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 (사진제공=키이스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2011년쯤이었던 것 같다. 서울 신촌 소재의 모 대학에서 열린 주지훈의 팬미팅. 한국은 물론 아시아 지역의 여성들이 그를 찾았다. 그리고 팬들을 향해 정이 담긴 귀여운 욕설을 날리는 주지훈을 볼 수 있었다. 팬들은 이미 그의 스타일을 알고 있다는 듯 욕에 맞춰 환호를 보냈다.
3년이 지나고 영화 <좋은 친구들> 인터뷰차 주지훈을 만났다. 앞선 미디어데이 이후 세 번째 만남이다. 입담은 당시 팬미팅 때처럼 훌륭했으며, 더욱 진솔해졌다. "난 이미지 관리따윈 하지 않아. 이미 바닥이야. 바닥"이라고 지나치리만큼 솔직하게 자신을 낮춘다.
그가 매력적인 이유는 배우의 본분인 연기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작 <결혼전야>에서 웹툰 작가 경수를 여자들의 로망에 맞게 완벽히 그려낸 주지훈은 <좋은 친구들>에서 보험 영업을 하는 인철로 등장한다. 양아치 기질이 다분하면서도 나름의 정이 있는 인철을 통해 주지훈은 종횡무진 활약한다. "영화에서 주지훈만 보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제는 사람들이 내 말을 좀 더 들어줘. 그러다보니까 아이디어도 내게 되고, 단순히 연기만 하는 게 아니다보니까 일이 점점 더 재밌네"라는 주지훈. 그의 매력에 빠져보자.
◇지성-주지훈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좋은 친구들> 인물들이 옹졸해서 더 하고 싶었다"
확실히 성격이 강하다. 말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의가 없는 것도 아니다. 배려는 배려대로 하고 할 말도 다 하는 타입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시대에 그런 점 때문에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그에 대한 선입견도 이런 점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해 주지훈에게도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지훈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다. 본인도 잘 안다. "내가 싸가지 없을 것 같았다고 하더라고."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한 부분은 인철이 그런 역할이기 때문이다. 말 없이 착하기만한 민수(이광수 분)의 뒤통수를 치고, 나이롱 환자들을 만들어 보험사의 돈을 뜯어낸다다. 상사든 여자친구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자비한 욕설을 던진다. 주지훈이 맡은 인철은 누가봐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다. 선입견과 역할이 너무 겹치는 듯 했다.
"내 성격 알겠지만,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배우가 작품 좋으면 따라가는 거죠"란다.
주지훈은 "이야기가 좋았고, 인물들이 나약해서 좋았다. 나약하기 때문에 강해질 수 있는 거니까. 그리고 인철이 이미지가 재수없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 더 끌렸다"며 "치졸하고 치사한데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은 진심인 그런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했듯 인철은 옹졸하다. 약자에게 더 강한 사람이다. 자신이 잘못을 했음에도 목소리는 크고 잘 뉘우치지 않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결국 자기 반성을 하면서 성장한다.
"참 세상이 재밌는게, 오랜 친구랑 놀면 서로 놀리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어서 엄청 심하게 싸울수도 있어요. 그럼 '내가 이딴 인간이랑 여태 친구를 했나?'라는 생각도 들죠. 근데 또 다음에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밥 먹고 술 먹을 수 있거든요. 그런 감정을 다 컨트롤 할 수 없는 게 인간 같아요. 그러니까 나약하고. 성직자, 스님들이 그런 걸 이기려고 들어가는 거잖요. 그렇지 않아요?"
◇주지훈 (사진제공=키이스트)
◇"의리..정의하기 힘들어"
영화는 현태와 인철, 민수라는 세 친구가 한 사건을 겪으면서 파국을 맞이하는 내용을 담았다. 잔인한 장면도, 심한 폭력도 없이 묵직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승부한다. 자극적인 설정 없는 느와르 영화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소주 한 잔을 친구와 곁들이며 우정을 안주삼기 좋은 영화라는 평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인철과 현태, 민수 모두 의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세 사람의 입장이었다면 최소한 저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모두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세 사람은 모두 의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주지훈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러니 "나는 요즘에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으로 기자들의 성격이 보인다. 그냥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끼리 이런 질문을 하면서 대화가 오갔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어 "관객들이 우정에 대한, 의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작품에 참여한 입장으로서 성공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질문과는 다소 다른 대답을 내놨다.
대답을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인간 주지훈은 의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영화를 찍는 내내 그런 생각이 한 번쯤은 들었을 것 같았다"고 재차 물었다.
주지훈은 이 영화를 남자들의 의리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지 않았다. "인연 혹은 관계를 말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자간의 의리를 앞세운 영화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관계에 대한 얘기다. 가족에게도 해당되고 회사 동료, 업계 동료, 전 이성친구와도 해당될 수 있는 얘기다. 나는 이 영화를 그렇게 봤다. 포괄적인 사람의 이야기로"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감정이 명확하지가 않다. 나쁜 짓은 했지만 죄책감도 있었다. 그 질문에 대해 바로 대답하기엔 너무 철학적이다. 지금 생각나는 대로 말하기도 싫다. 나중에 또 보게 되고 그 때쯤에 만약 답을 말할 수 있다면 그 때 말하겠다"고 했다.
'질문이 그렇게 심오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중에 또 보게되면 그 때는 듣지 않을까 싶다.
◇주지훈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기본은 하는 배우? 아무튼 일이 재밌다"
사실 연기를 이 정도로 잘하는지 몰랐다. 파닥파닥 튀는 물고기처럼 스크린을 누빈다.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고간다.
"이상한게 내가 연기를 잘 한 것도 있는데, 다들 감독이 잘 만들어줬대요. 하하."
웃으면서 약간의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하는 그다. 주지훈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무리 잘 차려줘도 잘 먹지 못하면 연기 호평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 바닥이기도 하니까.
"새로운 모습에 많이들 놀란 것 같다. 연기 호평이 쏟아진다"고 하니 쭈욱 말을 이었다.
주지훈은 "사실 나는 계속해서 전작과 다른 내용의 작품을 선택해왔다. 이번에는 그 간극이 커서 더욱 크게 보이는 것 같다"며 "<마왕>에서는 복수심을 태우면서 절제된 연기를 했었고,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는 코믹을 했다. <결혼전야>에서는 생활 연기를 했다. 이번에는 정극으로 양아치 역할을 했다. 계속해서 필모그래피 변화를 주고 있었는데, 그 간극이 커서 변신이라는 말을 한 것 같다. 난 딱히 변신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요즘 행보를 보면 기본은 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역할을 맡든 충분히 자기 역할 이상을 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고 말한 그는 "필모가 쌓인다는 게 참 좋다. 이제는 제작진이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인간적으로 날 존중해주는 거다. 고맙게도. 내 아이디어가 좋으면 선택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편안해지면서 연기에도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시너지가 나고 점점 일이 즐겁다"고 웃어보였다.
현재 그는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의 신작 <간신> 촬영을 앞두고 있다. 산군의 간신 역이자 타이틀롤이다. 연기를 잘해왔던 주지훈이기에 그가 만들어내는 간사함도 즐거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