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충희기자] 국내 완성차 업계가 폭풍전야다. 한국지엠이 노조에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것을 전격 제안하면서 현대·기아차와 르노삼성, 쌍용차 등 나머지 완성차가 궁지에 몰렸다. 이들 4사 노조는 한국지엠 입장 변화를 근거로 투쟁강도를 더욱 높일 방침이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21일 "그동안 외로운 투쟁을 이어오다 다른 쪽에서 하나 뚫리니 우리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 "내일부터 이어지는 11차 교섭에서 집중적인 협상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에 이어 사측을 압박할 명분 하나를 더 손에 쥐게 되면서 줄다리기는 한층 격화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재계는 물론 일부 학계에서도 인건비 상승에 따른 수출전선의 경쟁력 약화 등을 이유로 현대차의 통상임금 확대에 부정적인 의견이 제시됐으나, 이번 한국지엠 결정이 나오면서 노조 측에 상황을 단숨에 역전시킬 만한 토대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현대차 노조는 반전의 기류를 이어가기 위해 오는 30일 울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체적인 협상과정과 향후 투쟁 일정 등을 공개할 예정이다. 통상임금 확대 요구에 "법대로 하겠다"며 강경하게 버티는 사측을 향해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한국지엠의 통상임금 소송건은) 법원의 판결이 나왔으나 우리 쪽은 아직까지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면서 "법의 해석을 기다려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또 "한국지엠과는 처한 상황이 다르다"며 개별 입장을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7월 말로 예정된 13~14차 협상에서도 노사 양측이 의견차를 좁히지 못할 경우 노조가 결국 다음 달 중순쯤 총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날 르노삼성차 노조 관계자 역시 "21일 오후 쟁의대책회의를 거쳐 파업을 최종 결정하겠다"며 사측에 대한 압박 강도를 한층 높였다. 노조가 금주 내로 파업을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상황은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노조 쪽에 조금 더 유리해졌다.
르노삼성차 노조는 올해 통상임금 확대건을 주 요구사항으로 내세우지 않았으나 한국지엠의 결정과 현대차 노조의 거센 투쟁 과정을 오히려 유리한 협상카드로 이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노조는 정상적인 승급과 희망퇴직 철회 등 비교적 원만한 요구사항을 사측에 제시하고 있어 수용 가능성이 남아있는 것으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르노삼성차 사측 관계자는 "통상임금 이슈는 노조가 올해 임단협에서 요구사항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며 "다른 요구사항의 원만한 합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극적 타결의 가능성도 여전히 남겨져 있다.
통상임금 확대 요구가 거세지는 것은 쌍용차 노조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의 회생을 위해 지난 4년을 무파업으로 이끈 쌍용차 노조는 5년 연속 무파업을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쌍용차 노사는 21일 오전부터 14차 협상에 돌입했지만 통상임금 이슈가 재점화되는 바람에 양측의 입장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쌍용차 관계자는 "어느 기업이고 이 문제(통상임금)에 대해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부담스럽 입장을 내비쳤다.
반면 올해 뜨거운 하투 발생의 진원지인 한국지엠은 노사간 협상이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노조가 사측의 통상임금 확대 제안에 환영 뜻을 밝히면서 양측의 분쟁이 주춤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사측은 오는 8월1일부터 통상임금 확대분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노조는 올해 1월1일부 임금부터 소급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약간의 조정이 필요한 단계다.
완성차 업계에 이어 조선·철강 등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는 통상임금 확대 요구에 재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기업의 올해 임단협은 통상임금 때문에 난항이 예상된다"고 우려하면서 주된 이유를 노조의 통상임금 범위 확대 요구로 들었다.
이철행 전경련 고용노사팀장은 "통상임금 때문에 최근 르노삼성, 한국GM 노조가 파업을 결의했고, 19년간 무분규 타결을 해온 조선업체 기록도 깨질 위기에 처해있다"며 "경기침체와 원화강세로 수출마저 경고등이 켜지는 등 우리 기업들은 내외부적으로 큰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정하되 인건비 총액이 급격히 늘어나지 않도록 노사가 협력해야 하며, 중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과 성과직무급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20일 경영자총협회도 성명서를 내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면 각 기업에 따라 20~30%의 인건비 상승 효과가 예상된다"며 "이를 물리력으로 관철하려는 시도는 노사 모두의 공멸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6일 전국금속노동조합에 소속된 현대차그룹의 지부·지회가 현대차그룹 양재사옥 앞에서 상경투쟁을 벌이고 있다.(사진=이충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