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원 삼성토탈사장이 지난5월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입원 후 처음 열린 수요 사장단회의 참석을 위해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 ⓒNews1
[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파라자일렌(PX) 가격은 앞으로 톤당 1350달러에서 1450달러 사이를 왔다갔다 할 겁니다."
손석원 삼성토탈 사장이 PX 가격이 1450달러 선을 뚫고 올라가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PX는 합성섬유와 페트(PET)병, 필름 등의 원료로, 최근 PX를 사가는 중간재와 최전방인 합성섬유 업체간 힘겨루기 양상이 짙어지면서 폴리에스터 체인에 속한 전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내수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부진과 공급과잉 등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면서 수급의 균형은 깨졌다. 이에 각 밸류체인(가치사슬)별로 원가 부담을 떠안지 않으려는 게 전방위적 어려움의 발단이 됐다.
특히 지난 2분기 수익성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자 밸류체인 간 기싸움은 극에 달했다. 삼성토탈과 롯데케미칼 등 석유화학 업체들을 비롯해 SK이노베이션과 S-Oil, GS칼텍스 등 정유사들이 화학사업에서 부진한 성적표를 내놓은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체 지난 2분기 중국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지난 21일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최고경영자 간담회' 직후 손 사장을 따로 만나 지난 석달 간 시장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中 경기 침체에 폴리에스터 체인 줄줄이 부진..밸류체인 간 기싸움 전개
우선 PX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폴리에스터 생산 체인을 들여다보자. 합성섬유의 원료인 폴리에스터는 원유를 정제할 때 나오는 PX를 이용해 만든다. 그런데 폴리에스터 업체는 PX를 공급받지 않고, 이를 가공한 원료를 사온다. 이 제품이 바로 PTA(고순도 테레프탈산)로, PTA는 PX와 폴리에스터를 연결하는 중간재다.
국내 유화업체들은 PX의 공급선 역할을 맡고 있고, 중국 화섬업체들은 이를 사다가 PTA와 폴리에스터, 최종적으로는 옷을 만든다. 한·중 양국이 원료와 제품 간 분업이 이뤄져 있다고 보면 된다.
폴리에스터 밸류체인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PX는 2011년 톤당 1700달러를 찍으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 국내는 물론 중국 업체들이 앞다퉈 신증설로 몸집 불리기 경쟁에 나섰다. 규모의 경제 싸움이 시작된 것.
문제는 신증설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촉발됐다. 중국 경기 침체로 의류소비가 감소하자 폴리에스터 체인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
무엇보다 폴리에스터 업체들의 타격이 가장 컸다. 이들은 소비자와 가장 가깝게 연결되기 때문에 원가에 수급상황을 상시적으로 반영할 수 없는 구조적 약점을 지녔다. 원재료비 인상으로 섣불리 가격을 올렸다가는 수요가 위축될 수 있어서다. 결국 그 부담은 이전 단계에 있는 원료업체들의 몫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올 봄부터 상황의 심각성이 더해졌다. 전방산업의 침체가 길어지면서 후방업체들이 버틸 체력이 바닥에 이르렀다.
이는 가격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PTA는 지난 3월 톤당 866달러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PTA 업체들은 1분기보다 2분기의 수급상황이 더 심각해지자 즉각 행동에 돌입했다. 가동률을 낮춰 수익성 방어에 혈안이 됐다.
문제는 PTA 업체들의 가동률이 하락하면서 PX 업체로 불똥이 튀었다. PX 공급 물량 감소로, 수급 원칙에 따라 판가하락이 뒤따랐다. PTA 업체 입장에서는 PX 가격을 떨어뜨려 원료가 부담을 덜게 된 셈이다. PX가 지난 3월 톤당 1147달러를 기록, 바닥을 찍은 것도 PTA 업체들이 실력 행사에 나섰던 결과로 풀이된다.
◇PTA 업계, PX 단가 후려치기 실패
하지만 PTA 업체가 계산했던 상황은 오래 가지 못했다. PX 업체들이 수익성 방어를 위해 반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PX 업체들도 가동률을 낮춰 물량을 조절했고, 이로 인해 일시적으로 수급 개선, 가격 반등이 뒤따랐다. PTA 업계의 자구책이 자충수가 된 셈이다.
손 사장은 "PTA의 큰 손인 중국 업체들이 일제히 가동률을 조정하는 식으로 PX 가격을 떨어뜨리자,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진 PX 업체들이 역으로 생산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면서 "PTA 업계의 예상과 달리 PX 업체들이 가동률 조정을 통해 판가 방어에 나서면서 원가 떠넘기기는 일단락 됐다"고 말했다.
PTA 업체들이 수익성 방어를 위해 고육지책을 내놨지만,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오자 한발 물러선 것이다.
PX 가격 흐름을 살펴보면 양측의 기 싸움은 5월 중순 무렵 종료된 것으로 보인다. PX 가격은 지난 5월 둘째주 최저 수준인 톤당 1200달러 이하를 찍은 뒤 서서히 바닥권을 탈출, 지난 15일 기준 톤당 1377달러를 기록했다.
◇폴리에스터-PTA, 기싸움 진행 중.."국내 신증설 물량, 지난달부터 가격 반영"
밸류체인 간 줄다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전개되자 PTA 업체들은 전방으로 눈을 돌려 폴리에스터 업체들에게 수익 악화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손 사장은 "PX 가격을 낮춰볼 심산이었던 PTA 업체들이 생각을 바꿔 PX 대신 폴리에스터 업체에게 공급가를 높이는 방식으로 떠넘겼다"면서 "이로 인해 수익성 악화에 내몰린 폴리에스터 업체들도 맞불을 놓는 등 양측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양측의 주도권 싸움은 아직 진행형이라는 얘기다.
다만 양측의 주도권 싸움이 장기전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손 사장의 전망이다. 요즘 같은 불황기에 원료 공급처와 구매처간 알력 다툼은 양쪽 모두에 독이 될 수 있어서다.
그렇다면 폴리에스터 체인은 언제쯤 2011년에 버금가는 '봄날'을 맞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삼성토탈과 경쟁관계인 롯데케미칼 허수영 사장은 "당분간 힘들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손 사장은 또 "(증설 물량의 증가로 인해)예전처럼 큰 수익을 남기기 힘들 것"이라면서 "PX 가격은 향후 1350~1450달러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크게 손해도 안 보고, 많이 이익도 안 나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허 사장 역시 "중국이 증설을 많이 진행한 탓에 PAT는 적어도 2~3년 더 고생할 것으로 본다"면서 "앞으로 2011년도 시절의 호황은 다시 누리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은 PTA와 PX를 모두 생산하고 있다.
중국의 자급률 향상도 문제지만, 국내 업체 간 몸집 불리기 경쟁도 PX 업체들을 고민케 하는 대목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국내 PX 생산능력은 총 974만톤으로 지난 3월 대비 330만톤이 증가했다.
S-Oil이 연산 180만톤으로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이고, 이어 삼성토탈(171만톤), SK종합화학(165만톤), GS칼텍스(135만톤), SK인천석유화학(130만톤), 현대코스모(118만톤), 롯데케미칼(75만톤) 순이다. 시장에서는 SK와 삼성토탈의 신증설 물량 유입으로 공급과잉에 따른 판가 인하를 우려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대해 손 사장은 "증설 물량은 이미 지난달부터 반영돼 향후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특히 우리와 SK의 신증설 공장은 콘덴세이트 전용 정제설비를 들였기 때문에 원가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