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박근혜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어려운 경제상황도 정부의 정책적 대응 부재보다는 세월호 사고의 애도분위기에 따른 소비위축의 탓으로 돌리는 모양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수습과정에서 총체적인 무능을 드러낸 후에도 선장이나 해운사, 심지어 민간 봉사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던 모습과 흡사하다.
9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긴급민생대책회는 현재의 경기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해결책까지 모두 세월호 사고의 여파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으로 채워졌다.
올초부터 계속됐던 농산물 가격의 하락도, 수십년째 부진한 호남지역의 기업업황도 모두 세월호 사고에 따른 경제문제에 포함됐다.
◇ "경제 회복중인데 세월호가".. 이것도 저것도 세월호 탓
정부의 억지스러운 '세월호 탓'은 이날 발표된 자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경제동향 분석에서 "소비심리가 세월호 사고 직후 다소 영향을 받는 조짐"이라고 표현했고, 물가도 "세월호 사고의 영향으로 요식업 등의 수요가 줄면서 일부 농산물 가격이 하락"했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그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민간소비 지표는 올해 3월말 기준인 1분기 지표가 전부고, 4월 소비자동향조사도 세월호 사고(4월16일) 여파를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농산물 가격문제는 5월 7일 현재 호박과 오이, 대파, 양파 등의 가격이 한달 전보다 4.7%에서 최대 32.5%까지 하락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해당 농산물은 올초부터 줄곧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물품으로 가격 하락을 세월호 영향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정부는 지역경제 동향에 대해서도 "세월호 사고의 영향을 받는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기업심리가 악화되고 있다"는 애매한 표현을 넣었다. 세월호 사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아니고, 받지 않았다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그 근거로 제시한 지역별 산업생산지수를 보면 호남권의 산업생산지수는 최근 오히려 개선되고 있는 추세였다.
호남권의 1분기 산업생산지수는 105.7로 지난해 105.6보다 소폭 개선됐고, 대구경북권의 101.5보다는 크게 높은 수치다. 산업생산지수는 100보다 크면 긍정적인 신호다.
그나마 레저·요식·숙박업 등 세월호 관련업종의 카드승인액 감소현황은 논리적인 근거가 되지만, 백화점과 할인점 매출감소는 세월호 애도분위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봐야 한다.
기획재정부가 이날 긴급민생대책회의 직전에 발표한 최근경제동향(그린북) 5월호는 정부가 세월호 사고를 경제문제로 몰아가기 위한 사전적인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날 최근경제동향 보고서는 우리 경제가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면서도 세월호 사고 이후 소비와 관련 서비스업 활동이 둔화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1분기 전체적으로 볼 때 설비투자를 제외한 모든 산업활동이 개선세"라고 평가한 점은 1분기 이후의 경기부진에 대해 '세월호 탓'을 거론하기 쉽도록 하는 분위기 조성용으로 해석된다.
이날 대책이 애도분위기 때문에 소비가 위축되는 심리문제를 최우선 해결과제로 지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세월호 사고 여파로 소비심리 위축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경제는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중요하다. 심리위축을 최소화하고 경기회복의 모멘텀을 이어가야겠다"고 강조했다.
◇ 기업들은 환율때문에 난리인데 언제까지 '세월'탓 할까
정부가 세월호 사고의 경제적 파장을 주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세월호 탓'에 집착하는 사이 정작 중요한 경제정책과제를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의 투자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환율 문제는 최근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날 대책에는 "설비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라는 평가만 있을 뿐 한줄의 대책도 포함되지 않았다.
원달러 환율은 한달 새 4%나 하락하면서 1000원을 위협하고 있고, 주요 기업들은 연간 사업계획까지 수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4월과 5월의 지표를 봐야 하겠지만, 세월호 사고가 내수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 사례를 볼 때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 "정부에서 소비심리를 얘기하는데, 소비는 작년부터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소비부진은 올해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문제"라고 평가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오히려 더 큰 문제는 환율이다. 이대로 간다면 올해 우리 경제의 최대 리스크요인이 될 것"이라면서 "정부입장에서는 환율은 개입하기가 어렵고, 투자는 기존에 나온 대책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