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강 20년째 무파업..비결은 '신뢰'

위기 때마다 고통분담..상생 이정표

입력 : 2014-05-30 오후 12:42:00
[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국내 기업들이 통상임금 문제로 올해 임금협상 갈등이 예고된 가운데 동국제강이 임단협을 평화롭게 마무리 지었다. 이로써 동국제강(001230)은 지난 1994년 국내 최초로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한 이후 20년째 약속을 지키게 됐다. 
 
20년 전 동국제강 노사가 협력과 화합의 동지적 관계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 전까지만 해도 이들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1980년 동국제강의 주력 공장인 부산 공장에서는 전면 파업이 일어났다. 동국제강의 첫 번째 대규모 파업이었다. 당시 공장 가동 중단은 물론 설비 손실까지 발생했다. 5일간의 분규는 동국제강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1987년 9월 동국제강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1991년 7월에는 10일간의 준법 파업이 발생하며 고비를 맞았다. 동국제강 59년 역사에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 파업이었다.
 
당시 파업이 강성 노조의 투쟁 노선에 따른 결과라는 점을 알고 있던 회사는 이에 맞선 대립보다 조합원들 심정에 주목했다. 파업을 통해서는 회사는 물론 구성원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하며 노조와 신뢰를 쌓아 나갔다.
 
10일간 이어졌던 이 파업으로 생산 차질은 빚어졌지만, 노사관계는 오히려 더 돈독해지는 계기가 됐다. 파업 이후 노사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협력을 근간으로 하는 신노사 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통해 회사는 진정성 있는 설득과 소통만이 신뢰의 밑바탕이 된다는 점을 체감했고, 노조 역시 파업과 같은 극한 대립이 결코 실익이 없다는 점을 공감하게 됐다.
 
그리고 3년 간의 준비와 신뢰 쌓기를 통해 1994년 동국제강 노조는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당시 회사는 걸프전 이후 유가 급상승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증대했고, 이에 따른 제품 재고가 늘어나던 시기였다.
 
직면한 위기 극복을 위해 항구적 무파업 선언으로 힘을 보태준 구성원에게 사측은 사원아파트를 건립하는 등 사원 복지 향상 및 지원으로 화답했다. 또 매월 임원 회의인 '책임경영회의'나 각 사업장의 부서장급 회의에도 노조 간부의 참여를 장려하며 각종 경영 현안을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는 전통을 세워나갔다.
 
CEO가 포항, 인천, 당진, 부산의 지역 사업장을 방문할 때마다 가장 먼저 노조사무실을 찾았다. 노조원들과의 대화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노사 화합은 어려울 때일수록 빛났다.
 
동국제강은 90년대 중후반, 주력공장을 부산공장에서 포항제강소로 옮기며 봉형강류 위주의 사업구조를 후판 중심으로 전환하고,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다. 때마침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부산공장 폐쇄와 인적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당시 장상태 회장은 팀장급 이상 임직원들이 사표를 내밀자 "반지를 팔아서라도 제대로 된 공장을 짓겠다. 여러분을 거리로 내 몰 수는 없다. 인적 구조조정이 없다는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며 정리해고 없이 부산에 별도 사업장을 운영토록 지원했다.
 
동국제강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도 인적 구조조정은 겪지 않았다. 고용 안정이 이뤄지면서 노조는 자발적인 임금 동결, 증산 운동 등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탰다.
 
2008년에는 개별기업이 아닌 그룹 5개 계열사 노조가 임금 및 단체협약협상 전권을 회사에 위임하는 '일괄 노사협상'을 타결해 산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역시 노조가 자발적으로 임금을 동결해 사측의 부담을 덜어줬다. 지난해에는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 공동선언'을 통해 노조가 사측에 임금을 위임했고, 회사는 이를 기반으로 불황 타개의 단초를 마련했다.
 
올해도  이 같은 정신은 이어졌다. 항구적 무파업 선언 20주년은 동국제강의 노사 문화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상생의 힘이다.
 
◇지난 28일 인천제강소에서 열린 '2014년 임금 및 단체협약 조인식'에서 남윤영 사장(오른쪽)과 박상규 노조위원장(왼쪽)이 손을 맞잡고 있다.(사진=동국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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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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