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연예인과 팬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충성도 높은 아이돌 팬들은 아이돌 그룹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존재 이유지만, 일부에선 아이돌 스타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열광하는 10대팬들을 우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사실이다. "공부는 안 하고 매일 연예인만 따라다닌 것 같아 걱정이에요." 여중생 자녀를 둔 한 어머니의 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이돌 스타들의 팬들이 활발한 사회 참여를 통해 한층 성숙한 면모를 보여줘 눈길을 끈다. 성숙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아이돌 팬덤의 변화 양상과 남겨진 숙제에 대해 살펴봤다.
◇그룹 엑소는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새 앨범 발매를 잠정 연기했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성숙해지는 아이돌 팬덤..적극적인 봉사 활동에 나서기도
최근 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사회적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아이돌 팬덤이 적지 않다.
JYJ 김재중의 팬클럽은 올해초 한국심장재단을 통해 심장병 환자 후원금 300만원을 기탁해 심장병 환아 한 명의 수술비를 지원했다. 김재중의 팬클럽은 지난 2010년부터 지속적으로 한국심장재단에 후원을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아동 네 명의 수술비를 후원했다.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돌 스타들이 적극적으로 봉사 활동에 나서는 추세다. 이것이 팬들의 봉사 활동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태국으로 봉사 활동을 나섰던 걸스데이와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 활동을 한 씨스타를 비롯한 많은 아이돌 스타들이 다양한 방식을 통해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고 있다.
팬들 사이에선 아이돌 스타의 생일에 고가의 선물을 하는 대신 봉사 활동을 진행하는 문화도 정착되고 있는 추세다. 샤이니의 태민은 지난해 자신의 생일을 맞아 “이제는 저보다 조금 더 필요한 곳에, 여러분이 저를 대신해 그 정성과 사랑을 나누어 주신다면 그게 제겐 가장 소중하고 더 값진 선물이 될 것 같아요”라며 팬들의 봉사 활동 참여를 유도했다.
관계자는 "경우에 따라선 팬들 사이에서 다른 가수의 팬덤보다 더 큰 규모의 기부나 봉사 활동을 해야한다는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며 "하지만 아이돌 스타에 대한 팬들의 사랑이 올바른 방향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JYJ 김재중의 팬들은 한국심장재단에 지속적인 후원을 하고 있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세월호 침몰 사고에 구호물품 지원..자발적인 참여 줄이어
아이돌 팬덤의 성숙한 면모는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를 통해서도 잘 드러났다. 아이돌 그룹의 팬들은 실종자 가족과 구조활동에 나선 구조요원 등을 위한 구호물품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SNS나 팬사이트 등을 통해 모금 활동을 한 뒤 커피믹스, 핫팩, 칫솔, 치약, 종이컵, 수건 등 현지에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슈퍼주니어 팬클럽 엘프는 '엘프 세월호 구호물품 모금'이란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구호물품 지원에 나섰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새 앨범 발표를 잠정 연기한 엑소의 팬들을 비롯해 소녀시대, 갓세븐, 제국의 아이들 등의 팬들이 구호물품을 지원했다.
해외 팬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아이돌 그룹 팬클럽의 SNS를 통해 모금이 진행되자 해외팬들은 “이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냐?”, “어떻게 하면 모금에 참여할 수 있냐?” 등의 글을 통해 국내팬들에게 구체적인 지원 방식을 문의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아이돌 팬덤을 통해 해외에서도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구호의 손길이 전해질 수 있게 된 것.
팬들은 "큰 힘을 보태지는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와 같은 글을 남기며 실종자들의 무사 기환을 기도했다.
소속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이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구호물품 지원에 나선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국가적인 관심이 모이고 있는데다가 비슷한 나이 또래의 학생들과 관련된 일이라 팬들이 더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며 “팬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돌 그룹의 팬들이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에 적극적으로 구호물품을 전달해 눈길을 끈다. (사진=슈퍼주니어 팬클럽 엘프 트위터)
◇사생팬 문제는 여전..다른 가수 존중하는 관람 문화 정착돼야
이처럼 아이돌 팬덤이 점점 성숙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풀어야할 숙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사생팬들로 인한 문제가 대표적이다. 사생팬들은 아이돌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닌다. 심지어 숙소에 몰래 들어가 해당 아이돌의 물품을 갖고 나오기도 하고, 전화번호나 주민등록번호 등을 알아내 ‘신상 털기’에 나서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아이돌 스타들은 자주 전화번호를 바꾸지만, 번호가 바뀌자마자 “왜 전화번호를 바꿨냐?”는 식으로 사생팬에게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연예인들은 자신의 차량을 뒤쫓는 사생팬들과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벌이다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할 때도 있다. 슈퍼주니어의 이특과 김희철, 빅뱅의 승리 등이 피해를 당했다.
한 아이돌 가수의 현장 매니저는 “가수에 대한 사생팬들의 지나친 집착 때문에 섬뜩할 때가 있다”며 “가수를 보호하려고 해도 잘못했다간 팬에 대한 과잉 대응으로 비춰질까봐 어떻게 하지도 못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다른 가수들을 존중하는 성숙한 공연관람 문화 역시 아직까지는 확실히 자리잡지 못했다.
과거 한 무명 밴드는 행사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객석은 꽉 찼고, 열기는 뜨거웠다. 이 밴드의 바로 앞 공연을 위해 인기 아이돌 그룹이 무대에 섰다. 그런데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은 거짓말처럼 텅 비어버렸다. ‘우리 오빠’들의 무대를 본 아이돌 그룹의 팬들이 행사장을 떠나버린 것. 결국 무명 밴드는 텅 빈 객석을 앞에 두고 공연을 펼쳐야 했다.
10년이 더 지난 이제는 다른 가수들의 공연에 대한 아이돌 팬들의 관람 태도가 많이 좋아진 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얘기지만, 아이돌 팬덤의 엇나간 형태의 사랑 표현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예다. 지금도 일부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의 공연이 끝난 뒤 아이돌 스타의 뒤를 쫓아가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드는 등 공연 현장을 어수선하게 만들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