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정부가 은퇴자의 노후소득 안정을 보장한다며 퇴직연금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연금 자산운용 관련규제를 완화하는 것인데 제도시행을 앞두고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퇴직연금제 도입을 내용으로 한 투자활성화 방안을 발표한데 이어 조만간 퇴직연금 가입 의무화와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자산운용 규제 합리화 등에 대한 세부과제를 담은 종합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또 현재 원금이 보장되는 확정급여형(DB형)과 금융상품 투자 수익률에 따라 퇴직금 규모가 달라지는 확정기여형(DC형)으로 나뉜 국내 퇴직금 제도 가운데 DC형의 위험자산 투자한도를 현행 40%에서 최대 70%까지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는 회사에서 매월 급여의 일부를 떼어 조성한 퇴직금을 퇴직 때 한번에 받던 것과 달리 앞으로는 주식 등 자신에게 유리한 투자상품을 골라 퇴직연금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금융권 역시 사적연금 시장이 커지고 블루오션을 찾게 됐다.
그러나 퇴직연금 제도에 대한 정부의 설명을 곧이 믿자니 뭔가 꺼림칙하다. 주식 투자로 '대박'난 사람도 있지만 '쪽박' 찬 사람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금형 퇴직연금으로 수익을 내고 노후소득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손해를 볼 사람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이번 방안이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민생안정 대책이나 복지부가 지난달 도입한 기초연금 지급제도 등과 연계한 게 아니라 금융업계 신시장 창출을 위한 투자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발표됐다는 점에서 정부의 제도시행 의도부터 의심스럽게 만든다.
실제로 13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나온 투자활성화 대책을 보면, 정부는 "퇴직연금 자산의 효율적 운용을 가로막는 자산운용 규제를 완화하고 퇴직연금 가입 확대와 연금화 유도를 위해 과세체계를 개편해 자본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사실상 정부가 근로자의 노후소득 보장과 퇴직연금 수급권 보장보다는 이를 통한 금융시장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근로자가 애써 모은 퇴직금이 근로자를 위해 쓰이는 게 아니라 금융시장 확대에 동원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아울러 정부가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되 운용 규제를 거의 안 둔 미국과 호주 등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면 수급권자 보호장치는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실장과 성주호 경희대 교수 등 연금 전문가들은 "DC형 가입자의 금융상품 선택 성향은 금융지식과 투자교육 수준에 좌우되고 소속회사의 관심과 지원도 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며 "근로자에 대한 퇴직연금 교육을 강화하고 기업 도산과 적립금 운용부실에 대비한 자산운용규정 개편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기구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중앙연구위원도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를 보장하는 마지막 보루"라며 "퇴직연금이 제 역할을 하도록 법령개정 등 보완장치를 적용하고 별도의 견제·감시 장치를 마련하는 등 더 세밀한 노후대책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신문을 읽는 등 휴식을 취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