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펠트라는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한 원더걸스의 예은. (사진=JYP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원더걸스의 멤버 예은이 '핫펠트'(HA:TFELT)라는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Heartfelt'(진심 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온)라는 단어에 'Hot'(뜨거운)의 의미를 담아 "진심이 담긴 음악, 마음이 느껴지는 음악을 Hot하고 새롭게 만들겠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인데요.
원더걸스의 멤버로서 가요계 정상에 올랐던 예은이 솔로 가수로서 어떤 앨범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됐었죠. '텔미', '쏘핫' 등 원더걸스의 히트곡들을 좋아했던 음악팬들로선 이번 앨범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더걸스 특유의 발랄한 느낌이 담긴 음악이 없거든요. 대신 앨범 수록곡 전곡의 작사, 작곡, 편곡에 참여한 싱어송라이터 핫펠트만의 매력이 충분히 담긴 앨범입니다.
총 7곡이 실린 이번 앨범의 1번 트랙엔 '아이언 걸'(Iron Girl)이 있습니다. 여성 솔로 가수라면 섹시 걸(Sexy Girl)이나 프리티 걸(Pretty Girl)과 같은 제목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왠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예은은 이걸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아이언 걸이라고 칭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노래를 하는데요.
"무쇠 같이 단단한 팔 강철 같은 다리. I, I, I’m Iron girl. 찌를 테면 찔러봐 멋대로 퍼부어봐. I, I, I'm iron girl"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적들을 물리치는 영화 속 캐릭터인 아이언맨이 떠오르지 않나요? 예은은 어느덧 데뷔 8년차를 맞았고, 그 사이에 오르막길을 걷기도, 내리막길을 걷기도 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많이 단단해진 것 같네요.
이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원더걸스의 멤버 혜림의 랩도 인상적입니다. 근래에 들어본 여성 아이돌의 랩 중에 가장 돋보인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지난 2012년 이후로 원더걸스가 그룹으로서 활동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는데요. 이 때문에 재능 있는 가수인 혜림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네요. "돈과 명예보다 더 소중한 내 음악. 끝났다구? 누가 그래 이건 끝내주는 음악"이라는 파트가 원더걸스의 현상황과 맞물려 강한 여운을 남깁니다.
2번 트랙의 'Truth'는 예은의 애절한 감정이 담긴 보컬을 감상할 수 있는 노래입니다. 반복되는 거짓말을 하는 연인과의 관계를 끝내려는 마지막 순간을 가사에 담았는데요. 원더걸스가 댄스곡 위주의 활동을 펼쳤기 때문에 예은이 보컬 실력을 마음껏 뽐낼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Truth'는 대중들이 "예은이 이렇게 노래를 잘했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 수 있는 노래입니다.
3번 트랙의 'Ain't Nobody'가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입니다. 원더걸스의 유명한 히트곡의 제목이 'Nobody'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기도 한데요. 'Ain't Nobody'는 예은이 솔로 가수로서,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핫펠트로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연인에게 느끼는 슬픔, 분노, 사랑 등 복잡한 감정을 담은 이 노래는 일단 락 발라드 장르입니다. 예은은 락 발라드에 어울릴 만한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곡을 잘 소화해냅니다. 그런데 'Ain't Nobody'는 평범한 락 발라드가 아닙니다. 노래 중간에 트랩 장르가 절묘하게 섞여 있는데요. 이런 예은의 시도가 실험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도전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언 걸'이란 특별한 수식어로 자신을 표현해냈듯, 예은은 'Ain't Nobody'에서도 전형적인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줍니다. 이 노래를 포함해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사실 음원 차트나 음악 방송에서 1위 행진을 펼칠 만한 대중성이 느껴지는 노래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또래의 가수들이 보여주곤 하는 전형적인 형식의 음악에서 벗어난 곡들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첫 솔로 앨범에 좋은 점수를 줄 만합니다.
4번 트랙에 담긴 'Bond'도 독특합니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나쁜 남자를 '007' 시리즈의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에 비유해 풀어낸 노래인데요. 랩퍼 빈지노가 피처링에 참여했습니다.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곡의 흐름과 예은의 목소리, 그리고 빈지노의 랩핑이 잘 어우러집니다. 무대 위에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여지가 많은 곡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퍼포먼스 부분에 욕심을 냈다면 이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선택하는 것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솔로 가수로서 데뷔 앨범을 발표한 원더걸스 예은. (사진=JYP엔터테인먼트)
5번 트랙엔 'Wherever Together'가 있습니다. 소울 메이트를 만나 느끼는 행복에 대해 노래한 곡인데요. 주제도 좀 독특하다고 할 수 있지만, 표현 방식은 더 재밌습니다. 이 곡은 클럽에서 인기가 있는 일렉트로닉 댄스 장르의 노래입니다. 노래의 후렴 부분을 목소리 대신 악기 연주로 채웠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요. 그러면서 곡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렸습니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첫 번째 솔로 앨범에서 이것저것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는 예은의 모습이 보기 좋네요.
6번 트랙엔 감성적인 모던 락 장르의 ‘피터팬'(Peter Pan)이 실렸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대해 노래한 곡입니다. 예은은 이 노래 속에서 '어른이 된 웬디'로서 어린 시절에 대해 노래하는데요. 웬디는 동화 '피터팬'의 등장인물이죠. 이번 앨범을 통해 삶에 대한 성찰적인 모습을 보여준 예은이 상상력까지 발휘했다는 점에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경쟁력을 증명해 보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다운’(Nothing Lasts Forever)이란 곡이 마지막 트랙에 담겼습니다. 이 노래는 지난해 11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원더걸스의 고등학생 팬 정다운 군을 위한 추모곡입니다.
이 노래에 담긴 예은의 목소리는 어딘가 독특한 느낌을 주는데요. 사실 예은은 이 곡을 쓴 날 녹음한 가이드 보컬 버전을 그대로 앨범에 실었습니다. 그래서 팬들의 입장에선 노트북 컴퓨터의 내장 마이크로 녹음된 예은의 보컬을 그대로 들을 수 있는데요. 결과적으로 예은의 선택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팬에 대한 예은의 애절한 감정이 노래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룹 활동을 하던 중에 솔로 데뷔를 하는 아이돌 가수들이 종종 있죠. 예은도 이제 첫 발을 내디뎠는데요. 예은은 최고 인기 걸그룹이었던 원더걸스의 멤버답게 평범하지 않은 솔로 데뷔를 했습니다. 단순히 솔로 가수로서의 데뷔라기 보다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첫 출발을 알렸는데요. 자기만의 색깔이 담긴 음악을 할 줄 아는 또 한 명의 싱어송라이터가 가요계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반갑습니다.
< 핫펠트 미니 1집 'Me?' >
대중성 ★★★☆☆
음악성 ★★★★☆
실험성 ★★★★☆
한줄평: 성공적인 홀로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