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용식기자] 유명 무협작가 김용의 <의천도룡기>라는 소설을 보면 ‘건곤대나이’라는 신묘한 무공이 나온다. 건곤대나이는 “하늘과 땅을 크게 잡아 옮긴다”는 뜻으로서 상대방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주인공 장무기는 경험이 일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6대 문파 초고수들을 연달아 물리칠 수 있었으며, 강호에 이름을 떨쳤다.
IT벤처업계 창업열풍이 거세지는 가운데 역발상으로 몸집을 크게 키운 회사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이들은 밑바닥에서부터 힘겹게 사업을 일구기보다 경쟁사 힘을 이용해 좋은 성과를 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있을까. 가장 먼저 독일 벤처투자기업 로켓인터넷을 꼽을 수 있다. 시장에서는 로켓인터넷을 ‘복제품 공장’이라 일컫는다. 실리콘밸리에서 검증된 사업모델을 베껴 유럽 각국에 뿌리는 방식으로 성장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베이(오픈마켓)를 보고 잘란도를, 그루폰(소셜커머스)을 보고 시티딜을, 에어비앤비(숙박공유)를 보고 윔두를, 버치박스(샘플구독)를 보고 글로시박스를 내놓는 식이다. 이중 일부는 국내에도 진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 로켓인터넷 포트폴리오 회사들 (사진=로켓인터넷)
사실 선두업체를 쫓는 벤치마킹 전략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로켓인터넷은 여기서 더 나아가 원조회사에게 속칭 ‘짝퉁 사업체’를 팔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이 전세계로 서비스를 확장시키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원조회사로서는 얄밉지만 당장 급하니 살 수 밖에.
현재 로켓인터넷은 대규모 매각대금을 기반으로 신흥시장에서 전자상거래 사업을 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조만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증권시장에 상장하기로 했다. 그리고 알리바바, 아마존과 함께 전세계 전자상거래 시장을 삼등분하겠다는 당찬 계획을 갖고 있다.
두 번째로 옐로모바일은 자체 사업이 전무한데도 불구하고 ‘스토리텔링’만으로 몸집을 불린 회사다. 옐로모바일은 몇몇 중소 우량 벤처기업을 인수해 시장에 대형 모바일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고 벤처캐피탈(VC)로부터 자본을 조달했다. 그리고 이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지금은 퓨처스트림네트웍스, 여행박사 등 수백억원 기업가치를 지닌 벤처마저 휘하에 있는 상황. 업계에서는 옐로모바일을 가르켜 공룡벤처라 부른다.
창업자 이상혁씨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을 감지했다. 전세계적으로 IT업종에 돈을 몰리면서 스타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과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시장 특성상 벤처기업 창업자들이 경영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둘을 적절하게 결합하면 좋은 그림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업계 다른 한쪽에서는 “핵심역량 없이 자본의 유입만으로 비즈니스가 유지되는 게 말이 되냐”며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 옐로모바일 이미지 (사진=옐로모바일)
콘텐츠 홍수 속에서 선별작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시도도 있다. 흔히 이같은 사업모델을 큐레이션이라 일컫는데 대표 사업자로서 미국 버즈피드를 들 수 있다.
통상 미디어라 한다면 속보성 보도기사나 심층 분석기사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버즈피드는 당장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읽을거리를 기획한다. 제목과 본문 모두 기존 기사양식을 무시할 때도 많다. “직장이 당신에게 숨기는 9가지 불편한 진실”, “내 강아지가 가장 사랑스러울 때” 마치 이런 식이다.
이는 “굳이 새로운 것을 내놓는 것보다 기존 공개자료를 잘 편집해도 충분히 좋은 뉴스가 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됐다.
현재 버즈피드는 뉴욕타임즈와 허핑턴포스트를 누르고 가장 많은 트래픽을 보유한 미디어 사이트가 됐으며 대규모 투자유치에도 성공, 서비스 고도화에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