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군사 공조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서방에 맞설만한 물리적인 힘을 확보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공들였던 에너지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 경제적 실익을 거두는 데는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협상의 키를 중국이 쥐고 있다고 평가하며 앞으로도 양국 간의 협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러·중, 49개 부문 협력 문건에 '서명'..동반 군사훈련 단행키로
20일(현지시간) 가디언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중국과의 공조를 강화해 숨돌릴 틈을 얻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안보와 에너지, 운송과 인프라 등 49개 부문에서 협력한다는 문건에 서명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양국 정상은 또 "양국은 다른 나라의 내정 간섭에 반대한다"며 "타국의 헌법질서를 바꾸거나 일방적으로 제재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간섭을 비난하는 발언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러시아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이 미국의 간섭을 못마땅해한다는 부분에서 양측의 이해관계는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특히, 양국은 안보 부문에서 찰떡 공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날부터 오는 26일까지 동중국해에서 진행되는 중국 군사연습에 러시아 함정 6척이 투입될 예정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은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아시아 중심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선 중러의 군사 공조 소식이 달갑지 않게 들리겠지만, 이로써 중국은 아시아 지역 내 영향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 미국보다 한발 앞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됐다는 이점도 생겼다.
드미트리 트레닌 모스크바 케네기 센터 소장은 "미국의 러시아 제재는 결과적으로 중국이 러시아에 매우 필요한 국가라는 사실을 부각시켰다"고 말했다.
◇러·중, 에너지 협상은 무위로 끝나.."中 급할거 없다"
그러나 러시아가 오랫동안 염원하던 에너지 협상은 무위로 돌아갔다. 러시아가 제시한 천연가스 수입가가 중국이 원하는 수준보다 높았던 탓이다.
양측은 가스 가격을 두고 10년째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푸틴의 방중을 앞두고 러시아의 천연가스회사 가즈프롬이 차이나내셔널패트롤리엄과 여러 차례 접촉하면서 가스 가격을 조율했으나, 협상은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모스코바에 있는 가즈프롬 본사 (사진=로이터통신)
가즈프롬은 중국에 공급할 천연가스 가격을 1세제곱피트 당 최소 12달러는 받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10~11달러 선 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협상할 용의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양측의 에너지 협상이 지연될수록 애가 타는 쪽은 러시아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로 타격을 입어 새로운 자금줄이 필요하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올 초부터 3개월간 러시아 증시는 20%나 하락했고 루블화 가치는 달러 대비 8% 하락했다. 600억달러 자금이 러시아를 이탈하기도 했다.
러시아 비즈니스 여론조사기관 MNI에 따르면 지난 4월에도 러시아에 투자하겠다는 외부 투자자가 많이 줄었다.
이에 지난 13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우크라이나 악재가 지속될 것을 우려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1.3%에서 0.2%로 하향 조정했다.
유럽연합(EU)에 집중된 에너지 수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중국과 아시아 시장이 절실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유럽에 24%의 가스와 30%의 원유를 제공한다.
반면, 중국은 에너지 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이미 중국은 러시아 없이도 충분한 양의 에너지를 수입해다 쓸 수 있다.
이토 쇼이치 에너지 이코노믹스 선임 애널리스트는 "오는 2020년 중순까지 중국은 미얀마를 비롯한 중앙아시아국들로부터 충분한 양의 에너지를 공급받기로 했다"며 "러시아가 가스 가격을 낮추지 않는다면, 협상에 응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가스 가격을 낮추면 협상이 성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