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경화기자] 대한의사협회 내분이 점입가경이다. 의협 역사상 최초의 현직 회장 탄핵과 맞물려 정관 개정 싸움에 돌입했다.
의협 집행부와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오는 27일 열리는 제66차 정기대의원총회에 각각 정관 개정안을 상정했다. 정관이 어떤 방향으로 트느냐에 따라 의협의 권력지형 변화는 불가피해졌다.
집행부가 정기총회 안건으로 제출한 개정안은 ▲임원·대의원 불신임 ▲회원투표 규정 신설 ▲대의원 선출방법 개선 ▲대의원 겸직 제한 등 기존 대의원회 역할을 대폭 축소하는 개혁안이 골자다. 당초 예고대로 민법상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사원총회를 소집해 ‘대의원 해산의 건’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반면 대의원회 운영위원회가 정기총회 안건으로 제출한 개정안은 대의원회가 협회의 최고의결기관임을 분명히 했다. 예산·선출·인준·불신임과 제정·개정, 감사청구·회원투표에 관한 사항까지 대의원회의 권한을 강화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겠다는 의도다. 또 5월로 예고된 사원총회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분석.
협회장과 관련해서는 현행 의협 정관 14조 ‘회장은 협회를 대표하고 회무를 통괄한다’를 뒤집고 ‘회장은 대외적으로 협회를 대표하고 대의원총회의 의결로 위임된 사항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으로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 권한 없는 회장, 얼굴마담 성격으로 둔 채 막후에서 실력을 발휘하겠다는 의도다.
뿐만 아니라 불신임(탄핵)된 회장·임원에 대한 후속 조치도 규정했다. ‘불신임된 자는 파면으로 간주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회장이 불신임되는 경우 전임 회장으로서의 예우를 하지 않고 불신임된 날로부터 3년간 피선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탄핵된 노환규 전 회장의 보궐선거 출마를 차단하고 파장을 줄이려는 사전조치라는 게 의료계 안팎의 중론이다.
그러면서도 대의원회의 자격과 선출방식에 대해서는 직선제가 아닌, 각 지부의 선택에 맡기도록 한 현 정관을 유지했다. 또 회원자격 취득 후 10년이 경과한 회원만 대의원이 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 대의원 자격을 강화했다. 기존 관행을 잇는다는 설명이지만 이는 개혁에 대한 기득권 지키기로 비친다.
노환규 회장의 탄핵 이후 대의원회가 자신들의 권한을 키운 정관 개정안을 내놓자 노 회장의 우군인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이 대의원회 개혁에 나서면서 대의원회를 압박했다. 세력 대 세력 싸움으로 비화됐다.
전의총 요구안은 ▲예외없는 대의원 직선제 ▲시도의사회 집행부와 대의원 겸임 금지 ▲대의원 3연임 제한(중임 가능) ▲직역에 따른 합리적인 대의원수 재배분 등으로, 21일부터 의협 대의원회 개혁 청원서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해 25일 현재 서명자 수가 3000명을 돌파했다.
앞서 집행부는 지난 23일 법령·정관 심의분과위원회 위원 전원에게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부의 정관개정안’에 대해 절차를 무시하고 대의원회의 초법적 권한 강화를 담고 있다는 내용의 집행부 의견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환규 전 회장 역시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임시총회 결의 무효 확인 소송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함과 동시에 임시총회에서 협회장 불신임 안건 표결에 사용된 투표함에 대해 증거보전 신청까지 낼 예정이다. 의협 내분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다.
오는 27일 정기총회에서 집행부는 물론 전의총과 대의원회 간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면서 정관개정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의원회가 앞서 노 회장을 탄핵했던 임시총회처럼 안전을 핑계로 다수의 용역직원을 동원할 경우 물리적 충돌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대의원회는 25일 노 회장의 최측근인 임병석 의협 법제이사와 방상혁 기획이사에 대한 불신임 발의를 공고했다. 상임이사 2명은 의협 정관에 따라 불신임 결의 전 발의 시점부터 직무가 즉시 정지된다.
방상혁 이사는 지난 1월27일 서울역앞 광장에서 있었던 원격의료 및 의료영리화 저지를 위한 6개 보건의료단체 공동캠페인 행사 때 휘발유를 부어 분신을 시도해 의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임병석 법제이사는 3월30일 임시총회 결의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게 대의원회가 내건 불신임 사유다.
노 회장은 이에 대해 “저들은(대의원회) 37대 집행부가 지금의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사표를 쓰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이 상황을 방치할 것인가, 끝낼 것인가는 회원들에게 달려 있다. 그 결정에 따라 의협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호소했다.
◇대한의사협회 전경.(사진=이경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