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으나, 가치를 지닌 책과 그 뒷이야기를 소개하는 '뒷북'이 다섯 번째로 다루는 책은 공교롭게도 '오성홍기(五星紅旗)'의 나라 중국과 관련이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 역사>(서교출판사)입니다.
겉이 '빨간'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다뤘습니다. 제목이 참 직관적이죠. 책은 지난 1949년 '신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되고 개혁·개방을 결정하기 직전인 지난 1978년까지 29년간의 역사 기록입니다. 무려 1만7000명이 일하고 있는 중국중앙공산당사연구실(이하 연구실)이 썼습니다.
책은 사실 <공산당 역사>라는 '시리즈 역사책'의 2부에 해당합니다. 연구실은 이 시리즈를 지난 1921년 창당 때부터 1948년 건국 전까지를 1부로, 이번에 국내 번역된 책을 2부로 구성했습니다. 2부의 집필에만 16년이 걸렸다는군요. 지난 2011년까지의 역사를 쓴 3부는 집필 중이라고 합니다. 오는 2021년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전까지는 완성될 전망입니다. 2부는 중국에서 지난 2011년 출간된 직후 발행 부수가 100만부가 넘었다고 하는데요. 외국어로는 처음 번영된 한국어판은 지난 7월 출간됐습니다.
<중국 공산당 역사>는 상·중·하로 분리됐습니다. 6·25 한국 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고 표현하는 점과 문화대혁명·티베트·베트남 전쟁을 바라보는 중국 공산당의 시각 외에도 원자탄 연구·마오쩌둥 사후 4인방 척결 과정 등이 자세히 담겨 있어 국내 독자의 눈길도 사로잡을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G2 시대를 걷고 있는 중국이 산업화를 어떻게 이뤄냈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기도 하고요. 특히 공산당의 힘이 '절대적'인 중국의 현대사는 곧 중국 공산당의 역사라고도 하지요.
아뿔싸.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미지근'했습니다. 초판은 900부가 발행됐으나, 절반 정도만 시장에 나왔습니다. 그마저도 100부가량은 여기저기 무료로 배포된 겁니다. 김정동 서교출판사 대표는 "도서관은 물론 교수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책은 출간 이후에도 중국 공산당이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보는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이죠. 출간 직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방한하면서 화제를 모을 조건은 어느 정도 완성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G2에는 관심이 있어도 중국, 특히 공산당은 아직 아닌 걸까요?
이 책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를 분석하고, 그럼에도 가치가 있는 이유를 알기 위해 출판사 대표는 물론 일반 대학생부터 국내 중국전문 기자, 중국 길림신문, 베이징대 교수 등과도 접촉을 시도해봤습니다.
◇왜 주목받지 못했나?.."가격·내용·시각"
이 책이 출간됐다는 소식은 주요 언론이 무게감 있게 다뤘습니다. 언론은 주목했으나, 시장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안 팔려서 큰일"이라며 걱정하는 김정동 서교출판사 대표의 말을 들어볼까요.
김 대표는 "책이 비싼 것 같아서 학생들도 볼 수 있도록 도서관에도 이 책을 소개하는 이메일을 1700통 보냈는데 아직 반응이 없다"며 "중국 관련학과의 대학 교수 500여 명에게도 이메일을 보냈는데 두 명 정도가 답신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초판을 다 팔아야 겨우 제작비가 나오는 이런 책은 사람들이 사야 계속 출간할 수 있을 텐데요. 안 팔린다고 할인해 팔 수는 없잖아요. 아무튼 G2 시대에 학자들이 이런 거 보고 연구해야 하는데 이상하네요."
그러면서 김 대표는 '안 팔린' 원인으로 비싼 책값과 함께 한국 사회에 여전한 '레드 콤플렉스'를 지적합니다.
◇왼쪽부터 덩 샤오핑, 후 진타오.(사진=서교출판사)
그는 "작은 출판사라 홍보에 미숙한 점도 있었겠지만, 할인 판매해야 팔리는 게 출판 시장이다. 책값이 비싼 것은 독자의 주목을 받지 못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며 "아울러 책 제목부터 '중국 공산당 역사'라고 그러니까 아직까진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책값은 3권 모두 합하면 10만원으로 상당히 비싼 편입니다. 각권의 가격은 3만원 수준으로 베스트셀러 순위권에도 오른 <21세기 자본>(글항아리)과 비슷합니다. 국내 독자들이 자본주의의 폐해에는 주목하면서 가난하고 힘없던 나라를 G2로 격상시킨 중국 공산당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요?
김 대표는 출판 유통시장의 문제점도 지적합니다.
"서점도 사정이 있겠으나, 출판사가 돈을 내지 않으면 좋은 책도 서점 매대에 깔리지 않습니다. 이런 책은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책이고 다른 곳에서는 나올 수 없는 책이므로 새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른 문제는 없을까요? <뉴스토마토>의 '중국 전문기자'인 조윤경 기자와도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조 기자는 중국 베이징대 역사학과를 졸업했고, 최근에도 한국기자협회가 추진한 중국 전문기자 양성 연수를 통해 보름가량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조 기자에게 이 책을 보여줬을 때 나온 첫 반응은 "학교 다닐 때 보던 교과서 같다"였습니다. 베이징대 역사학과에서는 공산당 역사를 고대사보다 훨씬 비중 있게 가르치지만, 이런 책 정도의 분량은 적어도 1년에 걸쳐 공부한다고 하는군요. 단기적으로 대단한 반응을 얻기엔 무리가 있는 책이라는 겁니다. 18만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제대로 비평하는 것 또한 보통 일은 아니지요. 중국에서 10년간 유학한 조미영 여산통신 팀장은 "이 책은 본질은 지키되 진화하는 공산당의 이념을 말해주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솔직히 숨이 턱하고 막히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서강대 중국문화과를 졸업한 한 이모 씨는 "중국 공산당에 대해서 자세하게 배우지는 않았다"며 "이는 공산당을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사회 분위기 탓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인 '그들의 시각에서 본 역사'라는 점도 한계로 보입니다. 책은 "집필자의 능력이 제한되어 이 책에는 적절하지 못하거나 미비한 점들 더러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다시 인쇄할 때 적절하게 수정할 수 있도록 독자들의 비평과 의견을 기다리는 바이다"라고 끝맺고 있으나, '중국 자국민은 감히 비판할 수 없는 책'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물론 책은 "긍정적인 면과 함께 부정적인 면도 담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서교출판사도 이 책이 대중서가 아니라 학술서라고 인식하지만, 독자층을 폭넓게 하기엔 이런저런 한계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더군다나 이 책은 <전환시대의 논리>가 팔릴 수 없던 시절을 훌쩍 넘어선 시대에 등장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대단히 새로운 정보와 시각을 제시하는 것 또한 아니라는 겁니다. 중국 길림신문의 한국지사장인 전춘봉 씨는 "중국에서 학교 다닐 때 보던 책들이 서술한 주장이나 정보들과 확 다르진 않다"며 "다만, 그때보다 굉장히 세심하고 자세하게 쓴 책"이라고 평했습니다.
◇이 책의 가치는?.."중국 알려면 공산당 알아야"
재중동포이자 중국 공산당원이라고 밝힌 전춘봉 길림신문 한국지사장의 이야기를 더 들어볼까요. 전 지사장은 "중국 공산당의 탄생부터 개혁 개방을 하기 직전까지의 중국 역사는 한국인에게 생소한 분야일 것"이라며 "중국이 G2로 성장하는 계기인 개혁 개방에 이르기까지 중국 공산당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제대로 알아야 중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서교출판사)
그는 "중국 공산당의 역사는 물론 '굴곡'이 있었으나, 그것을 단순히 '빨갱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다. 땅 넓고 인구가 많은 나라를 다스리고 큰 나라로 만든 세계 유일의 집권당으로 봐야 한다"며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근현대사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합니다. 또 "물론 이미 알려진 얘기도 책에 많이 있으나, 학교 다닐 때나 공산당에 들어갈 때도 이렇게까지 자세히 배우진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옳고 그름을 떠나 중국 공산당은 연구·분석 가치도 충분합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교수는 최근 자신 페이스북에서 "중국·북조선·월남 등 일종의 좌파 민족주의적인 당 정권이 굳건히 서고 전혀 분열이나 약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비결은 (중국)국민당·박정희 식의 군사독재와 달리 공산당이 ▲여타의 관료체제를 감독하면서 관민갈등을 봉합할 능력을 가지고 ▲수많은 민간인에게 정치적 출세의 기회를 제공하며 ▲군중노선의 차원에서 풀뿌리 동원 능력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결점들도 많지만, 이런 시스템은 기층민의 이해관계를 어느 정도 고려해주는 '적색개발'에 안성맞춤"이라고 분석했더군요.
아울러 박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중국 공산당의 입장을 소개한다는 것은 긍정적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책은 현재 정치세력의 입장인 만큼 완전한 객관성을 보유하기가 힘들 것이지만, 그러나 항미원조전쟁론의 경우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에 반대하는 대다수의 중국인과 북한인의 입장을 반영한다고 볼 여지도 없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것은 '우리' 입장이 아니지만 우리만 이 지역에서 사는 게 아니다"라며 "우리가 북한과의 평화 공존·통일의 길로 가자면 이에 대한 깊은 이해도 필요하다. 그만큼 그런 역사서들은 참고할 만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G2로 떠오른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잘 알면 외교를 하는 고위 관료나 중국에서 사업하는 기업가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란 조언도 있습니다. 조윤경 기자는 "비록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한 생각이지만,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정보를 달라고 얘기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시도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더군다나 중국은 다른 공산주의 나라와 달리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특히 시진핑 시대를 맞아 G2의 입지를 굳힌 중국인들의 자긍심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대 교수도 "이 책은 학자 대부분이 알만한 영향력 있는 책"이라고 하니 필요하다면 알아두는 게 좋겠죠.
김정동 서교출판사 대표는 내용 면에서도 참고할 만한 게 많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책은 중국 공산당 창당부터 개혁·개방에 이르기 전까지 각종 비화를 자세하게 기록했다'며 "정치적 리더들이 국민을 잘 먹여 살리려고 했던 노력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잘 나와 있다"고 합니다. 그는 "시리즈로 나올 이 책은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태는 물론 덩 샤오핑의 개혁 개방 정책과 흑묘백묘론, 시진핑이 정권을 잡는 시기까지 총망라할 것"이라며 "등거리 외교를 잘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그들의 시각은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이런 겁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를 '바다 건너 있는 나라'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바다 패권'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입니다.
김 대표는 "이 책에 대한 평가는 학자들의 몫이지만 그들이 읽지 않고 있다"며 "외국에서 이 책을 볼 때는 디테일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중국의 학자들은 수년간 토론을 통해 이 책의 객관성을 갖추려고 했고, 또한 그들 고유의 시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말합니다. 앞서 서교출판사는 중국 관련 단행본을 10종가량 출간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안 팔릴 게 뻔하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중량감' 있는 책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독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준다는 중장기적인 생각'에서 이 책을 출간했습니다. 김 대표는 "평가는 독자가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습니다. 당초 500부만 찍으려고 했던 이 책. 더 찍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