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프로야구 취소사유, '야구장'이 문제다

입력 : 2014-08-19 오후 3:06:53
◇2014년 8월 들어 '비' 이외 사유로 취소된 경기. (정리=이준혁 기자)
 
[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프로야구 경기가 취소되는 경우의 대부분은 '비' 때문이다. 
 
설령 경기 직전에 비가 그치더라도 낡은 야구장 배수시설로 인해 빗물이 그라운드에 고여 경기 강행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달에는 비 이외에 다양한 사유로 프로야구 경기가 취소되고 있다. 비와 무관한 경기 취소가 이달들어 벌써 네 번에 달한다.
 
◇신축 야구장에서 안전문제로 경기 취소
 
지난 3~4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릴 예정이던 KIA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 간의 경기는 그 전날인 2일에 한꺼번에 취소 결정됐다. 프로야구에서 이틀 이상 경기가 사전 취소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다.
 
취소 이유는 태풍 나크리의 강풍으로 인해 야구장 지붕의 플라스틱 패널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수십년 사용한 구장도 아니고 올해 새로 건설한 야구장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다행히 패널 낙하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추가적인 낙하가 일어날 경우 대형 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KIA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예정됐던 경기의 취소를 결정했고, 야구장의 소유주인 광주시는 낙하하지 않은 패널까지도 모두 신속하게 철거했다. 패널과 지붕 구조물간의 결속이 약해졌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상 복구는 단기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구장 지붕 규격에 맞도록 패널을 제작하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고, 이후 경기가 없는 날짜를 골라가며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비록 강한 태풍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매년 여름 태풍이 찾아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의 소유주인 광주광역시는 지붕의 패널이 주변 도로로 낙하하는 사고가 나자 곧바로 지붕의 동일 재질(폴리카보네이트) 패널을 모두 철거했다. (사진=이준혁 기자)
 
◇전광판과 음향장비 교체하느라 조명은 신경 못썼나
 
광주에서 경기가 취소된 사흘 후 부산에서도 드문 사유로 경기가 정상 진행되지 못한 사례가 나왔다.
 
지난 5일 부산 사직구장서 열린 롯데와 NC의 경기에서는 5회 NC 김종호의 타석 때 3루방향 조명탑이 작동을 멈추며 꺼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주심은 경기 일시 정지를 선언했고 금방 복구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오자 결국 경기 중단과 함께 익일속개 결정을 내렸다. '서스펜디드 게임(Suspended Game)'이다.
 
1982년도 이후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서스펜디드 게임은 이번 건을 합쳐 일곱 번이다. 그중 조명 문제로 인한 서스펜디드 게임은 총 세 번이다.
 
밤새 조명탑 수리가 이뤄진 끝에 다음날인 6일 오후 동일한 상황에서 경기는 속개됐다.
 
사직구장은 이번 시즌 전 많은 비용을 들여 개선작업을 진행했다. 수십억원을 들여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장이 사용하는 최신 고급 전광판을 설치했고, 공연장서 쓰는 고급 음향장비 설치까지 이뤄졌다. 
 
그러나 조명탑 고장 사건으로 사직구장의 시설개선 노력은 빛을 바랬다.
 
◇부산 사직야구장 입구. (사진=이준혁 기자)
 
◇'우취'가 아니라 '악취' 때문에 경기가 취소
 
야구계에선 우천취소를 줄여서 '우취'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우취가 아니라 '악취'로 인해서 경기가 취소된 사례가 생겼다.
 
지난 14일 퓨처스(2군) 경기가 열리는 인천 송도 LNG야구장에서 예정됐던 KT와 SK의 경기는 주변의 악취 때문에 취소됐다.
 
송도LNG야구장이 있는 지역은 명칭 그대로 LNG인수시설이 위치한 곳이다. 송도국제도시가 건설되기 전 지어진 이 곳에는 LNG인수시설 외에도 '음식물쓰레기 자원화시설'도 옆에 있다. 악취는 음식물쓰레기 자원화시설에서 생겼다.
 
평소에도 야구선수 사이에선 인천 송도구장 일대의 악취가 유명하다. 관중이 적은 퓨처스 경기라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이 곳을 홈구장으로 쓰는 SK 2군 선수들은 내성이 생겼지만 원정팀 선수들은 매번 고역을 치른다. 실제로 송도구장 경기를 보면 '코를 막는' 선수가 흔하게 보인다.
  
문제는 악취로 인한 취소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1일 LG전도 악취로 인해 취소됐다. 2011년 8월에도 두산과 SK의 경기가 취소된 전례가 있다.
 
더불어 이 구장은 오는 9월 열리는 인천아시안게임의 소프트볼 주경기장이다. 게다가 남자보다 주변 냄새에 민감한 여자 선수들이 경기를 진행한다. 자칫 국제적 망신까지 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곳에서 경기하는 것이 한국 야구계의 비극"
 
건설·체육 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가 발생한 원인으로 대형경기장 공사 절차와 함께 공사 진행을 하는 지자체의 마인드를 꼽았다.
 
현 법률상 민간의 대형 경기장 소유는 불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나 산하기관이 소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관리 주체와 사용 주체가 이원화될 수밖에 없어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일각에서 민간의 경기장 소유를 용이하게 하고 특히 프로스포츠 경기장은 체육시설이 아닌 별도 규정을 세우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야구발전실행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 중인 전용배 동명대 체육학과 교수는 "아직 한국의 야구 인프라는 많이 부족하다. 양적은 물론 질적으로도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대한민국 건설사들이 설계·시공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지자체에서 야구장 건설 개념을 잡고 사후 관리를 하는데는 아직 한계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법규에서 구장 실사용자인 구단이 자율적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반경은 매우 좁다. 관리를 구단에 일임했다고 발표된 곳조차 큰 결정은 지자체를 거치게 돼 있다"면서 "야구장을 구장이 짓지 못하고 관리도 절차가 매우 복잡한 상황이다. 때로는 개선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구단이 아닌 관(官) 책임"이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또 "결국 관이 야구장을 소유하고 구장 관리의 큰 얼개도 짜는 상황에서 야구장개선이 빠르게 이뤄지는 것은 사고가 났을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처음부터 관련 예산을 충분하게 확보해서 예방을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사고가 나야만 예산을 간신히 끌어모아 긴급 보수를 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스포츠시설 공사를 여러차례 담당했던 모 대형 건설사 부장은 "결국 기능보다 디자인을 중시하고 사후 관리에는 소홀한 지방자치단체의 인식이 낳은 촌극"이라고 말했다.
 
이어 "광주 사고의 경우엔 시공 잘못이라기보다 설계 문제일 확률이 높다. 낙하 패널이 모두 폴리카보네이트인 점이 이같은 추정 이유다. 금속 패널의 경우 볼트로 조이는 형태인데 폴리카보네이트는 천정부에 맞춰서 끼우는 형태"라면서 "야구장은 바람이 관중석을 타고 올라가서 치고 빠져나간다. 천정에 풍압이 적잖다. 폴리카보네이트는 프레임에 끼우고 실리콘으로 붙이는 공사법이 일반적이다. 볼트 결속이 아닌 끼우는 형태는 무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부산 사고는 안일한 사후 관리 때문이다. 조명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능이 저하된다. 포항이나 울산처럼 제2구장으로 써서 조명을 사용할 일이 많지 않다면 교체를 늦출 수도 있겠지만 부산처럼 자주 사용하면 10년에는 한번 갈아줘야 한다"면서 "그런데 부산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그대로 사용했던 것으로 안다. 어느새 13년차에 달한다. 멀쩡했다면 다행이지만, 안타깝지만 결국 크게 탈이 났다"고 진단했다.
 
인천 송도구장에 대해선 "여기는 어쩔 수 없다. 애당초 시설(음식물쓰레기 자원재생시설)을 지으며 건설한 곳이다. 여기에서 정식 경기를 한다는 것이 잘못"이라며 "여기에서 경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한국 야구계의 '현실'"이라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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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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