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신해철. (사진제공=KCA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신해철은 독설가였다. 그의 화법은 거침이 없었다. 축구로 치면 저돌적인 돌파를 즐기는 웨인 루니, 농구로 치면 키는 작지만 공격적인 움직임으로 골밑을 파고들던 찰스 바클리와 같은 스타일이었다. 시사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한 신해철은 유려한 말솜씨로 상대 패널에게 폭격을 가했다. 대마초 합법화, 간통죄 반대, 학생 체벌 금지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직설 화법으로 쏟아냈다. 질 게 뻔해 보이는 싸움, 하지만 신해철은 그 싸움에서도 절대 지지 않을 것만 같은, 링 위의 투사 같은 이미지였다.
지난 2002년, 故노무현 전 대통령(당시 대통령 후보)의 찬조 연설에 나서선 세상을 향해 칼끝을 겨눴다. “나도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를 혐오해왔지만 더 이상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야 할 대한민국은 맹수들이 서로 물어뜯는 우리에 불과하다. 이건 사람 사는 꼴이 아니다.” 신해철은 혀는 날카롭고, 강했다.
하지만 그런 신해철이 정작 본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는 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항상 ‘우리’에 대해 얘기했고, ‘사회’에 대해 얘기했고, ‘우리 아이들’에 대해 얘기했다. 화려한 무대 의상을 떡하니 입고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신해철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민에 대해 '썰'을 풀고 있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TV 속 신해철의 모습이다. 누군가는 했어야 할 얘기였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서 하고 싶진 않은 이야기였다. 그 사이 신해철은 자신의 아픔과 괴로움에 대해선 꽁꽁 숨겨뒀다. 아니, 어쩌면 아무도 그에게 자기 스스로에 대해 얘기할 기회를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항상 "당신의 고민은 뭡니까?"나 "무엇이 당신을 힘들게 합니까"란 질문 대신 "대마초 합법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식의 질문만 던졌으니.
가장은 가족을 위해 강해져야 한다. 이건 선택 사항이 아니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must be"의 문제다. 신해철에게도 선택권은 없었다. '마왕'은 항상 강하고, 카리스마가 넘쳐야 했다. 대중들은 신해철에게 그런 이미지를 원했고, 그런 이미지를 가진 신해철을 좋아했다. 그렇게 조금씩, 신해철은 혼자서 고독해졌을지도 모른다.
신해철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향년 46세. 모든 걸 내려놓기엔 너무 젊은 나이다.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야 할 대한민국을 꿈꾸던 그다. 하지만 더 나아진 세상을 보지도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어쩌면 신해철이 느꼈던 세상은 그가 선거 찬조 연설을 했던 12년전보다 더 안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신해철이 떠난 자리엔 그가 남긴 음악들만 남았다.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하지만 실험적이고 완성도 높은 음악들. 신해철은 댄스와 발라드 음악이 주류를 이루던 90년대에 록 음악을 들고 나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상으로의 초대', '재즈카페' 등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음악을 선보였던 그는 국내 음악계에서 록을 대중화시킨 선구자와 같은 존재였다.
그가 남긴 노래 중엔 '아따'(A.D.D.A)란 노래도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신해철의 신곡이다. 신해철은 1000개의 녹음 트랙에 자신의 목소리를 중복 녹음해 이 노래 속 모든 사운드를 자신의 목소리로만 만들어냈다. 신해철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원맨 아카펠라'를 구현해냈는데 이는 실험적이고, 파격적이며,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경지 이상에 오른 음악적 실력은 물론, 일종의 편집과 강박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30년 가까이 음악을 해온 신해철은 자기 음악과 자기 자신에 대해 그만큼 집요했다.
늘 강하고 거침 없어 보였던 '마왕' 신해철. 하지만 가족 앞에선 달랐다. 신해철은 결혼 전부터 암투병 중이었던 아내 윤원희씨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언뜻 봐선 순정만화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외모다. 무협 만화에 등장할 것만 같은 강한 인상의 그다. 하지만 그는 순정파였다. 그는 아내의 추천으로 눈썹 문신을 했던 귀여운 남자였고,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다. 당신의 아들, 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며 아내에 대한 진한 애정 표현을 할 줄도 알았던 로맨틱 가이였다.
신해철이 지난 6월 발표한 '단 하나의 약속'이란 노래는 아내를 위한 러브송이다. 신해철은 아내와 만남을 시작하던 시절에 처음 만들어졌던 이 노래를 15년에 걸쳐 틈틈이 손질해왔고, 드디어 세상에 내놨다. 이 곡에서 신해철은 "다신 제발 아프지 말아요. 내 소중한 사람아. 그것만은 대신 해 줄 수도 없어. 아프지 말아요"라고 얘기한다. 정작 본인이 그렇게 아팠으면서 말이다.
신해철은 과거 "내 장례식장에서 울려퍼질 노래"라면서 '민물장어의 꿈'에 대해 언급했다.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라는 이 곡의 노랫말처럼, 신해철은 뭔가 깨달음을 얻었을까. 이 세상에선 느끼지 못했던 마음의 안식을 이제는 찾았을까. 영정 사진 속 신해철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뭘 그런 걸 알려고 해?”라고 금방이라도 소리칠 듯, 변함 없이 카리스마를 뽐낸다. 그리고 무심한 듯 시크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우리의 '마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