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가요계가 ‘올스톱’됐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각종 음악 방송 프로그램과 콘서트 등의 활동이 잠정 중단됐다. 신곡 발표를 앞둔 가수들의 앨범 발매가 잇따라 연기되면서 특정 시기에 굵직굵직한 가수들의 컴백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그런 가운데 일부 가요 관계자들 사이에서 “치열한 컴백 경쟁을 앞두고 명확한 심의 기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신곡 '마리오네트'를 발표했던 걸그룹 스텔라는 파격적인 의상과 안무 등으로 인해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탑클래스엔터테인먼트)
◇심의 기준 주관적..선정성 논란 반복돼선 안돼
올초 가요계는 걸그룹들의 도를 넘은 선정성 경쟁 때문에 떠들썩했다. 하지만 가요 관계자들도 할 말은 있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안무와 의상을 바꾸는 것이 큰 일인데다가 선정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음악 방송에서의 의상, 안무 등에 대한 규제는 기본적으로 제작진에 의해 이뤄지는데 딱 떨어지는 기준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한 방송사 PD는 “노래와 안무, 의상이 어느 정도 어울리는지를 본다”며 “하지만 적정선을 맞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걸그룹들의 선정적인 무대 의상과 안무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3월 전체회의를 열고 청소년 시청 보호 시간대에 여성 그룹의 선정적인 안무 장면을 방송한 지상파, 케이블채널의 음악프로그램에 대해 권고 조치를 내렸다.
당시 문제가 됐던 것은 “옆이 깊게 트이거나 몸에 밀착되는 치마를 입은 여성 가수들이 바닥에 엎드려 허리와 엉덩이를 흔들면서 튕기는 모습”, “치마의 트인 부분을 걷어 허벅지 안쪽을 노출하는 모습”, “바닥에 누운 채 허벅지와 가슴 등을 훑는 모습”, “다른 멤버의 손을 엉덩이에 올린 채 엉덩이를 돌리는 모습” 등이었다.
권고 조치를 내린 이유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지만, 걸그룹의 공연이 선정적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이 때문에 가요계에 선정성 논란이 불거진 뒤 불과 몇 달만에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컴백을 앞두고 있는 가수들 중엔 섹시 콘셉트를 선보일 예정인 가수들이 상당수 있다.
◇가수 에디킴의 노래 '슬로우 댄스'는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사진=미스틱89)
◇방송 부적격 판정도 납득 어려워..적절한 기준 필요
걸그룹 크레용팝의 노래 ‘어이’는 지난 2일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삐까뻔쩍 나도 한 번 잘 살아보자 블링블링 나도 한 번 잘살아 보자”란 가사가 문제가 됐다. ‘삐까뻔쩍’이 일본어식 표현이라는 이유였다. '삐까뻔쩍'은 '번쩍번쩍'을 뜻하는 일본어인 '삐까삐까'와 우리말 '번쩍'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악동뮤지션의 노래 ‘갤럭시’도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제목과 가사에 '갤럭시'라는 단어가 반복돼 특정 상표의 스마트폰 광고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에디킴의 노래 ‘슬로우 댄스’ 역시 비슷한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 노래의 가사엔 ‘grey goose’라는 프랑스산 보드카 브랜드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심의 결과를 두고 가요계 일각에선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 가요 관계자는 “삐까뻔쩍의 경우, 사람들이 이미 흔히 쓰고 있는 말인데다가 삐까뻔쩍은 안 되는데 같은 노래에 등장하는 블링블링이란 가사는 왜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은하수에 대해 노래한 ‘갤럭시’를 왜 굳이 특정 상표와 연결시키는지 모르겠다. 특정 단어보다는 노래 전체의 맥락을 봐야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 관계자는 ‘슬로우 댄스’에 대해선 “가사에 ‘grey goose'라고 쓰는 것과 ’보드카‘라고 쓰는 것, 또 ’소주‘라고 쓰는 것은 곡의 느낌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며 “대중 예술을 심의할 땐 거기에 맞는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는 가수 박정현. (사진=블루프린트)
◇가요계, 5월 중순에야 활동 재개 예정
가요계는 국민적 정서 등을 고려해 당분간 애도의 기간을 가질 예정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가요계 활동 스케줄들이 취소됐으며, 콘서트 일정도 줄줄이 연기됐다. 신곡 발표를 앞두고 있던 일부 가수들은 사고를 앞두고 신곡 프로모션을 위한 인터뷰까지 진행했지만, 각 언론 매체에 부탁해 인터뷰를 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소속 가수의 앨범 발표를 앞두고 있는 한 기획사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며 “당분간은 스케줄을 전혀 잡지 않고 있다. 5월 중순이나 말 정도가 돼야 가요계에서 본격적인 움직임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앨범 발매를 무작정 늦출 순 없는 노릇이다. 오는 6월 브라질 월드컵이 개막하기 때문. 전국민적인 관심이 쏠릴 스포츠 이벤트가 열릴 예정이기 때문에 컴백을 앞둔 가수들의 입장에선 월드컵 개막 전에 앨범을 내거나 아예 월드컵 뒤로 앨범 발매 일정을 미루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미 올초부터 각 가요 기획사들은 월드컵 기간을 고려해 컴백 일정을 조율 중이었다.
현재 엑소, 박정현, 정기고, 블락비, 아이유, 티아라 지연 등의 가수들이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