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기껏 시장 키웠더니 대기업 가로채기

김치냉장고, 침구청소기에 이어 이제는 '제습기'까지

입력 : 2014-05-07 오후 4:19:30
[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대기업의 횡포가 여전하다.
 
중소기업이 가능성에 주목, 기껏 시장을 키워놓으면 눈치보던 대기업이 브랜드와 자본을 앞세워 시장을 가로채고 있다. 경쟁은 이내 자본 싸움으로 비화되고, 중소기업의 무기였던 기술력과 참신성은 '일반화' 논리에 밀리게 된다. 혁신과 창조의 '실종'이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달아오르고 있는 제습기 시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제습기 시장은 말 그대로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열풍의 중심에는 위닉스가 있었다. 1980년대부터 열교환기를 삼성전자에 납품하고 있던 위닉스는 튼튼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B2C 시장에 눈을 돌려 제습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2578억원의 매출과 21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위닉스는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전년에 비해 각각 34%, 500% 급등한 수치다. 위닉스는 지난해 56만대의 제습기를 판매했고, GFK 기준 시장 점유율은 무려 50%에 달했다. 아열대로 변하는 기후 변화 예상이 적중한 것.
 
이러한 위닉스의 활약을 LG전자(066570)삼성전자(005930)는 눈여겨봤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에너지 소비효율을 개선한 인버터 제습기를 내놨다. LG전자는 지난해와 달리 제습기에 '휘센' 이름을 달았다. 이름값을 내세워 소형가전 분야에서도 '프리미엄 전략'을 통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가전제품 라인업을 동원한 프로모션도 진행하고 있다. 다른 제품과 함께 제습기를 구입하면 제품값을 할인해주거나 가전제품을 덤으로 증정하는 식이다. 제품군이 한정돼 있고, 자본력이 약한 중소기업으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소기업 영역이라고 딱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공정한 경쟁이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제습기 시장은 지난 2012년 40만대 규모에서 지난해 130만대를 돌파해 3배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는 200만대를 넘을 것으로 점쳐진다. 대기업 외에도 위니아만도, 쿠쿠전자, 대림통상, 신일산업, 캐리어에어컨, 동부대우전자, 리홈쿠첸 등 30여개 기업들이 제습기 신제품을 출시하며 경쟁대열에 합류했다.
 
이에 대해 한 제습기 제조판매 업체 관계자는 "지난 4월부터 예상대로 제습기 판매가 잘 되고 있지만 대기업의 공세가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양판점에서 대기업의 보이지 않는 견제나 방해 등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치열하다"고 전했다.
 
제습기 시장에 대기업을 비롯한 30여군데가 넘는 기업이 뛰어든 것은 기술 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제습기는 열교환기와 컴프레셔로 이뤄진 열교환사이클을 중심으로 조작부와 외관 등으로 나뉜다.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자체기술로 제조하거나 중국산 OEM으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의 논리가 소위 '구색 맞추기'나 '부서 이기주의'로 인해 중소기업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소형가전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기업 명운이 걸려있지도 않고 전사적 차원도 아닌 결정이 해당사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에게는 생존을 좌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중소-중견-대기업'의 성장 사다리 또한 원천적으로 불가능케 한다.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대기업이 시장을 키우는 사례는 해외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M&A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매기는 식이 아닌 우리나라 대기업은 별도로 사람을 빼오고 자체기술을 이용해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경쟁자인 중소기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그러면서 "대기업의 끼워팔기나 과도한 프로모션 진행 등 불공정거래 행위 역시 사후 규제인 공정거래위원회의 모니터링과 사전 규제인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 등을 통해 감시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판점에 진열된 여러 제습기(사진=뉴스토마토 DB)
 
일각에서는 대기업은 기술 개발에 매진, 글로벌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국내 시장에서 너무도 '손쉽게' 돈을 벌려고 한다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은 그러한 자본력과 여력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무엇보다 자본논리를 이용한 물량공세나 판매사원 빼가기 등 공정하지 못한 잘못된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대기업에 이른바 찍힐까 노심초사, 불만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습기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에 침투한 여러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김치냉장고는 지난 1995년 위니아만도가 처음으로 '딤채' 간판을 내걸고 출시하면서 원조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삼성, LG 등 기존 대기업과 3파전을 이루고 있다. 부강샘스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침구청소기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지만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대기업이 이내 시장에 뛰어들었다. 에어워셔 역시 마찬가지였다.
 
참신하고 기발한 소형가전 등은 주로 중소기업이 새로 만들어낸 상품군이었다. 대기업들은 하나같이 해당 제품과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 가 있기 때문에 제품을 출시하게 됐다고 항변한다. 자본의 논리 앞에 중소기업의 혁신은 그저 시장성을 검증하는 '마루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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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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