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디지털'체험기)⑥스마트폰 없이 살다..사람을 찾다

입력 : 2014-08-04 오후 3:50:40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다시피한 스마트폰. <뉴스토마토>는 한 주 동안 스마트폰 없이 사는 체험을 진행해봤다.(사진=정기종 기자)
 
[뉴스토마토 정기종기자] “이거 뭐 끝나도 끝난 게 아니네.”
 
기자가 입에 달고 사는 말 중 하나입니다. 직업 특성상 퇴근 후에도 출입처에 이슈가 발생하면 당연히 취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아. 차라리 스마트폰이 없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는 ‘스마트폰 없이 살기’에 도전해 봤습니다. 체험은 지난달 28일 오전 6시부터 지난 3일 오후 8시까지 일주일 동안 스마트폰 전원을 끄고 별도의 장소에 보관, 일체의 접촉 없이 진행했습니다.
 
사실 시작 전엔 이번 체험을 조금 얕봤습니다. 몇 주간에 걸친 탈디지털 체험과정을 통해 나름 노하우를 익혔고,  한 주 동안 스마트폰 없이 살 것에 대비한 대책도 마련했기 때문이었죠.
 
일단 스마트폰이 없어서 가장 불편한 점은 전화통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기자들의 경우 출입처 기자실마다 유선전화가 비치돼 있습니다. 또 메신저도 대부분의 업무를 컴퓨터로 하는 직업 특성상 PC버전 메신저를 이용하고, 일정상 동선을 최소화시키면 큰 불편함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무모한 자신감은 체험 첫날 시작과 동시에 보기좋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기자실에 비치된 유선전화와 PC메신저 화면. 이 두가지만 있으면 큰 문제없을 것 같았던 기자의 예상은 첫 날부터 보기좋게 빗나갔다.(사진=정기종 기자)
 
◇알람부터 지도까지..일상을 지배하던 스마트폰
 
체험 첫날부터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저는 매일 아침 스마트폰 알람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울리게 돼있으니 잠자리에 들기 전 별 생각 없이 잠이 들었는데 스마트폰은 이미 제 곁에 없었습니다.
 
◇스마트폰 없이 일주일간 살아본 기자의 스마트폰 알람 화면 캡쳐. 본 기사에 사용된 모든 스마트폰 화면 캡쳐는 체험이 끝나고 실시했다.(사진=정기종 기자)
 
스마트폰 없는 삶을 얕본 대가로 한 주의 시작을 늦잠으로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허겁지겁 준비해서 부리나케 달려서야 겨우 지각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날은 운이 좋았을 뿐, 결국 체험 일주일 동안 3일을 지각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막내가 지각을 했다?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정신없이 출근을 해서 기자실에 자리 잡은 저는 또 한 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업무관련해서 해당 기업 담당자와 통화를 해야 하는데 연락처가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었기 때문이죠. 동료들에게 물어 겨우 통화를 할 수 있었지만 평소엔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고 걸기만 했던 전화통화를 한참을 돌아서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월요일 퇴근 후 다행히 개인용 PC에 따로 보관해둔 연락처 목록을 다운받아 한 주간 연락처 문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이 일상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에 대해 체험 시작 2시간 만에 뼈저리게 실감해야만 했습니다.
 
스마트폰이 일상을 지배하는 경우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달 30일은 삼성전자(005930) 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피해보상과 관련된 회사 측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의 4차 교섭이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개최됐습니다. 업계 주요 이슈인 만큼 현장을 찾았습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건설회관 위치 정보 캡쳐화면. 간단한 검색을 통해 갈 수 있는 장소를 몇번이고 행인들에게 묻고나서야 찾아갈 수 있었다.(사진=정기종 기자)
 
초행길인 건설회관을 찾아갈 때 평소 같았으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검색을 했겠지만, 이 날은 건설회관에서 도보로 불과 5분정도 떨어진 학동역에서 3번이나 길을 물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불안을 이어가던 중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뉴스토마토> 기자들은 주말에도 기사를 1꼭지씩 출고하는데요. 저는 지난 주말 영국 기업 다이슨의 청소기 리뷰 기사를 내보낼 예정이었습니다.
 
막내인 저의 경우 기사가 완성이 되면 담당 선배가 확인 후 데스크에 보고, 한 번 더 데스킹을 거쳐 출고되는 순으로 진행됩니다. 두 번의 수정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선배들에 비해 기사 출고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편이죠.
 
기자가 기사 작성을 완료한 시점은 체험 마지막 날인 3일 오후 2시30분쯤 이었습니다. 담당 선배에게 메신저로 보고했지만 선배는 부재중이었는지 대답이 없었습니다. 담당 선배라고 해서 제 일정에 본인의 주말까지 맞춰서 대기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이런 경우 전화통화를 통해 지침을 받습니다. 보통은 다른 선배에게 보고하거나 당직 데스크에게 직접 보고하는 방식이죠. 하지만 저에겐 스마트폰이 없었고 휴대폰을 빌릴 가족도 부재중이었습니다.
 
공중전화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해당 시간 서울엔 비가 많이 내려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자도 처음 겪는 상황이라 약간 당황스러워 비를 맞으며 뛰어갈지, 아니면 선배에게 회신이 올 때까지 기다릴지 고민하는 사이에 마감시간을 넘겨 넘기고 말았습니다.
 
결국 기사는 다음 날 오전에야 출고가 됐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기사를 출고하지 못했다는 것은 회사의 입장에서 손실인 동시에 기자 개인에게도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4일 날짜로 출고된 다이슨 청소기 리뷰 기사. 계획된 출고일은 주말이었던 지난 3일이었다.(사진=뉴스토마토 홈페이지 캡쳐)
 
◇스마트폰 부재..세상과의 단절, 그리고 사람을 찾다
 
스마트폰 부재가 사람의 삶에 주는 영향은 앞서 말한 일상의 불편함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체험기간 동안 세상과 단절됐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였으니까요.
 
이 같은 현상은 특히 이동 중에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기자들은 업무 특성상 이동하는 과정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주요 이슈를 검색하고, 신속한 처리를 요하는 기사의 경우 이동 중에도 기사를 처리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번 체험 기간 동안에는 기사화는 커녕 주요 이슈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있을 땐 테더링을 통해 노트북의 무선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스마트폰이 없는 노트북은 이동 시 그저 짐일 뿐이었습니다.
 
퇴근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기자들은 퇴근 후에도 주요이슈를 따라가기 위해 동료들이나 해당 기업 담당자와 연락을 주고받기도 하는데요.
 
특히 당일 밤늦은 시간에 주요 이슈가 생긴 경우 동료들과 통화해 다음날 일정을 조율합니다. 때문에 외출을 하지 못한 채 방에 있는 개인PC 앞에 마냥 대기하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외출을 해야 했을 때도 불안함에 떨어야 했죠.
 
덕분에 주말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느끼는 불안함과 초조함 탓에 여가를 포기해 버린 것입니다. 그만큼 스마트폰이 없이 외출한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습니다.
 
지난 ‘SNS없이 살기’ 편이 사람과 사람의 소통 단절이 주는 답답함을 느끼게 해줬다면 이번 체험은 세상과의 단절이 주는 불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체험이 끝난 지난 3일 오후 8시가 넘어서 전원을 켠 스마트폰엔 수많은 부재중 전화가 기록돼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불편함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일주일간 체험이 끝난 후 전원을 켠 스마트폰엔 부재중 전화가 수두룩하게 기록돼 있었다.(사진=정기종 기자)
 
내가 지금 알고 싶은 것, 확인하고 싶은 것을 당장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였습니다. 뭐든지 스마트폰으로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는 일상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도 있겠죠.
 
한 가지 놀랐던 점은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자 스스로가 스마트폰 없는 삶에 익숙해짐을 느꼈다는 겁니다. 항상 주변에 있기 때문에 당장 내 옆에 없으면 불편함을 느끼곤 하지만 익숙함의 문제이지, 없으면 누구나 대체재를 찾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당장 가족들과의 대화만 해도 그랬습니다. 부모님이 거주하는 집의 위층에 살고 있는 저는 평소 서로 엇갈리는 일정 탓에 가족들과 주로 전화통화를 하곤 하는데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스마트폰 없는 한 주 동안은 평소보다 아래층으로 더 많이 내려가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한 손에 들어가는 스마트폰으로 당장 내 주변의 누군가와 연락이 닿을 수 없다면 두 발로 직접 찾으면 된다는 걸 느낀 한 주였습니다. 불과 한 층 거리의 부모님의 집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지 않던 제 일상을 반성하면서 말이죠.
 
만약 스마트폰 고장이나 분실로 인해 며칠 동안 스마트폰 없이 살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잠깐일 불편함에 불만을 늘어놓기 보다는 수화기 너머로만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을 직접 찾아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해 보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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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