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독일이 6년 만에 세번째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긴축을 줄이고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졌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가 아직까지 단호하게 긴축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국제기관들의 요구대로 긴축기조가 후퇴할지는 미지수다.
◇IMF·OECD 등 국제기관들 "독일, 인프라 투자 진행할 것"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제기관들이 한목소리로 독일에 인프라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유럽중앙은행(ECB)은 독일 정부가 곳간에 쌓아둔 재정을 도로나 다리, 철도 등 기본 인프라를 짓는데 써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금 재정 지출을 확대하지 않으면 독일 경제 뿐 아니라 유럽과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이유에서다.
독일 경제는 최근들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지난 8월 독일이 자랑하던 수출 물량은 지난 2009년 1월 이후 최대치로 떨어졌고 산업생산은 전달대비 4.3%나 감소했다. 침체 목전까지 간 프랑스(-0.1%)와 비슷한 경제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이탈리아(0.3%)보다도 못한 모습이다.
같은 기간, 공장수주도 전달 대비 5.7% 감소해 2009년 1월 이후 가장 큰 폭의 내림세를 기록했다. 민간경제연구소인 유럽경제연구센터(ZEW)의 조사에 따르면 경제 지표 부진 탓에 투자자들의 신뢰도는 2년여만에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클레멘스 푸에스트 ZEW 대표는 "독일의 3분기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독일 경제는 점점 경기침체 상태로 접어드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0.2%를 기록한 지난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면 독일 경제는 공식적으로 '리세션(경기후퇴)'에 처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와중에 독일의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돼 리세션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독일 경제부는 이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1.8%에서 1.2%로 0.6%포인트나 낮췄다. 내년 성장률 전망도 2.0%에서 1.3%로 내렸다.
◇獨 경제 발목잡는 러시아 제재·글로벌 경기둔화
독일 경제가 끝을 모르고 하락하고 있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러시아 제재를 꼽을 수 있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보복성 금수조치로 맞불을 놓자 독일의 대러시아 수출이 엄청나게 줄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는 러시아 제재로 지난 6개월간 기업 수출이 전년 대비 13%나 줄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추세도 독일 경제 회복에 발목을 잡고 있다. OECD에 따르면 34개 회원국의 고용률은 지난 6월까지 3개월간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그전에는 4분기 연속으로 고용자 수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WSJ는 아시아와 신흥국이 성장과 거리가 먼 모습을 띄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외 악재가 겹치면서 독일 경기 침체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주 IMF는 독일이 리세션에 빠질 확률을 종전의 20%에서 40%로 올렸다.
에블린 헤르만 BNP파리바 유럽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당시와 지금의 독일은 비슷한 수준의 불확실성에 휩싸였다"며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 탓에 유럽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르게 유출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독일에 침체 위기를 벗어날 여력이 없는 건 아니다. 독일은 언제든지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 부양책을 구사할 수 있다.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국내총생산(GDP) 대비 7%기록할 정도로 견고한 편이다. 마이너스(-)2.2%를 기록한 프랑스와 -3.8%의 영국과 비교하면 매우 양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여전히 긴축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재정 건정성을 강화하는 것이 장기 성장에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독일의 어떤 정책을 선택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가 긴축을 포기하면 다른 나라들도 잇따라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정부는 국제기관들의 반대를 일축하고 계획대로 내년에 균형예산을 편성할 방침이다. 기업으로 따지면 무차입 경영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1969년 이후 46년 만에 처음으로 단행되는 균형예산이다.
다만, 국내외 적으로 긴축 반대 목소리가 높아 메르켈이 균형예산과 긴축기조를 계속 추구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경제 전문가들은 긴축을 종료하고 지출을 늘려야 할때라고 경고하고 있다. 심지어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도 최근 이례적으로 재정적 차원의 조치를 함께 취해야 할 때라며 성장 위주의 정책을 주문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주요국들이 긴축을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도 독일 정부에 큰 부담이다.
시몬 틸포드 유럽경제개혁센터(CER) 부대표는 "유럽 국들은 독일이 결국에 가선 긴축기조를 완화할 것으로 기대감이 커졌다"며 "긴축을 충분히 한만큼 이제는 뒤쳐진 경제를 끌어 올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독일 정치권 내에서도 긴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졌다. 랄프 슈테그너 사회민주당 의원은 "교육과 인프라에 들어갈 예산을 아끼면서까지 균형예산을 단행하는 것은 무리"라며 "사민당은 균형예산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