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책임 NO! 추징금 NO!..김우중의 '배짱'

입력 : 2014-08-26 오후 4:53:39
(사진=뉴스토마토)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숨은 비화를 꺼내들었다.
 
재계 서열 2위, 계열사 41개의 초대형 대기업 그룹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원죄를 지고 법원에서 심판까지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이 잘못됐으며,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강하게 표현했다.
 
경영의 책임이 아닌 정부의 경제정책에 문제를 제기했고, 심지어 법원의 판단마저 부인했다. 지난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로 다시 불거진 23조원의 추징금도 납부도 거부했다.
 
이 같은 김 전 회장의 입장은 26일 공식 발간된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을 통해 공개됐다. 그의 자서전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앞에 '아직도'라는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진행형'으로 이끌었다. 1999년 8월26일 대우그룹이 문 닫은지 정확히 15년 만이다.
 
신장섭 국립싱가포르대 교수가 2010년 이후 김 전 회장과 4년여간 나눈 대화들을 대화록 형태로 정리했다. 사실상 김 전 회장의 육성으로 만들어진 회고록이자, 비방록인 셈이다.
 
◇대우 몰락 재평가 요구..정부 기획해체설 제기
 
김 전 회장은 이 책을 통해 무엇보다도 대우그룹의 몰락과 관련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을 모토로 지나치게 확장적인 투자를 벌이다가 IMF 외환위기와 함께 대우자동차의 부실로 재정난에 휩싸이면서 몰락의 길을 걸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특히 그는 대우 몰락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는 대우자동차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저자인 신장섭 교수는 "대우 해체 이후 정부가 다른 계열사들은 살렸지만 대우자동차는 부실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에 거의 공짜로 넘겼다"며 "역설적이게도 정부의 잘못된 판단은 GM이 입증해줬다. GM이 중국 등 신흥시장에서 대우가 개발한 차로 성공신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GM이 부실자산을 빼고 우량자산만을 골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줬고, 당시 현찰 4억 달러밖에 내지 않은 GM에 산업은행이 20억달러의 자금을 지원했다는 점도 공정하지 못했다는 것이 김 전 회장과 신 교수의 주장이다.
 
김 전 회장은 정부의 대우그룹 기획해체설도 꺼내들었다.
 
당시 대우차의 단기 차입금이 1997년말부터 1998년 9월말까지 19조원이 늘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원인 분석 없이 위험성만 부각시켜서 자금난을 유발시켰고, 결국 워크아웃까지 갔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당시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이 차입금에 대해 밀어내기 수출의 결과라고 했으나 단기차입금의 증가는 정부의 금융규제 때문"이라며 "30%의 금리에 기업들이 어떻게 살아남느냐. 그나마 대우는 신용이 있었으니 단기차입금으로 살아 남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IMF 이후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30대 재벌에 1998년 3월말까지 자기자본의 100%를 초과하는 상호지급보증을 완전히 해소할 것을 명령했다. 또 1998년 3월부터 계열사간 신규 채무보증을 전면 금지했다.
 
아울러 2000년 상반기까지 30대 재벌의 부채비율 200% 이하로 축소,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집단에 1999년부터 결합재무제표 도입 의무화, 외국인의 적대적 기업인수·합병 허용 등의 규제도 잇따라 만들었다.
 
김 전 회장은 GM과의 협상과정에서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의 판단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 전 위원장은 본인의 회고록에서 대우차와 GM의 협상은 불가능한 것이었고, 대우의 사정을 잘 아는 GM이 결국 협상을 깼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은 "협상은 깨진 적이 없고, GM은 실무진을 파견해서 계속 협상에 관심을 보였다. 합작은 GM이 다급해서 제안한 것이기 때문에 가격협상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대우의 계열사들이 회복되는 과정과 관련해서는 정부 측은 워크아웃이 잘 됐기 때문이라며 공을 정부 자신에게 돌렸지만, 김 전 회장은 '원래 좋은 회사였기 때문'이라는 대우 측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 전 회장은 "우리 회사들이 다 회복돼서 정부가 공적자금을 회수하고도 남았다. 이것만 봐도 대우가 국가경제에 피해를 줬다고 얘기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대우차와 관련해서도 "남들은 없는 것도 포장해서 비싸게 팔려고 하는데 한국정부는 우리가 잘 갖고 있는 것도 쓰레기라고 대문짝만하게 얘기해 놓고 팔려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삼남 선용씨가 지난해 10월 국세청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News1)
 
◇"추징금도 인정할 수 없고 세금은 내야할 것 아니라고 판단"
 
대우그룹 몰락의 책임 소재에 대해 정부의 기획해체설까지 제기한 김 전 회장은 본인과 그룹 임원들에게 부과된 천문학적인 추징금도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법원은 지난 2006년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김 전 회장에게 징역 8년6월과 벌금 1000만원, 17조9253억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연대 책임이 있는 5명의 대우그룹 임원들에 대한 추징금까지 포함하면 모두 23조원의 추징금이 부과됐다.
 
김 회장은 그러나 "법원이 (신고하지 않은 외환거래에 대해) 전부 '재산국외도피'로 판단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 금융감독원과 회계법인들이 나서서 다 조사했어도 100% 해외사업이나 차입금 상환 등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그래서 검찰이 기소할 때에는 추징금이 없었는데, 법원 판결 과정에서 '화이트컬러 범죄를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추징금이 추가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신장섭 교수도 "추징금은 횡령한 것에 대해 부과돼야 하지만 당시 대우는 횡령으로 잡힐 것이 없었다. 추징금 자체도 과대계상된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본인에게 부과된 17조9253억원의 추징금 중 현재까지 840억원만 납부하고, 나머지는 모두 미납한 상황이다. 이번 회고록에 그의 입장이 담겨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김 전 회장은 추가적인 추징금 납부의 의지가 전혀 없는 셈이다.
 
김 전 회장은 세금체납 문제에 대해서도 불만을 털어놨다. 그는 "여지껏 기업하면서 모범납세에 관한 상은 다 받았다"면서 "체납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재를 내놓은 뒤 발생한 배당소득세, 재산세, 양도소득세 등인데, 그 재산에 대한 배당이나 양도차익은 채권단에서 다 가져갔고, 세금고지서만 내 이름으로 나왔다. 내가 내야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놔두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1월 특별사면을 받은 이후 베트남 골프장 등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아들 선용씨가 베트남에 초고층 건물을 소유하는 등의 사실이 드러나면서 혹독한 여론의 질타를 맞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른바 '김우중법'이라고 불리는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해 마련됐지만 추징금 환수 여부는 미지수다.
 
신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기업가를 3번 죽였다"며 "처음이 대우 몰락이고, 2005년 재판에서 징역과 23조원의 추징금을 때려 범죄자로 몰았고, 말도 안되는 추징금을 가족들에게까지 받아내겠다고 해서 김우중법을 만들어 다시 죽였다"고 주장했다.
 
'세계경영'을 기치로 재계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은 IMF 사태로 재정난이 가중되면서 끝내 1999년 해체됐다. 차입 의존도가 높았던 대우로서는 연 20%가 넘는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했고, 빚을 통해 빚을 갚는 악순환에 빠졌다. 대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재벌그룹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신화 또한 막을 내렸다.
 
한편 이날 오후에는 옛 대우그룹 임직원들의 모임인 대우인회와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주최로 특별포럼이 예정됐다. 신 교수는 이 자리에서 특강을 진행할 계획이며, 김 전 회장도 옛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대우 출신 인사들은 기업과 학계 등에 뿔뿔히 흩어졌으며, 대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새기고 서로를 각별히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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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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