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OPEC 감산합의 실패..유가 붕괴 가시화

달러강세·원유 수요 감소..유가 하락 부추겨
원유 공급 늘어날 전망.."유가 30달러까지 떨어질 수도"

입력 : 2014-11-28 오후 1:51:18
[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에 나서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국제 유가가 60달러 선까지 곤두박질 것이란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 셰일 혁명으로 불어난 원유 재고와 달러 강세도 유가를 끌어내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감산 합의 실패..국제 유가 6.3% '급락'
 
27일(현지시간)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례회의를 열고 원유 생산량을 하루 3000만배럴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6년 만에 처음으로 감산 조치가 내려질 것이란 세간의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다.
 
압달라 엘 바드리 OPEC 사무총장은 "회원국들은 산유량 상한선을 엄격히 지킬 것"이라며 "유가 하락에도 회원국들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OPEC 감산 합의 무산 소식에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즉시 인도분 가격은 장외 전자거래 시장에서 전날보다 6.3% 하락한 배럴당 69.05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약 4년 반 만에 최저치다.
 
WTI는 지난 6월 이후 지금까지 34%나 하락했다.
 
◇WTI 가격 일주일간 추이 (자료=인베스팅닷컴)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1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전날보다 5.17달러 내린 배럴당 72.5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OPEC 회원국들이 유가 하락에 따른 수익성 감소에도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한 이유는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함이다. OPEC은 전세계 원유 공급의 40%를 담당하고 있다.
 
OPEC은 글로벌 원유 수요가 줄어든 마당에 생산량마저 줄이면 시장 점유율이 크게 하락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셰일붐으로 많은 원유를 생산 중인 미국과 비회원 산유국이 남는 원유를 아시아나 유럽에 수출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부담이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만 국가들은 이번 회의에서 생산량 유지 쪽에 손을 들었다. 이들은 유가 하락으로 손해가 발생해도 이를 상쇄할 만한 수천억달러의 현금을 지니고 있다.
 
사우디 등 걸프만 국들은 OPEC의 감산 조치에 앞서 미국이 유가 하락세를 이기지 못하고 셰일 오일 감산에 들어가길 희망하고 있다.
 
◇OPEC 회의 여파, 각국 환율·경제에 '타격'
 
이번 결정은 유가 뿐 아니라 각국 경제와 환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선 이란, 알제리, 베네수엘라의 입장이 곤란하게 됐다. 이들 OPEC 국가들은 유가 하락을 방어할 만한 자금이 없다. 유가가 내리면 사회복지자금을 비롯한 공공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도이치뱅크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경우 내년 예산을 구성하려면 유가가 적어도 117.50달러는 나와줘야 한다.
 
이 세 나라가 이번 회의에서 감산 조치를 강하게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가 수입의 절반이 에너지 수출에서 발생하는 러시아도 큰 피해를 봤다. 유가 하락 예감에 루블화 가치가 더 추락한 것이다.
 
◇달러·루블 환율 추이 (자료=인베스팅닷컴)
 
OPEC의 발표가 나간 이후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달러 대비 3.6% 떨어진 48.66루블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달러에 대한 루블화 가치는 이미 30%가량 하락했다.
 
서유럽 최대 원유 생산국인 노르웨이의 크론화 가치도 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캐나다 달러 가치도 내려갔다.
 
유럽 에너지 기업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석유회사 BP는 영국 증시에서 2.7% 밀렸고 원유가스 인프라 제작업체 페트로팩도 6% 넘게 하락했다. 로열더치셸도 3.73% 내렸다.
 
경기 부양 중인 유로존에도 그림자가 드리웠다. OPEC의 생산량 유지 결정으로 유가가 계속 하락하면 유로존의 저물가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이는 곧 경기침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감산 조치 시점 불확실..유가 35달러까지 하락할 수도
 
전문가들은 OPEC이나 미국이 언제쯤 원유 생산을 줄일지 확신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서베이 소속 전문가 중 58%는 내년 6월5일에 열리는 OPEC 회의에서도 감산 결정이 내려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우디를 비롯한 OPEC 주요국들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감산에 따르는 부담을 여러 나라에도 전가하려 한다. 실제로 OPEC 인사들은 우리만 모든 짐을 질 수 없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디에자니 엘리슨 마두케 나이지리아 석유장관은 이날 "OPEC 회원국이 아닌 산유국도 감산 노력에 동참해야 할 것"이라며 "부담은 나누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닐 앳킨슨 데이터모니터 연구소장은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생산과 관련해 향후 3개월간 러시아 같은 비회원 산유국들을 압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도 원유 생산을 쉽사리 중단할 것 같지 않다. 미국으로선 자국 에너지 기업이 어려움을 겪겠지만, 확대해서 보면 크게 손해 볼일은 없다. 유가가 하락하면 민간소비지출이 늘어 경제 성장율이 추가로 올라갈 수 있다. 소비지출은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뉴욕타임즈(NYT) 애널리스트들은 내년 까지 세계 원유 생산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처럼 원유 생산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자 유가 하락 전망이 줄을 이었다. 
  
이고르 세친 로스네프트 회장은 "이대로 하락세가 지속되면 내년 중순 쯤엔 유가가 60달러선 밑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탐 클로자 개스버디닷컴 수석 유가 분석가는 "원유 감산 합의가 내년 봄까지 이뤄지지 않으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35달러까지 추락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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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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