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독일 기업들이 침체된 내수 시장 대신 높은 수익성이 예상되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1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는 유럽 국가들이 경기 둔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생산설비를 확대하거나 인수합병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세계 최대 종합화학회사 바스프(BASF)는 기존에 있던 미국 생산시설에 10억유로를 추가할 계획이다. 셰일 혁명 덕분에 저렴해진 미국 천연가스를 이용하면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BASF는 독일이나 유럽연합(EU) 보다 해외에서 올릴 수 있는 수입이 더 크다고 본다. 커트 복 BASF 회장은 "북미는 독일보다 수익성이 훨씬 좋다"며 "유럽에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압박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독일 에너지 업체 에오엔(Eon)도 브라질과 터키 등 국외 시장에 투자를 늘릴 방침이다.
생산 설비를 늘리는 것과 더불어 외국에 진출해 투자하는 방식으로 인수합병(M&A)도 인기를 얻고 있다.
세계적인 전기전자 업체 지멘스는 76억달러를 들여 미국 에너지 장비 최대업체 미국 드레서랜드를 인수하기로 합의했고 자동차 부품 업체 ZF는 미국 동종 업체인 TRW를 117억달러에 매입하기로 했다. 반도체 업체 인피니언은 같은 업계 기업인 인터내셔널 렉티파이어를 30억달러에 사들이기로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가 주도하는 균형예산으로 내년에도 재정지출 증가 폭이 미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기업의 해외 투자 비중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메르켈 정부는 공공지출을 줄이는 대신 민간투자를 활성화할 방침이나, 그 주체가 되는 기업들은 국내에 투자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업들은 긴축이 장기화되면서 교통을 비롯한 인프라 시설이 엉망이 됐다고 지적한다. 법인세를 내도 교통과 다리, 도로 같은 인프라 건설에 쓰이지 않는다며 기업들 사이에 불만이 팽배하다.
인프라가 부실하면 기업이 부담해야 할 생산비용이 늘어나고, 이는 다른 국가 동종업계와의 가격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는 지난 1990년초 당시 한 해 기준으로 140억유로에 달하던 교통 인프라 예산을 현재 70억유로까지 줄인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독일에 향후 4년 동안 인프라 부문에 500억유로를 투자하라고 권고할 정도로 독일 정부는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
독일 내 제조업과 수출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점 또한 토종 기업들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독일 경제의 주 수입원인 수출 경기는 지난 8월 지난 5년래 최악으로 곤두박질쳤고 산업 생산도 전달보다 5.8% 감소하는 등 형편없는 모습을 나타냈다.
랄프 비처스 독일 기계제조산업협회 VDMA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독일 기업들이 국외 생산시설을 현대화하는 가운데 국내 투자는 꺼리고 있다"며 "국외에서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