독이 해당 두 선수에게 사과했다. 재발 방지 약속을 했다"면서 "선수들도 박 감독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사건이 확산하는 걸 원치 않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3월 광양에서 열린 마무리 전지훈련에서 선수들에게 줄 김치찌개를 만들고 있는 박종환 감독. (사진제공=성남FC)
지난해 12월 성남FC의 감독 선임을 놓고 여러 감독이 물망에 올랐다. 한 인터넷포털은 '시민구단 성남의 초대 감독으로 적합한 인물은?'이라는 설문을 진행했다. 결과는 신태용 전 감독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 뒤를 안익수 당시 감독이 차지했다. 허정무 감독과 박종환 감독은 그 뒤를 잇는 데 그쳤다.
 
하지만 성남시 시민프로축구단TF는 우왕좌왕했다. 감독 선임과 관련해 몇 차례 통화에서 "모르겠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구단주이자 성남시장인 이재명 시장과 TF팀의 소통도 전혀 안 됐다. 나중에 고위층 인사에게서 "박종환 감독이 뽑힐 것"이란 말이 흘러나오자 "확인해보겠다"는 말만 늘어놨다.
 
그렇게 '시민구단'을 천명하면서도 성남FC는 팬들과 동떨어진 감독 선임으로 첫 단추를 끼웠다.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부산에서 성남으로 건너가 팀을 위해 헌신했던 안익수 전 감독은 순식간에 실직자가 됐다.
 
게다가 안 감독은 당시 프로축구연맹이 실시하고 있는 영국 지도자 연수에 참가하고 있었다. 수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모든 것이 진행됐다. 일방통행이었다.
 
박종환 감독 선임 이후 일부에서는 "그의 감독 경력은 인정하지만 너무 오래 현장과 동떨어져 있었다", "과거와 같은 강압적인 훈련방식으로는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등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시각에 박종환 감독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구단을 만들겠다"고 대응했다.
 
물론 박종환 감독의 지도력은 과거에 인정받았다. 그는 1989년 일화의 창단 감독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해 1993~1995년까지 K리그 최초의 3연패를 달성했다. 2003년 대구FC 초대 사령탑으로 2006년까지 팀을 이끌기도 했다. 이번이 약 7년 만에 현장 복귀인 셈이다.
 
하지만 결과는 또다시 시끄러운 폭행 사건이다. 박종환 감독은 지난 1993년 K리그 경기에서 심판을 때려 중징계를 받는 등 폭행과 관련한 구설에 수차례 오른 바 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서 박종환 감독의 강한 지도방식은 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사건은 프로 스포츠의 은밀한 부분 중 한 단면일 수도 있다. 아직도 심심찮게 프로 구단에도 구타가 있다는 말이 떠돈다. 최근에는 K리그 챌린지(2부리그) 부천FC에서도 폭행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런 일들은 구체적인 장면을 보기 전에는 완벽한 사실 확인이 어렵다. 언론의 뒤에서 경기장 밖에서 그들끼리 있을 때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아마추어인 학생 선수들 대회를 가보면 여전히 일부 지도자들의 폭언과 고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축구뿐만이 아니다. 그렇지만 현장에 있는 학부모들 대부분은 자식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를 모른척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08년 11월 발표한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 발표'를 살펴보면 전국 중고교 학생선수 1139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898명(78.8%)이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중 폭력을 경험한 56.4%의 학생은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주된 폭력의 행위자는 코치, 선배 순으로 나타났는데 지도자의 폭력이 학생 선수들 간의 폭력과 구타 문화를 재생산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동한 결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지도자의 폭력이 선배 선수를 타고 후배 선수까지 이어진다는 전망이다.
 
흔히 성공한 운동선수에게 "학교 다닐 때 소풍 몇 번 다녀왔나요?"라고 우스갯소리로 질문하는 이유가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소풍은 숙소나 훈련지를 무단이탈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실제 지금 지도자들을 만나다 보면 예전 맞으면서 운동하던 시절의 얘기가 가끔 나오곤 한다. 그러나 대개의 지도자는 "지금은 그때랑 시대가 다르다. 젊은 선수들이 더 똑똑하다. 지도자도 공부해서 이들을 이해시키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지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때리고 소리쳐서 없던 힘까지 짜내던 시대는 끝났다. '형님 리더십'이란 말이 괜히 뜨고 있는 게 아니다. 박종환 감독 자신이 말했던 "모범적인 구단"을 위해 얼마나 선수들과 소통했는지 의문이다.
 
현재 성남FC는 박종환 감독의 징계 수위를 논의 중이다. 빠르고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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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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