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정부가 경제혁신 계획의 핵심과제로 공공기관 방만경영 개선을 강조한 후 공공기관 정상화를 매섭게 몰아세우고 있다. 기한 내 정상화를 달성 못 하면 기관장을 해임하겠다고 엄포까지 놨다.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로 '적폐를 척결하는 정부'의 이미지 구축에 득을 봤는지 금융권과 국립대병원 경영평가까지 추진할 태세다.
그러나 정부가 정상화를 빌미로 공공기관 군기잡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조건적인 노조합의를 이끌어 내 방만경영을 척결하라는 식의 정상화 방침과 기관장 해임이라는 초강수는 공공성 확보라는 공공기관의 본래 목적과 동떨어졌다는 주장이다.
30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한국전력과 한국거래소 등 38개 방만경영 중점관리기관에 대한 정상화 중간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부산대병원을 제외한 37개 기관이 정상화 계획을 100% 이행해 방만경영 개선을 완료했다.
정부는 애초 이번 발표 때까지 부채감축 계획을 완료하지 못하거나 방만경영 개선을 위한 노사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실적이 부진한 공공기관 기관장을 해임하겠다며 마지노선을 그었는데 그게 약발이 먹혔다는 분석이다. 지난달만 해도 이번 평가를 통해 대략 10명의 기관장이 쫓겨날 수 있다고 전망됐으나 실제 옷을 벗을 기관장은 아무도 없었다.
실제로 기관장이 혹시라도 해임될까 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부 공공기관은 경영평가 발표 전날 극적으로 노조합의를 성사시켰는가 하면, 철도공사는 다음 달까지 노조 합의안을 마련하겠다는 조건부로 경영평가에서 겨우 낙제점을 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0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News1
하지만 올해만 서너번이나 나온 공공기관 정상화 점수 매기기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공공기관에 막대한 부채가 생긴 원인과 기관별 정상화 추진과정은 살피지 않고 실적으로만 판단하는 지금의 정상화는 공공기관이 군기잡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대표급 부실 공기업으로 낙인찍힌 에너지공기업의 현장 근로자들로 구성된 한국발전산업 노조는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아예 '불통 정부의 가짜 정상화'로 규정했다.
발전노조 관계자는 "공공기관과 공기업 경영평가는 공공성에 얼마나 기여했느냐가 기준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돈을 얼마나 남겼고 경영자가 권력자의 지침에 따라 어떻게 노조를 잘 구슬렸느냐가 기준"이라며 "경영평가로 공공기관을 국민 앞에서 망신주고 정원감축과 임금삭감, 구조조정을 진행한 후 이제는 민영화를 하자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공공성을 고려하지 않는 정상화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미 에너지공기업들이 부채감축을 위해 해외 알짜자산을 헐값에 매각하고 있다는 논란까지 나오는 마당에서 자칫 공공부문의 역할이 과도하게 축소될 경우 제2의 세월호 사태가 나올 수 있다는 경고다.
이번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결과만 봐도 24조4000억원의 부채감축 규모가 가장 크게 부각됐고,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날 열린 '공공기관의 정상화의 날 워크숍' 인사말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거듭 언급하는 등 기관의 경영적 측면만 강조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방만경영 중점관리기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던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공공기관 정상화를 외치면서 안전규제를 허물고 공공기관 낙하산 문제는 외면하는 게 지금 정부"라며 "공공기관 현장 근로자의 의사를 무시한 정상화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더 기막힌 점은 정부가 경영평가를 금융권과 보건의료계까지 확대할 모양새라는 것이다.
지난 29일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내년부터는 은행에 혁신성 평가를 도입하고 한해 두번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밝혔고, 교육부는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 등 전국 13개 국립대병원을 대상으로 경영실적평가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정부가 방만경영 관리기관이 아닌 곳까지 정상화 대책을 들이밀고 있다"며 "경영평가는 정부의 정책실패를 공공기관의 경영실패로 왜곡하고 공공부문이 경제에 도움이 안 돼 민영화를 해야한다는 식으로 진실을 은폐한다"고 말했다.
국립대병원의 경영평가는 평가의 명분과는 별개로,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교육부에서 평가를 수행한다는 점이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아울러 국립대병원은 환자 진료와 의대생 교육, 의학연구 등이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데 이를 어떻게 계량화할 것이냐는 우려가 크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본부 관계자는 "병원은 공공성 확보가 최우선인데 이를 평가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병원 경영에 대해 무지한 교육부가 평가 주체라는 게 더 기막히다"며 "국립대병원도 수익을 못 내는 마당인데 병원의 수익성을 확보하려면 부대사업과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민영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려는 꼼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대한 의지는 적어도 이번 정부에서는 줄어들지 않을 분위기다.
이날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주관한 최 부총리는 "공공기관 정상화는 환골탈태의 과정"이라며 "공공기관이 건실한 경영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고만 밝혔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반영하고 대안을 마련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발전노조 관계자는 "가짜 정상화는 그만두고 박근혜정부부터 정상화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