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포스터 (사진제공=명필름)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영화 생각보다 별로라며?"
영화 <카트> 시사회장으로 가는 길에 친한 기자가 전한 말이다. 별 뜻없이 툭 던진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올해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영화이면서, 영화가 굉장히 잘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되는데"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붙잡고 객석에 앉았다. 영화가 끝난 뒤 그 기자에게 "누가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한 거냐"라며 농담조로 따졌다.
영화는 좋은 수준을 뛰어넘었다. 계속해서 먹먹했고, 울컥하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감동의 여운이 길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내 친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고 혹은 내 이야기도 될 수 있는 자화상 같은 영화다.
영화는 알려진 대로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이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 2007년 있었던 이랜드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을 모티브로 한다.
◇<카트> 스틸컷 (사진제공=명필름)
극중 캐릭터 대부분이 평범하다. 이혼 후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 고등학생 아들과 어린 딸을 둔 엄마, 청소일을 하는 할머니, 취업이 안되자 마트로 온 20대까지 누구든 우리 옆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다. 이들이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한다. "회사가 살아야 개인이 산다"고 외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버림받는다.
노조가 노동조합의 줄임말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노조를 만든다. "계약기간까지 만이라도 일하게 해달라"며 하나로 뭉친다. 그리고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그간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영화는 많았다. <도가니>, <부러진 화살>처럼 특정 사람들을 지목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다르다.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에 초점을 더욱 맞춰, '당신도 이들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절제된 시선이 더욱 슬프게 한다.
열정은 가득하지만 이기기 힘든 거대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신파는 아니다. 비록 믿었던 회사에 버림받았지만 하나로 똘똘 뭉친 이들은 유쾌하다. 때로는 웃기기도 한다. 주인공 염정아는 큰 일을 겪은 후반부에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이 기특하다.
◇<카트> 스틸컷 (사진제공=명필름)
"캐스팅에 구멍이 없다"고 말한 김영애의 말처럼 이 영화에는 칭찬할 배우들이 정말 많다.
'YES맨'의 전형으로 야근수당을 받지 못해도 연장근무에 최선을 다하던 아줌마였지만 세상의 부조리함에 일침을 날리는 선희 역은 염정아가 맡았다. 염정아는 특유의 섹시함을 던지고 진짜 엄마가 된다. 뛰어난 연기다.
<숨바꼭질>, <마마> 등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문정희는 당차고 리더십 있는 엄마 혜미로 분한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고개를 들지 못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많이 아파진다. 두 사람의 우정은 영화 내내 울림을 준다.
노조의 가장 큰 어른 순례 역의 김영애는 중심을 잡고, 88만원 세대인 미진 역의 천우희는 밝아서 좋다. 연기 잘하는 감초 황정민은 이번에도 분위기를 풀어낸다. 정규직임에도 비정규직을 위해 목소리를 같이 내준 동준 역의 김강우, 사측에 선 '갑'이자 또 다른 '을'을 연기한 최 과장 역의 이승준도 고마운 존재다.
엑소 도경수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연기를 보인다. 그의 상대였던 지우는 충무로의 샛별이다. 잠깐이지만 엑소 팬의 공분을 살만한 연기를 펼친 김희원까지 이런 배우를 모두 모은 감독은 행운인 듯 하다. 이들 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를 연기했던 수많은 여배우들 모두 훌륭하다.
◇도경수 (사진제공=명필름)
부지영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의식있는 배우들의 열연은 서늘해지는 11월에 뜨거운 에너지를 내뿜을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노조지도부들이 복직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일부의 조합원들만 복직한 절반의 승리로 끝난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다른 곳에서도 이뤄지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다. 그래서 더욱 슬픈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개봉은 11월 13일. 상영시간 10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