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우기자] 19일 방문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답십리 시장. 추석을 불과 1주일 앞두고 있었지만 대목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답십리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A씨는 옆의 현대시장 대목 분위기에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 덤덤하게 반응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한 덕분에 현대시장은 추석 대박이 났다구요? 우리는 작년 추석보다 장사가 더 안됐어요.”
지난 5일 박대통령은 추석을 맞아 답십리 현대시장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 방문으로 현대시장은 추석에 큰 성공을 거뒀다. 제수용품은 금세 동이 났고 떡집, 음식점은 재료가 떨어져 일찍 문을 닫아야 했다.
박 대통령의 전통 시장 방문 효과를 청와대는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지난 7월 박 대통령이 방문한 충주 서문시장은 매출이 2배 이상 늘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박 대통령의 방문 효과는 적극적으로 알리지만 여전히 힘든 전통시장의 어려움에는 관심이 없다.
오후 3시면 시장은 저녁 준비를 하러 나온 손님들을 맞아 활기차야 하지만 답십리 시장은 문을 열지 않은 점포가 많았다. 이 시장에서 40년간 장사를 했다는 B씨는 그 점포는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이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는 “이 주변에 대형 마트만 5개다. 손님들이 다 거기로 가버려 장사가 안돼 세입자들은 다 떠나버렸다. 지금 문 열고 있는 곳은 건물 주인들이라서 그나마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19일 답십리 시장 입구. 오후 3시지만 문을 열지 않은 상점이 많다.(사진=뉴스토마토)
답십리시장 주변에는 이마트에브리데이, 롯데슈퍼 등 대형마트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채소, 과일 등을 더 싸고 깨끗하게 포장해서 팔면서 채소, 과일을 팔던 답십리시장 상인들은 떠나버렸다고 한다. 시장 골목이 복잡해 지붕 등 현대화 작업도 하지 못했다.
불과 도보 10분 정도 거리지만 박 대통령 효과는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B씨는 추석 매출에 대한 질문에 “현대시장 가게는 이틀 동안 팔 물건을 하루 만에 다 팔아서 일찍 고향에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재료가 남아서 다 버렸다”고 씁쓸하게 답했다. 또 다른 상인은 대통령이 방문한 시장을 보러 현대시장에 손님들을 빼앗겼다는 불만도 토로했다.
◇19일 답십리 시장의 빈 점포. 정육점이 2달전 폐업했지만 아직 비어있다.(사진=뉴스토마토)
정부와 청와대는 상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서비스 정신을 제고하면 매출이 상승할 것이라며 전통시장의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시장이 노력만으로 대형 마트와 경쟁하기 버거운 모습이 역력하다.
현대시장 근처의 또 다른 전통 시장인 전농로터리시장은 현대시장보다 규모도 크고 전체 지붕 등 현대적인 설비를 갖췄다. 그렇지만 상인들의 추석 매출은 작년보다 더 떨어졌다.
현대적으로 꾸며진 시장 뒤에는 인적도 없고 어두운 골목길이 감춰져 있다. 불과 몇 년전까지는 물건을 팔던 시장 골목이지만 손님이 줄면서 모두 떠나버렸다.
로터리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C씨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대형마트들과 경쟁하기 어렵다. 시장 뒤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와서 매출이 늘 것으로 기대했는데 대부분 마트에 빼앗겼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시장 자체적으로 노력을 더 해야겠지만 언론 등에서 시장을 더 알려주는 등 외부 도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농로터리시장 뒷길. 상인들이 다 떠나 대낮인데도 어둡고 인적이 없다.(사진=뉴스토마토)
서민들의 삶을 지탱해주던 전통시장의 쇠락은 심각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01년 40조1000억원이었던 전통시장 총매출은 2013년 20조7000억원으로 48% 감소했다.
박근혜 정부는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전통시장 지원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표를 의식한 생색내기용이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시장을 방문하면 전통시장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한 상인은 “대통령 방문도 결국 잊혀질 건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