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검찰이 18일 사이버 공간에서의 명예훼손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 검찰의 무분별한 '명예훼손' 기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은 이날 안전행정부·미래창조과학부·안전행정부·인터넷진흥원 등과 함께 회의를 갖고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해 정식 재판에 넘기겠다는 대응 방침을 내놓았다.
검찰은 고소·고발 없이도 방송통신위원회, 주요 포털사 등과 공조해 실시간 인터넷 모니터링을 통한 정보 공유로 허위사실 유포사범을 상시 적발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체계적인 수사를 위해 서영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운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전담수사팀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명예훼손 사범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중심이 돼 이 같은 방침을 세운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16일 발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박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의 '대통령이 연애 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과 관련해 "대통령에 대한 모독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분노를 표출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자신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이런 상황에서 뒤따라 나온 검찰의 명예훼손 처벌 강화 방침으로 정권에 대한 건전한 비판까지 막을 우려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당사자의 고소·고발이 없어도 직접 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벌써부터 검찰이 스스로 정권의 방패가 되려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루 수천만 건의 글이 올라오는 사이버 상에서 현실적으로 검찰이 찾아낼 '명예훼손 피해자'는 결국 일반인 보다는 대통령 등 주요 몇몇 인사들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검찰의 모니터링이 결국 박 대통령 등 정권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보위'활동으로 변질될 위험이 없지 않다.
실제 이명박 정부 들어, 정부는 정책이나 발표에 대한 비판 보도 등에 대해 여러 차례 '명예훼손 고소·고발'을 통한 검찰 수사로 정권 비판 목소리에 강경 대응했다. '국가는 명예훼손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판례를 우회해, '기관의 장' 등이 개인자격으로 고소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MBC PD수첩에 대한 정권 차원의 명예훼손 소송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는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연이어 나온 직후인 2008년 5월 PD수첩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 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정운천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이 '개인자격'으로 PD수첩을 고소했다. 정부가 명예훼손 주체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우회적인 방법으로 사실상 정부차원에서 이뤄진 대응이었다. 정 장관에 대한 소송비용도 국가가 부담했다.
검찰은 이후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후, 당시 임수빈 부장검사가 '기소는 무리'라며 수뇌부와 갈등을 빚다가 검찰을 떠났다. 사건을 넘겨받은 전현준 부장검사 수사팀은 제작진을 2009년 6월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의 기소가 사실이 알려지자 마자 당시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제작 과정상의 단순 실수가 아니라 제작진이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를 갖고 진실을 바꿔치기했다는 명백한 증거들이 나왔다"고 제작진을 맹비난했다.
그러나 제작진 전원은 2011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고 이에 대해 청와대는 입을 다물었다.
이명박 정부는 또 지속적으로 4대강 사업을 비판해온 관동대 박창근 교수를 지난 2012년 7월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고소인은 정남정 당시 한국수자원공사 4대강사업본부장이었다. 그는 '수자원공사 차원의 소송'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정 본부장의 고소에 앞서 같은 해 1월 수자원공사의 상급 기관인 국토해양부도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한 바 있다. 정부를 대신해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수자원공사는 현재 빚이 10조원이 넘은 상태다.
천안함 침몰사건 당시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위원이었던 서프라이즈 신상철 대표는 지난 2010년 5월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정부와 군이 천안한 사고 원인을 은폐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고소당했다. 아직 1심이 진행 중인 이 사건에서 고소인은 국방장관 등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장이 되기 전인 지난 2009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당시 언론인터뷰를 통해 '국정원이 진보적 시민단체의 행사 모금 활동을 방해했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한 후, 국정원으로부터 민사소송을 당했다. 국정원은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지난 2012년 4월 대법원은 국정원의 패소를 최종 확정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개인'을 빙자한 국가기관의 소송은 이어졌다. 국정원 수사관들은 지난해 10월 '뉴스타파'가 허위보드를 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1억5000만원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뉴스타파'가 유우성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과 관련해 유씨의 동생 유가려씨가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들로부터 감금·폭행·협박·회유 등을 당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재판 과정과 '뉴스타파'의 추가 보도 등을 통해 '간첩 증거 조작'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이 역시 결국 국정원의 비판보도에 대한 입막음용 소송이었던 셈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참사 당일 '의문의 7시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여러 풍문이 돌던 중, 급기야 일본 우익지인 산케이신문은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추측성 기사를 썼다. 기사를 쓴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48) 서울지국장은 기소를 눈앞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