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삼성전자와 구글이 공고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홀로서기에도 애를 쓰고 있다. 상대의 필요성에 대한 현실적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대원칙에 따른 고민의 행보로 보인다.
구글은 지금까지 삼성과는 주로 스마트폰 분야에서, LG전자와는 TV와 태블릿 등의 분야에서 협업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구글이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자사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를 기존 제조사 제품에 탑재하는 것에서 나아가 TV와 스마트폰 다양한 독자영역으로의 활로 넓기에 나섰다.
삼성전자도 구글의 안드로이드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자 플랫폼인 타이젠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동맹과 경쟁 사이, 물고 물리는 이해관계 속에서 치밀한 계산과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구글, 안드로이드TV 공개..제품생산 삼성·LG 제외
구글이 지난 2009년 참패했던 TV 시장에 재도전한다. 구글은 지난 25일(현지시간) 구글 개발자회의(I/O) 행사에서 안드로이드 TV를 공개했다.
안드로이드 TV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모바일 OS인 안드로이드를 스마트 TV에 어울리도록 최적화했다. 스마트폰이 TV 리모컨을 대체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게임 패드처럼 이용할 수 있다.
기존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은 물론, TV와 스마트폰을 연결해 유튜브·행아웃 등 안드로이드 OS에서 실행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과 동영상·게임 콘텐츠를 TV 화면으로 볼 수 있다.
또 구글 음성비서서비스 '구글나우'로 방송 채널을 바꾸거나 음량 조절을 할 수 있다. 가령, 거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에 대고 "이진욱이 출연한 영화 알려줘"라고 말하면 목록을 보여준다.
안드로이드 TV는 내년에 소니·샤프·TP비전 등을 통해 출시될 예정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제외됐다. 구글 입장에서는 전 세계 TV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삼성·LG라는 거대 공룡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IT업계 관계자는 "과거 구글이 LG와 손잡고 구글TV를 출시했지만 쓴 맛만 봤다"며 "이번에는 구글이 기존 TV시장 강자에 편승하지 않고 독자노선을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글의 선다 피차이 수석부사장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회의(I/O) 2014'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로이터)
삼성과 LG도 구글과 마찬가지로 자체적인 TV 플랫폼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TV시장에서 플랫폼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이 시작됐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최근 3사는 앞다퉈 소프트웨어개발도구(SDK)를 공개했다. LG전자는 구글과 같은날 웹OS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 TV SDK를 배포했고, 삼성전자도 다음달 1일 타이젠TV SDK(베타버전)를 전용 사이트에서 다운받을 수 있도록 개방한다.
SDK는 TV에 특화한 앱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스마트TV 활성화에 있어 앱과 콘텐츠가 핵심인 만큼 제조사들이 성패를 가늠할 SDK 확장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특히 LG전자의 움직임이 가장 기민하다. LG전자는 지난해 초 HP로부터 웹OS를 인수해 독자적인 스마트TV 사업을 시작한 뒤, 지난 3월에는 웹OS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TV를 출시했다.
LG전자는 올해 출시하는 스마트TV의 70%에 웹OS를 탑재할 방침을 세우는 등 웹OS에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LG전자가 주도권 확보에 나선 가운데 구글은 올해 가을에, 삼성은 내년에 독자 플랫폼을 구축한 TV를 내놓을 예정이다.
구글의 하드웨어 시장 도전은 TV에 국한돼 있지 않다. 모바일·웨어러블기기·스마트카 등 다양하다. 특히 모바일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1위를 유지하고 있고, 웨어러블기기에서도 제조사 중 가장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제조업체 관계자는 "구글과 삼성이 몇 년전부터 맹목적인 협업 관계에서 서로 필요에 따라 줄타기를 하는 관계로 바뀌었다"면서 "업계 판도가 어떻게 바뀌냐에 따라 양사의 관계 설정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타이젠으로 탈 안드로이드 '겨냥'
구글과 반대로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에서의 독립을 노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구글에 대한 절대적 의존도로 인해 '속빈 강정'과 다름없는 처지다.
애플이 독자적으로 구축한 iOS를 기반으로 하드웨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반면, 삼성은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OS시장에 발을 못붙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세계 88개국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 비율은 67.5%로 절반을 넘는다. 특히 한국은 그 비중이 93.4%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삼성전자는 그간 '바다' 등 수차례 독자적 플랫품 구축에 실패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안드로이드 OS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이젠 연합을 결성했다. 삼성전자와 인텔이 주도하는 타이젠 연합은 HTML5 기반의 개방형 OS를 개발했다.
타이젠은 삼성전자의 디지털 카메라 'NX300'에 이어 웨어러블 기기인 '삼성 기어2'와 '기어2 네오'를 통해 상용화했다. 아울러 지난 6월에는 미국에서 열린 '타이젠 개발자 콘퍼런스 2014'에서 타이젠이 탑재된 '삼성Z'를 공개하기도 했다.
삼성Z는 올 3분기 러시아와 인도 등에서만 판매될 예정이다. 북미나 유럽·아시아 등 주요 시장에 출시하지 않고, 모바일 시장에서 변방으로 여겨지는 국가에만 제품을 내놓으면서 삼성이 테스트베드로 삼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동시에 구글에 대한 눈치보기로도 해석된다. 타이젠 가입을 타진했던 연합군 일원들의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구글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보일 행동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라는 풀이다. 생태계가 채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글과의 정면대결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삼성Z를 전 세계에 일괄 출시하지 않고 일부 국가에만 선보이는 것은 타이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방증이자 신중한 행보"라며 "타이젠이 안드로이드와 큰 차별성이 없고 콘텐츠도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시장 관계자들은 타이젠에 대해 '이미 수포로 돌아간 프로젝트', '오는 2017년 타이젠 시장점유율은 2.9%에 불과할 것'이라는 등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타이젠연합에 소속됐던 기업들이 속속 탈퇴하는 것도 타이젠 성공에 대한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타이젠은 '모든 기기의 OS'를 표방하며 지난 2년 간 비공개리에 준비작업을 진행해 왔지만, 일본의 대형 통신·전자기기 회사인 NEC와 NTT도코모, 미국의 스프린트, 스페인의 텔레포니카 등이 타이젠 연합에서 줄줄이 탈퇴하면서 내부적으로 잡음이 인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당초 올해 말 예정됐던 삼성전자의 타이젠TV 출시도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태성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수석은 지난 11일 열린 '스마트TV 기술·개발자 콘퍼런스'에서 "타이젠 OS가 정식으로 탑재된 TV 하드웨어가 내년 초에 출시될 수 있다"고 말하며 출시 연기를 시사했다.
제조업체 관계자는 "삼성이 과거 독자적인 OS '바다'를 내놨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을 기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워낙 IT업계가 급변하기 때문에 적당한 타이밍을 찾지 못하면 타이젠 역시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