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인터뷰장으로 향했다. 기자들끼리 종종 "인터뷰 한 연예인 중 누가 제일 좋았나"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하정우라는 답이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 유머러스한 것은 물론이고 말도 잘하며, 친근하다. 하정우와 인터뷰를 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게 공통된 답이었다.
부푼 기대를 안은채 하정우를 지난 16일 만났다.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이하 <군도>)가 높은 기대감을 만족시켰듯이, 하정우 역시 기대이상의 매력으로 즐겁고 신명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수 많은 연예인과 인터뷰를 했지만, 역대급 매력이었다.
하정우는 영화 속 피부보다 더 검게 타있었다. 그가 연출하고 연기도 하는 <허삼관 매혈기> 촬영에 한창이기 때문이다. "미친듯이 찍고 있어요"라면서 씩 웃는 그의 얼굴에는 <군도>의 도치처럼 개구진 표정이 가득했다.
영화를 두고 혹자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일부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에 앞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확인한다. 하지만 출연 배우가 하정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등장하는 작품마다 새로운 연기,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간 그이기에 하정우를 믿고 영화관을 찾는다. 하정우를 두고 '믿고 보는 배우'라는 찬사가 이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에는 <군도>로 관객과 만난다. 비주얼은 강동원에게, 남성성은 마동석에게, 동정심은 김성균에게 양보한 이 영화에서 하정우는 중심과 유머를 잡았다. 웃기는 백정 도치를 통해 하정우는 또 한 번 굵은 커리어를 쌓았다.
◇하정우 (사진제공=쇼박스 미디어플렉스)
◇"윌스미스·브래드 피트·조니뎁, 그리고 윤택"
<군도>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도치는 백정의 신세로 소와 돼지를 잡다 우연한 계기로 조윤(강동원 분)에게 한 여자를 죽여달라는 사주를 받는다. 큰 돈을 받고 죽이려 했으나 거사는 실패한다. 이로인해 조윤에게 가족들이 몰살당한다. 그러다 의적단 추설의 땡추(이경영 분)에게 낙점돼 추설에 합류, 에이스로 거듭나는 인물이다.
캐릭터를 정말 잘 살렸다. 소소한 틱 장애와 늘 넋이 나가 있는 표정과 눈빛, 무슨 말을 하든 한 박자 느리게 알아채는 이해력, 목숨이 걸려 있는 순간에도 나오는 멍청한 표정이 호감을 준다. 걸음걸이는 흑인을 연상시킨다. 그러면서도 나름의 카리스마가 있다. 그는 도치를 만들기 위해 많은 인물을 가지고 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하정우는 "영화 <핸콕>의 유쾌한 히어로 윌 스미스, <캐리비안 해적> 잭 스패로우의 조니 뎁을 모델링했다. 근데 좀 더 나간 거다. 더 멍청하게. 또 <12몽키즈>에서 브래드 피트도 떠올렸다. 걸음걸이는 흑인 래퍼들이나 스티비 원더의 느낌을 주려고 했다. 감이 늦고 이해력이 부족한 느낌은 개그맨 윤택을 연상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택을 따라하는 연기를 펼치는데 포인트를 굉장히 잘 짚었다. 웃음이 터졌다.
일반적으로 배우들이 다른 캐릭터들은 연상시키지 않았다면서 "오롯이 대본과 시나리오만 연구했다"는 대답과 사뭇 다르다.
"원래 저는 다른 캐릭터 모델링을 해요. 어떻게 하면 더 재밌을까, 관객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영화에 도움이 될까를 생각해야 하니까요."
애초 하정우는 윤종빈 감독에게 어떻게 연기할지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캐릭터에 대해서는 원하는대로 다 이해했으니 내일 봐라"라고만 했었다고 한다. "첫 촬영에서 흑인처럼 걸었고, 윤 감독이 하는 틱장애 연기를 보였다"는 하정우는 "그 모습에서 완전히 예상을 뒤엎은 것 같았다. 신세계라는 반응이 있었다. 반응이 좋아 만족한다"고 웃어보였다.
영화는 히어로물의 양식을 띤다. 가지지 못한자들을 핍박하는 기득권층에 맞서 절대절명의 타이밍에 등장하는 도치다. 하지만 특유의 멍청함한 모습도 일관되게 가져간다.
"일관성을 유지했다. 거기에 가족을 잃은 분노와 화만 담기게 했다"는 하정우는 "이 영화가 오락영화라는 생각에서 허용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정우 (사진제공=쇼박스 미디어플렉스)
◇"태양에너지·건어물 썩은 냄새·꿩·말·도끼..<황해>보다 강했다"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엄청 고생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액션의 양도 적지 않고, 산속과 황야를 옮겨다닌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힘이 많이 든다는 사극이다. 수염과 짚신, 상투, 도포만 해도 한 여름에 찍기는 버거운 설정이다.
"고생만으로 <황해>를 이겼다"는 하정우다.
고생의 출발은 건어물 썩은 냄새였다. 첫 장면 추설로부터 쌀을 받아내는 장면, 도치는 그 때부터 넋이 나가 있었다.
하정우는 "세트장이었는데 시장을 만든다고 건어물을 엄청 쌓아놨다. 여름에 촬영이 4~5일 길어지다보니까 썩은 거다. 도저히 견딜수 없는 냄새였다. 맛이 간 표정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웃어보였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삭발을 한다. 낮의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스킨헤드'가 받아들이면 밤에 그 열기를 내 뿜는다고 했다. 그는 이를 두고 '태양에너지'라고 표현했다.
"그것 때문에 낮에 양산을 쓰고 살았어요. 그래도 열이 밤에 계속 나더라고요. 힘들었어요."
또 하나는 꿩이었다. 극중 마동석은 꿩을 등에 매고 걷는 장면이 나온다. 소품팀은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윤 감독의 의견에 따라 실제로 죽은 꿩을 마동석에게 안겨줬다.
하정우는 "꿩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데, 동석이 형이 계속 몸을 긁더라. '꿩 때문이다'라고 놀렸는데, 옆에 있던 진웅이 형도 긁더라. 뭔가 이상해서 동석이형 옷을 자세히 보니 벌레들이 엄청 모여있었다. 놀라서 꿩을 해부했더니 구더기랑 벌레들이 한 움큼 있었다. 당시 '살인 진드기'가 유행이었다. 다 팬티바람으로 옷을 벗고, 촬영 중단하고 보건소에 갔다"고 회상했다.
예전 촬영 중 말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는 하정우는 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이 영화에서 말달리는 장면이 영화의 문을 열고 닫는다. 장작 14시간의 촬영이 있었다.
"끝났는데 온 다리에 피멍이 들어서 걷질 못했다"는 하정우는 "말이 수십마리가 뛰는데 떨어지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온 힘을 다해서 버텼다. 말이 전력질주를 하더라. 성민이형, 지혜가 말에서 떨어졌었다. 나는 이번에 안 떨어졌는데,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시작했다"고 웃어보였다.
마지막은 도끼다. 백정 출신인 도치는 쌍도끼를 들고 긴 검을 가진 조윤과 맞선다. 그 사이에서 도끼를 돌리는 하정우의 모습은 영화의 백미다.
"이거라도 잘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돌렸다"는 하정우는 "쇠도끼, 나무도끼, 고무도끼로 촬영했는데, 나무도끼로 돌리다가 손가락이 팍팍 꺾였다. 위험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돌리는게 상당히 어려워 테이크를 엄청 많이 갔다. 개인적으로는 좀 미안한 부분이다"고 말했다.
◇하정우 (사진제공=판타지오)
◇"4년 만에 돌아온 강동원은 복 받은 놈"
윤 감독의 영화는 독특한 점이 있다. 첫 번째 인물이 이야기를 이끌면 두 번째 인물이 돋보이는 지점이 그렇다. <비스티 보이즈>에서 윤계상이 이야기를 끌었고, 하정우가 뛰어다녔다.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는 최민식이 이야기를 끌었고, '살아있네' 하정우가 빛났다. 이번에는 하정우가 중심을 잡고 강동원이 종횡무진 활약한다.
"그게 윤 감독 특성이에요. 두 번째 롤이 더 두드러지죠.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미 알았어요. 강동원이 4년 만에 복귀한다는데 복을 제대로 받은 놈이구나라고. 하하."
강동원에 대해 설명을 부탁했다.
하정우는 "동원이랑 촬영을 제일 많이했다. 오랜 만에 나오는 작품이라 의욕이 대단했다. 4월부터 촬영이 시작이었는데 전해 11월부터 준비를 했다. 액션이 정말 좋고 능숙하고, 거의 무술팀 수준이었다. 내가 맞춰주기 힘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동원이가 곱상한 외모와는 다르게 상남자이에요"라는 하정우. 유일하게 말을 무서워하지 않다는 것에서 그렇게 느꼈다.
하정우는 "다른 사람들은 다가가지도 못하는데 뛰어서 올라타더라. 대단한 것"이라며 "맛집도 엄청 많이 안다. 촬영 끝나면 '형 오늘은 떡갈비 집이에요', '산채정식 좋아하세요'라면서 맛집을 찾는다. 촬영 끝날 때 쯤이면 동원아 오늘은 어디서 먹냐고 물어본다. 그럼 천천히 다가와서 맛집을 설명한다. 또 하나는 술을 엄청 잘 먹는다는 거다. 진웅이형이 다음날 낮까지 술을 먹는데 그만큼 먹더라"고 설명했다.
후배에 대한 사랑이 묻어났다. 하정우란 사람의 매력인 듯 싶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하정우는 곧바로 전라도 순천의 <허삼관 매혈기> 세트장으로 달려갔다. 촬영을 3일이라 못했다면서 다소 조급해했다. 배우가 연기와 연출을 동시에 진행하는 작품은 국내에서는 최초다. 배우가 연출을 한다고 하면 '건방지다'는 평가가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이번만큼은 '하정우라서 기대된다'는 말이 더 많다.
"뇌기능이 정지되는 것 같은 순간도 있고, 예전에 내가 감독들의 능력에 의문을 품었던 행동들을 따라하고 있어요. 정말 어려운 도전 같아요."
그래도 하정우라서 대단한 결과물을 내놓을 것 같은 기대가 든다. 출연한 모든 작품에서 기대 이상의 평가를 받아온 하정우. 어쩌면 하정우는 엄청난 매력이 만들어낸 괴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