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디지털'체험기)③카메라 없애고 펜을 쥐다

입력 : 2014-07-21 오후 4:26:24
[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이번주에는 디지털카메라 없이 살기에 도전했습니다. 디카 범주에는 스마트폰 카메라와 스마트폰 캡처, 캠코더도 포함했습니다.
 
사실 이번 도전은 매우 자신있었습니다. 디카를 아예 안 들고 다니면 사용할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죠.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스마트폰이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서 무언가를 찍거나, 캡처하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었습니다. 실책이었고, 결과는 한숨의 연속이었습니다.
   
◇카메라 없이 일하기.."정말이지 불편해"
 
'카메라 없이 살기'는 업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난 17일과 18일 팬택 협력사 직원들이 길거리로 나섰습니다. 팬택이 죽으면 협력사들도 줄줄이 도산한다며,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현장성 이슈 역시 사진과 영상이 중요합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큰 신뢰감을 준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주 제가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는 탓에 사진 스냅 촬영과 동영상 촬영을 모두 후배 기자에게 부탁해야만 했습니다.
 
이날 현장에서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습니다. 온도계는 29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습한 날씨 탓에 체감온도는 33도를 훌쩍 넘었습니다. 이렇게 더운데 노트북 가방과 삼각대, 캠코더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는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렇다고 선배로서 마냥 편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후배가 아직 촬영 경험이 많지 않은 까닭에 과연 제대로 찍고 있는지, 소리가 제대로 녹음되고 있는지 신경 쓰였습니다. 오히려 '혼자서 하면 더 빨리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을지로 SK T타워에서 열린 팬택 협력사 협의회 집회 현장. 사진촬영을 할 수 없어 후배에게 촬영을 일임해야 했다.(사진=정기종기자)
  
사실 기자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잠시 사진찍는 일을 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운 좋게 사진 관련 일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공연이나 행사가 있을 때 촬영도 겸했습니다. 물론 자원봉사 차원이었죠.  
 
사진 찍으러 가는 날에는 그간 쌓인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입니다. 워낙 공연과 문화생활을 즐기기 때문에 놀면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번주에는 카메라를 사용할 수 없어서 제안이 들어왔음에도 정중히 사양해야 했습니다. 제가 참 찍고 싶었던 공연인데 말이죠. 인생은 타이밍이라더니 어쩜 이렇게 야속할까요.
 
솔직히 말해서 살짝 고민도 했습니다. 이건 예외로 할까, 프로젝트 실패로 결론 짓고 마음편히 음악과 사진을 즐겨볼까. 하지만 양심에 찔렸습니다. 물론 데스크의 싸늘한 눈초리도 의식됐죠.
 
이렇게 한 번 어긋나면 앞으로 남은 프로젝트들이 걷잡을 수 없이 엉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좋게 좋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 많을 거라 믿으며....
  
◇카메라 대신 펜을 들다.."내가 이렇게 악필이었나?"
 
저는 소위 말하는 '길치', '방향치'입니다. 손에 지도를 쥐고 보면서 걸어가도 쌩뚱 맞은 곳으로 들어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약속이 있을 때 미리 지도를 검색해서 길을 숙지합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가는 길을 스마트폰 사진으로 찍어서 저장해둡니다. 그래야 헤매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검색한 길을 종이에 그려서 들고 갔습니다. 약속 장소가 신사동 가로수길이었는데요. 평일에도 혼잡한 곳인데 주말에는 오죽할까 싶어서 나름 미리 준비를 한 겁니다. 하지만 여러번 숙지했는데도 이 저주받은 길 감각은 저를 전혀 다른 곳으로 인도하고 말았습니다.
 
◇신사동 가로수길 카페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했다. 워낙 복잡한 곳이기에 미리 지도를 보며 가는 길을 숙지했다.(사진=뉴스토마토) *기사에 첨부된 사진은 프로젝트가 끝난 21일에 촬영했습니다.
 
내비게이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웬만한 가게나 명소 이름은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기만 해도 자동으로 검색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주소명을 입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긴 주소 역시 메모지에 적어가야 했습니다.
 
이처럼 카메라가 없으니 손에 펜을 쥐고 무언가를 쓸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건 카메라 없이 살기에 도전하기 전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입니다. 손에 펜을 쥐고 글씨를 쓰는 게 참 어색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평소에 얼마나 쓰기 행위를 하지 않나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새삼 드는 생각은 '내가 이렇게 글씨를 못썼던가...'입니다.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까지 시간을 절약한답시고 노트북에서 검색한 내용을 손으로 적는 대신 긁어서 이메일로 보내거나, 노트북 화면을 사진으로 찍어 왔는데요. 늘어나는 디지털 기기들로 인해 종이와 펜을 찾는 횟수도 자연스레 줄다보니 글씨를 쓰는 법도 잊게 됐나 봅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빅이슈'를 구매해서 봅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머리를 식히기 딱 좋습니다.
  
◇6월 '빅이슈'에서 마음에 드는 글귀를 발견. 두고두고 읽고 싶어서 해당 페이지를 찢어서 가방에 넣고 다녔다. (사진=뉴스토마토) *기사에 첨부된 사진은 프로젝트가 끝난 21일에 촬영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집에 가는 길에 빅이슈를 읽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공감이 되길래 두고두고 봐야겠다는 생각에서 평소처럼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순간 화들짝 놀랐습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고 있는 저를 발견한 거죠. 습관이란 참 무섭습니다. 평소에도 종이를 펴서 내용을 옮겨 적는 대신 카메라를 켜서 사진을 찍어 그것을 파일업 해두는데 이번에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한 겁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바로 삭제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글이 길기도 하고, 지하철 안에서 서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딘가에 적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글이 담긴 페이지를 찢어서 가방에 고이 보관했습니다.
 
이렇게 책을 찢어서 보관한 것은 어릴적 빼고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어릴 적에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이나 글이 있으면 커트칼로 티 안나게 잘라서 스크랩하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모르게 한참 동안 향수에 젖었습니다. 들고 다니는 동안 조금 꼬깃꼬깃 해졌지만 뭔가 더 마음에 듭니다.
 
◇습관이 된 순간의 기록.."난 적적할 뿐이고"
 
개인적으로 오랜 기간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부모님께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활동하신 탓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나 봅니다. 10년 동안은 필름카메라를, 10년 동안은 디지털카메라를 만져왔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어딜 가든지 카메라를 몸에 소지하고 다니는 게 버릇이 됐습니다. 카메라는 '찰라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죠. 나름 20여년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제가 모토로 삼는 게 바로 저 명언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고, 절대적으로 기록을 남기고 싶은 순간에 카메라가 없다면 그보다 더 난처한 일도 없을겁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노트북, 다이어리, 책, 명함지갑, 충전기, 외장하드 등 들고 다니는 게 많아서 스마트폰 카메라로 대체하고 있지만요.
 
◇지인을 기다리며 한 컷.(사진=뉴스토마토) *과거 촬영한 사진입니다.
 
그래도 주말이나 휴일에는 꼭 바디와 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들고 나갑니다. 요즘 스마트폰은 콤팩트카메라 시장의 3분의 1을 잠식할 정도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스마트폰 카메라로부터 얻은 결과물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입니다.
 
'이 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생각에서 사진을 자주 찍는 편인데요. 타인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순간을 담아내거나, 당시 분위기를 고스란히 기억해낼 수 있는 사진을 남기곤 합니다.
 
이번주에는 이 즐거움이 사라졌습니다. 참으로 적적하더군요. 어린애들한테 하지 말아라고 하면 더 하는 것처럼, 저 또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생각에 더더욱 촬영을 갈구하게 됐습니다. '이 구도로 찍고 싶다.', '이건 남겨야하는데', '아... 이 표정 예술이구나!' 등등 아쉬움을 한가득 안고 지인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촬영 도구가 없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지나 금요일 출근길이었습니다. 제 맞은편에 그 유명한 '지하철 변태'가 출몰했습니다. 심심할 때마다 특정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글을 읽는데 그 사이트에서 본 변태가 제 눈 앞에 있는겁니다. 인상착의도 비슷했습니다.
 
◇지하철 안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다.(사진=뉴스토마토) *과거 촬영한 사진입니다.
 
이 변태는 잠을 자고 있거나 술취한 여성을 대상으로 스킨십을 즐긴다고 합니다. 그날도 역시 부족한 아침잠을 보충하고 있는 여성 옆에 앉아서 허벅지를 더듬고 있었습니다.
 
생긴 건 멀쩡해서 왜 저럴까 싶었습니다. 하기야 성추행범 중에서는 너무나도 말끔한 화이트칼라 직업군이 더 많다고 하지요. 전에 읽은 글들을 보면 시민들이 신고를 했는데, 대부분 증거 불충분으로 이렇다 할 처벌 없이 그냥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옳다구나! 너 잘걸렸다' 싶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척하면서 촬영을 시도하려고 햇습니다. 더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 싶었습니다. 이 변태, 참 운이 좋네요. 카메라 없이 살기에 도전 중이라서 제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다음에 또 만나면 그땐 웃으면서 집에 갈 수 없을겁니다.
  
카메라 없이 사는 일주일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일주일 동안 사진 좀 안 찍는다고 어떻게 되겠어?'라는 생각에 초반에는 자신감이 넘쳤는데 막상 카메라 없이 지내보니 사는 데 지장이 많더군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제 삶에서 카메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큰 탓에 업무적으로, 또 사적으로도 불편했을 겁니다. 카메라 없는 삶을 너무 쉽게 봤던 것 같습니다.
 
진짜 복병은 스마트폰이었습니다. 초반에 언급했던 것처럼 디카의 경우 장롱 속에 고이 넣어두면 되지만,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실행한 게 족히 열 번은 된 것 같습니다.
 
카메라 없이 살기를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글씨 쓰는 횟수가 많아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사진이라는 게 풍경이나 인물 뿐 아니라 글쓰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렇게 디지털기기에서 벗어나면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잠시 IT기기에서 벗어나시는 건 어떨까요. 물론 그에 따른 불편과 고통은 감내해야 할 쓴 잔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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