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반세기 전 북한 유학생의 사랑

<한 유학생의 이야기> 김명 지음 | 파랑새미디어 펴냄

입력 : 2014-11-07 오후 9:54:46
[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으나, 가치를 지닌 책과 그 뒷이야기를 소개하는 '뒷북'이 세 번째로 다룰 책은 <한 유학생의 이야기>(파랑새미디어 펴냄)입니다.
 
 
이 책은 재중동포 사업가라고 밝힌 김명 씨(가명·70대 초반)가 쓴 소설입니다. 소설은 작가가 지난 1960년대 재중동포 유학생 신분으로 북한으로 건너가 어부로 일하면서 김책공대 핵물리학부에 진학하는 등 그곳에서 5년가량 겪은 일을 소설로 꾸민 것입니다.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는 청년 학철이는 권력을 잡은 이들이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여기고 유린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분노를 느낀다는 게 줄거리입니다. 어선 선장에 불과한 사람이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과 악수했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는 권력을 잡고 여성을 마음대로 유린했다는 내용이 대표적입니다. 순수한 사랑과 쾌락을 대비하면서 타락한 권력자들의 탐욕을 지적하는 듯합니다. 
 
이 때문에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이 떠오르더군요. 이 영화에는 주인공 빌(톰 크루즈)이 상류층의 집단난교 파티를 구경하는 장면이 나오죠. 최근 고위층 성접대·추문 사건 당시 이 영화가 입방아에 오른 바 있습니다. 소설 속 반세기 전 북한 사회와 닮은 21세기 우리나라라니. 한편으로는 첫사랑의 추억을 환기했던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흐르던 노래 '기억의 습작'(전람회)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소설을 거의 다 읽을 무렵에는 "정신문명은 물질문명 위에 세워지는 것이지 인민들의 생활 수준을 떠난 텅 빈 정치적 구호나 선전에서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소설 주인공의 독백이 이 소설의 압권으로 떠올랐습니다. 북한이나 우리나라나 반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실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작가가 지적하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성행위 묘사가 자주 나와 부담스러운 이 소설 속에 숨은 진주인 듯합니다.
 
◇왜 주목받지 못했나?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는 70대 재중동포가 전하는 옛날 이야기여서 "그때는 어땠을까"하며 흥미롭게 읽히기도 하지만, 그래서 주목하기 어려운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너무 옛날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또한, 50년 전 북한에 5년 머문 재중동포 유학생의 시선에서 쓴 소설이고,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 쓴 글인지 충분히 확인되지도 않았습니다. 개인의 이야기는 소중한 것이지만, 최근 북한에서 나온 확인된 인물의 따끈따끈한 목소리를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시절인 것도 사실입니다.
 
문학적 완성도가 높았다면 좋았겠습니다. 최근 한국소설가협회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탈북 작가도 나왔고, 한국 문단에 등록된 탈북 작가도 10명 이내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가치가 있다는 증거 중 하나겠지요. 문학적 완성도가 높았다면 내용을 이루는 재료만으로도 충분히 눈길을 끌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을 보면 아쉬운 점이 꽤 보입니다. 이미 나온 얘기가 거의 똑같이 반복되는 부분도 있고요. 성행위 묘사는 지나치게 자주 나옵니다. 다른 등장인물은 그렇다 치더라도, 순수한 사랑을 원한다는 주인공의 손마저 여주인공의 저고리 속으로 다른 곳으로 들어갈 때는 정말 당황했습니다. 작가가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식의 진부한 편견이 있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출판사가 생각하는 소설의 가치는 '북한 정권 비판'이라고 하던데요. 소설 속 북한은 무려 50년 전이잖아요. 50년 전과 현재가 비슷하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마케팅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뒷북 선정 이유와 가치는?
 
북한 관련 소설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1960년대 북한 사회를 다룬 책은 흔하진 않은 듯합니다. 작가는 무려 50년 전 젊은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소설을 썼습니다.  이 책은 '1960년대 북한 유학기'의 뒷북인 셈이군요.
 
작가가 1960년대에 썼던 일기를 꺼냈나 싶을 정도로 세밀한 묘사도 특징입니다. 프로 작가가 쓴 책이 아니라 투박하고 어색한 표현이 꽤 있는 것은 사실이나, 술술 읽히는 것은 매력입니다. 이야기를 아주 잘하는 할아버지의 '썰'을 듣는 것 같다면 적절한 비유일까요. 아울러 위계에 의한 성적 학대를 생각도록 하는 책이기도 하고요. 순수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와 함께 생소한 북한 언어를 읽는 재미도 있습니다.
 
게다가 현재 시점에서도 논의 가능한 주제이므로 우리가 가기 힘든 시간과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걸 돕는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어 보입니다. 이는 나이에 따라 다르게 다가갈 수도 있겠고요. 물론 소설 내용 전체가 소설일 수도 있지요. <뉴스토마토>는 이를 확인하고자 작가 인터뷰를 출판사에 요청했으나, 작가는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꺼렸고 인터넷 사용법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출판사 파랑새미디어에 따르면 '짱짱'해 보이는 70대 노인이 지난해 가을 손으로 쓴 소설 원고를 가지고 한국에 와서는 출판사 몇 곳을 알아봤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작가는 파랑새미디어를 방문해 인세를 안 받겠다고 하는 등 아무런 조건 없이 출판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처음에 작가는 5부작으로 내고 싶다고 했다는데요. 출판사는 협의 끝에 3부작으로 줄였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은 1부입니다. 출판사는 "당시 방송 토크쇼에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이미 많이 나오고 있어 이런 게 되겠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북한의 당 간부가 노골적으로 어떻게 했다고 쓰는 등 도발적인 부분도 있어서 화제가 되지 않을까"라고 판단해 일단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반응은 예상에 못미치고 있는데요. 여러분은 과연 이 책을 어떻게 보실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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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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