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A의 분자구조.(사진=금호피앤비화학
[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새 먹거리로 주목받던 BPA(비스페놀-A)가 공급과잉 상태에 놓이면서 LG화학과 금호석유화학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BPA는 자동차를 비롯해 휴대폰과 가전제품 외관에 쓰이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물질이다. 지난 2010~2011년 시황 호조로 국내외 업체들이 앞다퉈 증설에 나서면서 각 업체들은 판가하락을 떠안아야 했다.
올 하반기 들어 가격 하락세가 다소 진정되는 분위기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수요증가가 아닌 공급감소로 인한 가격 반등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여전히 수급은 과잉공급에 꼬여 있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대산에서 BPA 생산을 중단하고, 여수공장만 100% 가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LG화학은 여수30만톤, 대산산업단지에 15만톤 규모의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역시 자회사인 금호피앤비화학(연산 45만톤 규모)의 현재 가동률이 7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사는 지난해 각각 15만톤의 증설을 완료하면서 현재 45만톤 규모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LG화학은 NCC·PO 사업부 매출 가운데 약 15%가 BPA에서 창출된다. 금호석유화학은 전체 매출에서 BPA가 속한 페놀유도체의 비중이 19%에 이른다.
석유화학의 기초원료인 나프타를 분해하면 프로필렌과 벤젠이 나오는데, 이를 반응시키면 페놀과 아세톤이 생산된다. 여기서 페놀을 다시 한 번 가공해 얻는 게 바로 BPA다.
LG화학 측은 BPA 제조보다 중간재인 페놀과 아세톤을 판매하는 게 경제성을 가진다는 판단에 따라 대산공장의 생산중단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여수공장의 경우 BPA를 원료로 사용하는 폴리카보네이트(열가소성 플라스틱)가 생산되고 있어 생산을 유지하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대산은 공장을 아예 멈춘 게 아니라 BPA를 만드는 반응기만 가동을 멈춘 것"이라면서 "BPA 시장이 불투명한 탓에 전략적 차원에서 수익성이 나은 제품 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BPA 업체들이 나란히 저조한 가동률을 보인 것은 무엇보다 시장 수요를 웃도는 공급과잉의 여파가 컸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1년 시황 호조에 힘입어 국내외 업체들이 너도나도 증설에 나서면서 수익성에 발목이 잡혔다. 지난 2012년 국내시장의 BPA 수요는 59만2000톤에 불과했지만, 각 업체들은 증설을 진행해 지난해 생산능력을 105만톤으로 확대했다. 이는 전년 수요의 두 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 같은 증설경쟁의 결과 지난 2011년 톤당 2083달러를 기록했던 BPA 평균가격은 지난해 1680달러까지 밀렸다. 특히 올해 1분기에는 1637달러까지 뒷걸음질치자 각 업체들은 가동률을 낮추는 방식으로 가격 방어에 나섰다. 지난 8월 톤당 1900대로 올라서며 가격이 회복된 것은 공급조절에 따른 효과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때문에 업계 안팎에서는 당분간 BPA 시황이 바닥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LG화학 역시 지난 20일 열린 3분기 기업설명회에서 BPA 시황이 답보상태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최근 들어 가격이 오른 것은 수요증가가 아닌 공급통제에 따른 결과"라면서 "내년에도 공급과잉 우려가 존재하는 만큼 눈에 띄는 회복세를 보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LG화학은 이날 증시에서 전날 발표한 3분기 실적 충격에 무려 14.16%(3만2000원) 폭락한 19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반면 시장 기대치에 부합하는 3분기 실적을 내놓으며 선방한 금호석화는 1.22%(900원) 오른 7만4600원에 거래를 마쳐 희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