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방글아기자] CJ, 롯데 등 영화 대기업들이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로 공정위에 적발돼 제재가 거의 기정사실화하자, 이른바 '셀프시정'으로 불리는 동의의결제를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24일 공정위에 따르면, CJ CGV·CJ E&M·롯데쇼핑 등 대형 영화 3사는 오는 26일 예정된 위원회의 심의를 5일 앞둔 21일 공정위에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이에 따라 이틀 뒤 예정돼 있던 이들에 대한 위법 심의절차는 중단됐다. 공정위는 내달 동의의결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들 3사의 갑작스런 동의의결 신청에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심의 5일을 앞두고 동의의결을 신청했다"며 "동의의결 신청이 피심인의 권리로서 보장돼야 하지만 저희로서도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동의의결은 공정거래 관련 위법 혐의를 빚고 있는 사업자가 소비자 피해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 등을 담은 자진시정안을 공정위에 제출해 제재를 받는 대신 시정안 수행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최초로 이 제도를 이용했다. 온라인 검색서비스 관련 불공정혐의를 받은 네이버는 제재 대신 공익법인 '한국인터넷광고재단' 설립 등의 계획을 담은 시정안을 공정위에 제출했고, 공정위는 이를 받아들인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영화 3사의 동의의결안이 이처럼 받아들여질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공정위가 법적으로 동의의결신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무가 없는데다, 해당 사안은 중대성이 심각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행위의 중대성과 증거의 명백성 여부 등 사건의 성격과 시간적 상황에 비춰 동의의결이 적절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소비자 보호 등 공익에 대한 부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동의의결 절차의 개시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논 상태다.
이들 3사가 공정위에 동의의결을 신청하게 된 배경은 지난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정위는 국내 영화시장이 제작부터 상영까지 소수 대형 영화사들이 사실상 지배하는 과점체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현장조사에 돌입했다.
공정위는 영화 대기업들이 계열사가 배급하는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고, 상영기간을 연장해주는 등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대형 영화사들은 중소 제작사가 만든 영화를 관객이 적은 시간대에 배치한 뒤, 관객이 적다는 이유 등을 들어 협의도 없이 영화상영을 조기종영하는 등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영화시장의 수직계열화와 이에 따른 독과점은 심각한 상태다. 영진위가 지난달 발간한 '2014년 3분기 한국영화산업 결산 통계자료'를 보면, 한국영화 배급사 점유율 가운데 상위 3개사(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의 점유율은 무려 89.8%에 달한다.
(자료=영화진흥위원회 '2014년 3분기 한국영화산업' 결산보고서)
이에 공정위가 당초 보고한 업무계획대로 영화산업 불공정관행 해소에 첫 삽을 뜨려고 하자, 이들 기업이 위원회의 정식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셀프시정'을 하겠다며 빗장을 걸고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아직 이들의 혐의가 명백히 입증된 것은 아니라며 조심스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동의의결제가 그간 IT산업 위주로 활용돼 온 것은 사실이나, 특정 산업에 한정돼 있는 건 아니다"며 "이번에도 영화사들이 굳이 동의의결제를 신청하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